외국인 예능 전성시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11.11. 17:48

수정일 2015.11.17. 19:00

조회 768

기욤, 줄리앙, 타일러, 로빈(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70

종편 채널인 JTBC의 <비정상회담>이 최근 비지상파 예능 토크쇼 중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까지 포함해도 MBC <라디오 스타>와 함께 화제성면에서 양대 토크쇼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인기다. 이 작품엔 유재석이나 강호동 같은 스타 MC나 스타 출연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지상파 예능에선 패널이나 공동 MC 정도의 위상으로 나오는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 등이 진행하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출연할 뿐이다. 게다가 진행자들의 역할이 거의 없어서 사실상 낯선 외국인들의 대화로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채워진다. 유재석의 <나는 남자다>, 강호동의 <별바라기>, 이효리의 <매직아이> 등 슈퍼스타를 내세운 토크쇼들도 좋은 반응을 못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토크쇼가 화제를 모으게 됐을까?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스타에게 주목하고 스타의 사생활을 듣고 싶어 하던 세상이 끝났다. 1989년 <자니 윤 쇼> 등장 이래로 TV 토크쇼의 가장 큰 소재는 연예인 사생활이었다. 한두 명의 사생활로는 부족했는지 2010년대 <강심장>에 이르러선 연예인들이 집단적으로 나와 경쟁적으로 사생활 대방출에 나서며 인기를 모았다. 바로 그때가 연예인 사생활 토크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장이었다. 시청자들은 반복되는 연예인들의 가십성 토크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상파 토크쇼의 위기를 불렀다. 케이블이나 종편 채널에 비해 지상파 채널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스타 섭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상파 토크쇼는 계속 스타를 내세우게 되는데, 바로 그 장점에 발목 잡힌 것이다. 반면에 스타 섭외력이 떨어지는 신규 채널들은 스타보다 토크의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정상회담>은 이런 맥락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각 나라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하지만 아무런 대표성도 없는, 각국의 '비'정상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연예인 사생활과 에피소드 나열 위주로 진행되는 지상파 토크쇼에서 토론은 절대 금기였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과감하게 토론을, 그것도 외국인들이 벌이는 토론을 내세웠고 바로 이것이 통했다.

한국인은 원래 외국의 문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도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요즘 들어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외국 사례, 외국인의 생각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선진국에 비해 미약한 복지, 남녀차별과 소수자차별 등 인권의 문제, 억압적 사회환경 등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외국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에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저마다 자기들 나라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문제를 지적한다. 시청자들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다양한 외국 사례와 함께 우리의 문제를 고민해보게 된다. 바로 여기에 젊은 네티즌이 반응해 화제성이 폭발한 것이다.

과거 지상파 방송사에서 <미녀들의 수다>라는 제목으로 외국 여성들의 토크쇼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제목에서부터 '미녀'를 내세워서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토크도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 많았었다. 반면에 <비정상회담>은 남성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쓴소리까지 해가며 본격적으로 토론을 벌인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과 함께 외국인들이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비정상회담> 출연자들이 잇따라 광고 모델이 되기도 한다. 바야흐로 외국인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비정상회담> 출연자들은 대부분 선진국의 '훈남'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동남아 계열이나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은 배제됐다. <미녀들의 수다>가 미녀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했다면, <비정상회담>은 선진국 남자에 대한 여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셈이다. 선진국민도 아니고 미녀도 아닌 외국인까지 우리가 받아들이는 시기는, 지금 분위기로는 그리 빨리 올 것 같지 않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