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얘기하고, 치유하자!

마을공동체담당관

발행일 2014.07.10. 00:00

수정일 2014.07.10. 00:00

조회 851

문화예술학교

어떤 깨달음 - 너도 아프잖아, 울어도 괜찮아, 나도 아프거든

[서울톡톡] 마을엔문화예술학교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먼저 그것의 출발점이 된 '마을엔카페'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갈현동에 있는 마을엔카페는 대조동 꿈나무 도서관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이 이웃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만든 공동체 '마을엔도서관'의 거점이 되는 곳이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며 지내오던 사람들이 문득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있었다. 2012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구성원들 각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고, 공동체 안에 자연스럽게 있게 마련인 갈등에 대한 고민이 커지던 때였다. 함께 살자며 시작한 공동체였지만, 어느새 바쁘게 일에만 매몰되어 지내느라 자신의 마음과 관계를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 특별한 계기로 구성원들이 심리치료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아프다는 것, 함께 사는 마을 전체가 아프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마을엔카페에서는 이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 아픔을 함께 풀어보고자 했다. 그들은 아픔을 넘어서 치유를 향해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하는 예술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가능한 조건들 속에서 - 진흙처럼 보이지만 연꽃 씨를 품고 있다

치유를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엔카페가 자리 잡고 있는 갈현동에는 오래전부터 작은 공방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예술 향유에 대한 수요가 워낙 적다보니 공방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에 대한 애착으로 묵묵히 작업을 해나가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장사가 아닌 예술과 함께살이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네트워크와 마을엔카페가 만났다. 공방의 예술가 협동조합은, 만들자는 욕구는 있었지만 각자의 바쁜 작업들로 인해 구심점이 없어 다소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마을엔카페에서는 치유의 매개가 되어줄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는 상태였다. 두 욕구가 만난 자리에서 학교는 '동네예술치유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사업 계획서를 '서울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 공모했고, 그 대회에서 '여럿이 함께하는 펀딩'을 받게 되면서 기본자금이 될 펀드 3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기는 고민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치유'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물론 함께 모여 예술을 나누며 추구하는 게 치유라는 건 변함없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이들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치유인 만큼, 과연 아마추어들이 치유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도 괜찮겠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여전히 치유를 추구하면서도 이름만은 '마을엔문화예술학교'로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포스터와 리플렛을 만들어 홍보하고,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동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다른 게 아니라 각 공방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에 수강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예술에 투자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동네사랑방을 꿈꾸며 시작한 마을엔카페에도 기대보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던 것과도 맥락이 닿아있는 부분이다. 가난한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드는 '저녁이 없는 삶'.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엔예술학교는 1년여 동안 진행되었고, 다시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분명 어떤 결과들을 남겼다.

변화 : 결과, 혹은 과정들 -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수업모습

여기서 굳이 첨언하자면 이 글을 쓰면서 '성공'이란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성공은 반드시 실패라는 것의 대척점으로서 어떤 것은 실패라고 정의하면서야 존재하는 단어이고, 마을엔문화예술학교가 지향하는 가치는 바로 그런 판단에서 벗어나 그런 판단과 편견이 의미없어지는 지점을 향해있다고 믿는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마을엔문화예술학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어떤 결과, 혹은 과정들, 그러니까 변화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하나로 꼽을만한 일이 바로 갈현동에 아트마켓이 상시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트마켓은 '마을엔문화예술학교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자!'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수업들을 통해 만들어진 공예품들을 마을 공원에서 전시하고, 판매하며, 함께 만들어보는 체험 부스를 운영하며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아트마켓의 예술가들은 단순히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지만, 아트마켓이 더 잘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갈현동 아트마켓은 갈현동 참여예산 공모에 지원해 선정되었고, 지금은 '재미난장'이란 이름의 단체로 독립해 갈현동에서 매달 주기적으로 골목축제가 열릴 수 있게 하는 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건 바로 네트워크의 형성과 정착이다. 비록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동네에 사는 예술가와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만들어졌고, 만들어왔으며,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소통과 치유의 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한 시간 학교 - 당신의 아픔의 우리의 아픔으로 보듬을 수 있다면

마을엔문화예술학교가 만든 또 다른 변화로는 '한 시간 학교'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간 학교는 마을엔문화예술학교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다. 이 프로그램이 대상으로 삼는 건 학교 안에 있지만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십대들이다. 대부분 가족이 제대로 없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깨워줄 사람도 없고 함께 손을 잡아 이끌어줄 사람도 없는 친구들. 예술을 통한 치유의 확장에 대해 고민하던 차, 마침 은평구 교육복지센터의 중개를 통해 지역 학교의 허락 하에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일정 기간 동안 마을엔문화예술학교가 품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기간을 출석일수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십대들은 가기 싫던 학교대신 한 시간 학교를 통해 동네 공방들로 간다. 처음엔 집에까지 찾아가 깨워서 데려와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곧 공방에서의 예술 활동들에 재미를 붙여 학교 대신 그곳에 계속 다니고 싶어 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그곳에서의 작업들을 통해 새롭게 공예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친구들도 있고, 그곳에서 만든 작품을 아트마켓에서 팔아 용돈을 버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마을엔문화예술학교에선 이런 친구들을, 탈학교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작공(이곳에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역시 마을엔도서관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업이다)에서 흥미를 느끼는 친구들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공방의 일을 배우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개인들의 아픔 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곳으로서의 마을엔문화예술학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마을엔문화예술학교는 현재진행형 - 함께 있기, 그 가능한 모습들

마을엔문화예술학교의 수업들은 매주 다른 요일 다양한 시간대에 이뤄진다. 이 수업이 이뤄지는 모습들이 독특한데, 각각의 수업 시간에 마을엔문화예술학교와 함께하고 있는 공방들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센터의 강의와는 차별을 두는 지점인데, 예술가이지만 한편으로는 동네 주민이기도 한 이들의 작업 공간 속에서 직접 그들의 작품들 속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거리감을 없애고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예술학교 수업모습

지금 마을엔문화예술학교는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함께 하고 있는 공방들에서 목공, 도자기, 양초, 바느질, 미술 등의 실습이 함께 하는 수업들이 있고, 그 밖에도 논어 강독, 노래를 함께 배우는 마을 노래단, 서로의 목소리로 책을 소리 내어 낭독하는 독서모임 등도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서로 부족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워가는 자리에서 어떤 경험들이 있었고, 어떤 변화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접하는 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비싼 돈을 들인 강사들의 수업에서는 찾을 수 없을 시간들. 그것은 어쩌면 함께 뜨개질을 하며 밥을 같이 해 먹고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소리 내어 외치지 않아도, 익숙한 걸음으로 서로에게 자리 잡는 치유의 시간들.

최근 우리 모두에겐 엄청난 상처가 될 일이 벌어졌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그 상처의 시간은 진행 중이다. 도무지 어딜 바라보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대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한 심정은 다들 비슷할 것 같다. 최근의 일들을 겪으며 개인적으로는 연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있다. 거창한 슬로건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와 방식 같은 것들. 조심스럽게나마 그래도 희망은 함께 있음 속에,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말해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있게 말한다. 그 가능한 방법 중 하나를 바로 여기, 마을엔문화예술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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