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 최고를 알아볼 수 있다면, 당신의 안목을 인정하지

서울시설공단

발행일 2014.07.02. 00:00

수정일 2014.07.02. 00:00

조회 830

[서울톡톡] 장인이 만든 명품에는 시대와 국가, 그 종류를 막론하고 공통적 으로 흐르는 기운이 있다.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일행과 나누던 수다도 한 순간에 멈추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것은 대개 박물관이나 명품관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랬다. 종로5가의 지하상가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마주칠 수 있을거라고 상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

'Breathtaking beauty'를 만난 적이 있는가

에디터와 일행이 한순간에 멈춰서서 감탄사를 내뱉은 곳은 함과 장,거울 같은 규방 가구가 가득한 매장. 하지만 한땀한땀 수를 놓아 그 많은 가구를 장식한 정성이 대단해서도, 전통 공예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한 눈에 보기에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런 건 한국밖에 없어요. 진짜 전통이죠. 중국 자수는 풍이 전혀 달라요." 최성규 전통손자수 대표는 자신감이 듬뿍 묻어 나는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전통 자수는 세계 각국에 있지만, 한국 자수에는 그 만의 독특한 풍격이 있다고 한다. 시장이나 관광기념품점 등에서도 자수 상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서 해 오는 것이라고. "이제 시중에서는 국산 거의 찾기 힘들어요. 우리는 예전부터 했기 때문에 국산, 일류가 있는 거예요. 사실 그런 건 따로 넣어 놨어요. 좋은 건 열 배, 스무 배도 차이나거든."

최성규 대표는 78년에 세운상가에서 전통매듭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80년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85년에 본격적으로 손자수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만해도 그런 고급 물건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성규 대표는 "인사동 구석에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식으로 장사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이상하게 그 할머니랑 자주 만나게 되더라고. 사람이 누구나 자기 끌리는 게 있는데 난 이상하게 색깔 있는 게 자꾸 끌리더라고. 그게 팔자에요. 나 같은 사람이 음식 장사하면 망해요. 그러다가 시작한 게 지금 까지 온 거지. 처음엔 반짇고리같이 작은 걸로 시작했어요." 라며 그 때를 회상했다.

크기도, 디자인도 모두 같고 단지 자수만 다른 화초장 두 개 중 어떤 게 좋아보이느냐는 질문에 마치 '진품명품'을 가리는 패널이라도 된 양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선택은 실패. 더 좋아 보인다고 고른 것은 3백만 원, 다른 하나는 천만 원 이란다.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쭈었다.

"수 놓는 기술은 기본이고, 도안이죠. 그리고 배색도 중요해요. 그게 솜씨고 일류를 판가름하는 겁니다. 언뜻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좋은 건 도안도 다르고, 색을 쓰는 게 달라요."

그래서 이곳은 제품 카탈로그가 없다. 자수는 도안을 그대로 천 위에 그린 다음 놓기 때문에, 도안이 한 번 유출되면 중국에서 똑같이 만들어 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손님이든, 관광객이든, 심지어 외국인이라도 사진 촬영은 절대 금물이다. 요즘은 카메라가 좋아서 찍고 인쇄해서 컬러까지 그대로 베끼는 경우도 있다고. 퇴근할 때 매장 전체를 블라인드로 다 가리는 건 기본이다.

저 많은 걸 한 땀 한 땀, 대체 누가 이걸 만드나요?

"자수 놓는 분들을 수사(繡師)라고 해요. 옛날부터, 어릴 때부터 수놓던 분들이죠. 제일 오래 하신 분이 내가 알기로는 한 60년 정도하신 거 같아. 저희는 예전부터 그 분들이 수 놓으면 일단 계속 사뒀어요. 그래서 옛날 것, 최상품이 있는 거에요. 근데 자수가 하다 보면 골병 들거든. 그래서 엄마가 수를 놨어도, 딸도 안 배우려고 해요. 지금은 거의 끊겼죠."

배우기도 어렵고, 숙련자가 되는데 시간도 굉장히 많이 필요한 손자수는 명맥을 잇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곳은 1985년 부터 지금까지 최성규 대표 부부가 각각 '전통' 사와 '전통손자수' 사를, 아들도 '옛날선물공방' 이라는 이름의 손자수 공예품 전문 쇼핑몰을 운영하며 온 가족이 대를 이어 최고 품질의 손자수 공예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을 30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팀'. 공방에 모이지 않고 집에서 각 자수를 놓는수사들을 찾고, 그 중에서도 일류를 가려내 팀을 꾸리고 운영하는 팀장을 따로 두고 있다고 한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함 하나, 장롱 하나를 모두 장식 하려면 작은 건 보통 2~3개월, 조금 큰 것은 6개월 이상 걸린다. 하지만 이 느리고 고된 과정을 고집하는 것은 '오직 그 방법 뿐'이기 때문이다. 요새 컴퓨터로 안되는 게 없지만, 한국 전통 손자수는 색채와 형태는 물론, 질감과 무게감, 입체감, 명암까지 다양하게 표현해 내는 섬세한 기법 때문에 컴퓨터로 절대 따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수 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위) 유럽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유럽 스타일로 새롭게 디자인한 손자수 약장 (아래) 옛 궁궐에서 사용하던 스타일의 손자수 이층장과 경대. 이층장은 용, 호랑이, 사슴 등의 수로 장식했고 경대는 큰 목단을 수 놓아 화려하게 완성했다

인연은 예의로 맞이하는 법, 허술히 흘려 보낼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단연 혼례함이다. 예식을 간소하게 하는 추세에 따라 함을 트렁크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지만, 결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임은 변함없는 사실. 때문에 결혼 상대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의 손자수 혼례함을 찾는다.

