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23) 성균관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이유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4.11.11. 11:13

수정일 2015.11.19. 20:59

조회 3,391

도심 속에서 늦가을의 경치와 만추의 정취를 간직한 곳 가운데 하나가 대학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고목 은행나무들의 웅장한 자태와 생동하는 생명의 빛깔인 노란색으로 찬란한, 감탄을 부르는 풍경을 품은 곳이 성균관대학교다. 인위적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관리한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와 달리 노랑 잎이 매달린 가지를 치렁치렁 마음껏 펼치며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은행나무 네 그루가 바로 그 주인공. 11월의 이즈음 그냥 노란색도 아닌 진노랑 잎으로 온통 수놓은 은행나무들을 보면 천연 비타민C 같아 그 앞에 서기만 해도 절로 기운을 얻게 된다.

늦가을 노란빛을 뽐내는 은행나무

늦가을 노란빛을 뽐내는 은행나무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 입구로 들어서서 문묘, 명륜당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걷다보면 큰 한옥 건물들이 나타난다. 공자의 신주를 모시는 문묘(文廟)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 건국 초기에 창건된 문묘는 정전인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등으로 이루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선조 말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열린 대문너머로 추색이 완연해 아늑한 기분이 드는 명륜당 뜰로 들어서면 탁 트인 마당과 함께 우람한 고목나무들이 인자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반겨준다. 은행나무 외에도 아름드리 회화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팥배나무 등이 마당의 가장자리를 두르듯이 서있다. 그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단연 돋보이는 노거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제 59호)로 역사성과 문화적 상징성이 높아 곧 서울시 문화재로도 등재될 예정이다.

1519년(중종 14)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이자 인재양성의 요람이었던 성균관의 우두머리였던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는 500살 넘은 은행나무는 높이 21m, 둘레 7m인 크기만큼이나 잎도 무성해서 놀랍기만 하다.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숲 같다. 가을 햇살이 비치니 황금빛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이 은행나무는 늙어갈수록 더 멋있다.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이 은행나무들이 사는 유서 깊은 명륜당은 천 원 지폐에도 나와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근엄한 모습 곁에 기와집이 한 채 보이는데 작은 글씨의 현판을 읽어보면 '明倫堂(명륜당)'이라고 쓰여 있다. 명륜당은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최고의 국가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중심 건물이다. 명륜당이 최초로 건립된 것은 조선 태조 7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선조 39년에 다시 지어졌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곳에서 당대의 수재들이 숙식을 해가며 유학을 공부했다. 성균관은 크게 두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앞부분은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인 문묘와 유생들이 공부를 했던 뒷부분의 명륜당. 이 두 공간을 옛 부터 지켜보며 역사의 증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것이 바로 네 그루의 고목 은행나무다.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명륜당을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성균관 은행나무의 밑둥

성균관 은행나무의 밑둥

수백 살 먹은 고목 나무다보니 쳐진 가지에 지팡이처럼 철제 지지대를 대고 서있지만, 곧고 장대한 풍채와 진노랑 은행잎의 광채로 누구나 감탄할만하다. 서울 도심 속에 이런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땅을 움켜쥐듯 드러난 나무 밑둥의 굵은 뿌리들은 아직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성균관 마당에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나 대나무가 아닌 은행나무를 심었을까! 안내 게시판을 읽다보니 궁금증이 풀어졌다. 그것은 공자가 은행나무 단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그 후 향교나 문묘·사당 등 유교와 관련 있는 곳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전통이 생겼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한편으론 실질적인 이유도 있단다. 향교나 사당에서는 돈 들 일 일이 많은 제사를 지낸다. 가을에 은행을 수확하면 돈으로 바꾸어 제사비용으로 쓰고 관리인 살림에도 보탰다고.

감탄과 경탄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무 구경을 하는 가운데, 문득 가을 은행나무가 이맘때 흔히 내뿜는 고약한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했다. 안내 팻말을 보니 두 그루 모두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란다. 건너편 사당의 뜰에 있는 동생뻘의 은행나무 두 그루도 수나무다. 옛날엔 암수구별을 해서 어린 은행나무를 심진 않았을 텐데, 명륜당 유생들은 운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였는지 명륜당 은행나무에도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은행나무가 성 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나무라는 거다. 원래 심었던 나무는 암나무로 가을철 열매가 많이 열려 냄새가 고약해 유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했을 뿐 아니라, 은행 알을 주우려는 주민들로 엄숙해야할 학교가 소란스러워지자 선비와 학동들이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린 끝에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개 은행나무는 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라는 점도 특별하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그루에 이르는데 그 중 명륜당 은행나무는 유주(乳柱)라는 기묘한 것이 붙어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다보면 가지에 달린 혹이 수염처럼 늘어진 것이 쉽게 눈에 띈다. 오래된 고목나무의 호흡 작용을 도와주는 일종의 돌기다. 유주는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노거수 은행나무만의 특별한 현상이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뜰을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나무 옆에 기대어 섰다가 반짝거리는 노랑 은행잎이 비처럼 쏟아져 떨어졌다. 보고 또 봐도 상큼한 색깔의 은행잎 몇 개를 더 주워 들고 있던 작은 책속에 끼워 넣었다. 마치 황금 책갈피라도 얻은 양 마음이 뿌듯하고 풍족했다.

○ 위치: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 연중무휴, 입장료 없음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은행나무 #성균관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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