인연을 기품 있게 이어주는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일까. 최성규 대표는 손님들과의 인연 역시 가벼이 흘려 보내지 않는다. 자녀 결혼 때마다 이 곳을 찾아 함과 가구를 챙기는 손님도 많지만, 외국인 손님 중에도 단골이 있다.

"한 일본 분이 몇 번 와서 사갔어요. 근데 편지를 보내더라고요. 일본 집에 가구 놓은 사진도 보내고. 무심코 지나갔는데 몇 번을 그러길래 쉽게 보낼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해서 기다렸어요. 그렇게 인연이 돼서 한 5년 됐나, 만나는 부부가 있습니다. 1년에 꼭 두 번 씩 한국에 와서 부부동반으로 같이 여행가요. 봄 한 번 가을 한 번. 상업적으로 사람 만나는 게 절대로 싫어서 친해지고 부터는 와도 사지 말라고 해요."

김태희의 '취선당'에도 있던 화초장, 이것 하나만으로 안방의 품격이 달라진다

이곳의 손자수 가구는 좋다는 것만 가득한 방송가에서도 먼저 알아보고 찾는 아이템이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장옥정, 사랑에 살다' 제작팀이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연락을 해 와 협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태희가 연기한 장옥정의 방 '취선당'에 있던 가구들이 바로 이곳의 작품. 화려함과 품격이 공존하는 궁궐, 그 중에서도 시대를 풍미했던 장옥정의 방에는 아마도 까다로운 안목으로 고른 당대 최고의 물건들만 가득했을 것이다. 이곳의 손자수 가구들은 바로 그 모습을 멋지게 완성했고, 덕분에 '드라마에서 봤다'며 반가워 하는 손님들도 제법 생겼다고 한다.

받는 사람을 빛내면서 나의 가치도 함께 올리는 '고수'의 선물

최성규 대표는 어머님이나 할머님께 귀한 선물을 해야할 때, 명품백도 좋지만 같은 비용으로 손자수 화초장을 선물하면 "난리난다, 안 좋아하는 한국사람 한 명도 못 봤다"며 확실히 점수를 딸 수있다고 귀띔했다. 그 유명한 프랑스,이태리 럭셔리 브랜드의 '백'은 사실 많은 수가 OEM으로 생산된다. '명품'이 무언가? 대를 물려 사용해도 멋이 바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것, 장인의 손길, 숙련된 기술과 풍부한 예술성이 깊이 배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귀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손자수 가구야말로 바로 그 기준에 딱 들어맞는 명품인 셈이다.

이곳에는 가구는 물론, 부모님 선물, 기업체 선물, 외국인 선물로 좋은 작은 소품류, 문구류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아이템은 흉배 액자. 문관, 무관 관복에 쓰던 전통 자수 흉배를 액자에 넣은 것으로, 독특하고 고급스러우면서 정성이 가득해 귀한 분께 선물하기 좋다. 흔히 선물하는 도자기, 나전 칠기와 달리 쉽게 볼 수 없는 아이템이라 선물하는 사람의 안목과 센스를 은근히 자랑할 수도 있다. 그보다 가벼운 선물로 손자수 거울이나 필통, 명함집, 메모지케이스도 인기가 좋다. 세트로 구매해 가는 고객도 많다고.

곧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찾아오는가? 결혼과 같이 일생에 한 번뿐인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나? 은혜를 보답하고픈 소중한 인연이 있는가? 그렇다면 전통손자수 매장에 방문해 장인의 손길이 깊게 밴 손자수 공예품을 살펴보라. 이 사진에 마저 담지 못한 경이로운 멋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누구에게라도 다시 없는 선물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그런 나이도, 위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래도 이 곳을 기억해두길 권한다. 살다보면, 아낌없이 마음을 전달하면서 받는 사

■ INFORMATION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138 종오지하상가 가열 2호, 3호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11번 출구)
전화번호: 02-2265-9790,2266-1442
홈페이지: http://www.korgiftshop.com

* 위 글은 서울시설공단(http://sisul.or.kr)에서 발행하는 지하도상가 매거진 G:HA[지:하]를 편집한 것으로 매거진 전체보기::링크새창베네핏 매거진(http://www.benefit.is/)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매거진 G:HA[지:하]는 서울 지하도상가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Good: G) 상품, 즐거운(Haha: HA) 경험을 발굴하여 새로운 쇼핑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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