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한국적인 명품을 만나다

서울시설공단

발행일 2014.06.18. 00:00

수정일 2014.06.18. 00:00

조회 2,599

[서울톡톡] 일단 싸면 사고보는 데에 익숙하지만, 어느 날 장을 열어보면 느껴지는 허무함은 왜일까. 잘못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가치보다 가격에 먼저 설득당하는 프레임을 갖게 된 것뿐. 그런데 진정 2만 원짜리 부츠를 1년 동안 신는 것보다 40만 원짜리 부츠를 20년 신는 것이 고리타분하기만 한 일일까? 진짜 멋은 첨단과 다채로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너무나도 한국적인 명품, 명동지하상가의 호세반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은 대표를 만나 35년간 정통 수제살롱을 유지해온 역사와 자부심을 엿듣고 왔다.

호세반

- 안녕하세요. 우선 호세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저희 호세반은 1979년도에 명동에서 오픈했습니다. 구두와 핸드백, 그리고 기타 소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곳이에요. 저희는 한국에서 정통 수제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곳입니다. 지갑, 벨트, 모자 등 수제 소품에 관한 모든 주문이 가능하고요. 상품에 따라 개별 주문을 받기도 해요. 오픈한 세월이 벌써 35년입니다.

- 상호가 독특한데요, 호세반의 뜻이 뭔가요?
호세반을 처음 시작한 분이 디자이너인 호세웅 대표님입니다. 이 분의 성함으로 앞글자를 땄고요. 'van'은 영어로 선구, 끌어준다는 의미가 있어요. 신발이 사람이 신고 걸을 때 끌어주는 물체잖아요. 그래서 '호세반'으로 정하기로 했었죠.

- 사장님께서도 직접 디자인을 하시나요?
호세웅 대표 겸 톱 디자이너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하시고요. 저는 그의 부인이자 함께 창업을 한 사람이고, 핸드백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전 디자인 계통의 사람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각 점포의 직원들 관리를 했는데, 그것만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35년이라는 세월이 공부를 많이 할만한 기간 아닙니까. 나중에는 어떤 게 소비자가 원하는 거고, 어떻게 해야 내가 생산하는 이 제품들이 좀 더 어필할까 하는 생각으로 디자인하게 된 거죠.

구두

- 35년간 자리를 지키셨다면 이 지역이나 지하상가에 관한 산증인이신데요. 그동안 계속 이 명동 지하상가에 계셨던 건가요?
호세반 명동 매장은 원래는 여기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옛날에는 조선호텔에서 조성한 반도조선 아케이드가 최고의 상가였어요. 조선호텔이 보수하면서 반도팀들을 나가게 했을 때 간 곳이 소공 아케이드입니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였죠. 최고의 손님들이 오셨어요. 1970년도,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얘기에요. 우리도 소공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단골이 아직도 많다 보니 메인으로 두고 못떠나고 있는 거예요. 아까 여기 계셨던 분들도 25년 단골이세요. 그때 당시에는 젊은 층들도 많았죠.

- 왜 지금은 양장점이나 수제 살롱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요?
이건 패션 쪽에 국한된 게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잖습니까. 그에 따라 패션업계에도 변천이 오는 거예요. 예전처럼 옷을 맞추는 게 너무 불편해지니 기성복이 나오게 된 거고. 예전 사람들은 자기 것을 확고하게,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백화점에서 보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가격도 저렴할 수 있고요. 변천이 흘러오면서 선택권이 많아지다 보니 전통이라고 불렸던 것이 많이 바뀐 거라고 봐요.

- 명품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수입 명품을 보면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보죠. 모든 게 세계화가 되지 않습니까. 초 단위로 바뀌는데 막는다고 막힐 일이 아니죠. 저는 고객들한테 사 보시라고 해요. 유행에 관한 영업을 하다보면 내 것을 고집할 수가 없다는 걸 터득하게 됩니다. 지금 루이뷔통이 강세를 쳤잖아요. 전에는 강세가 아니었거든요. 유행이라는 게 꼭 지금의 한류 같은 거예요. 하나의 번성이 있었으면 사그라지기도 하는 걸 자연스럽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두

- 유행을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도 호세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쟁력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무엇보다도 저는 톱 디자이너인 대표님의 색채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간파했었어요. 색이 없었던 시절, 정확히 말하자면 색을 못 받아들이던 시절에 호세반은 가장 많은 컬러를 내놓았던 곳이거든요. 물론 다른 대단한 분들도 많은데, 우리의 주특기는 이걸 굉장히 먼저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구두의 경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몸과 직결되기 때문에 편한 쪽으로 가야 하거든요. 100%는 아니지만, 70% 정도 고객은 정말 편하다고 인정해요. 지금은 구두문화가 없어져 가서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장 구두로 우리만큼 편한 곳은 없었던 것 같아요.

- 호세반의 가장 대표적인 상품을 소개해주세요.
겨울에 우리가 내놓는 털부츠가 있어요. 그건 세계적으로 1위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나라도 그 부츠만큼은 못따라온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150만 원쯤 하는데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부츠에요. 안에는 무스탕을 부드럽게 깔고 겉에는 송아지의 송치를 입혔습니다. 밑에는 알파 스폰지를 댔는데요. 이것도 완전히 미끄럽지 않은 건 아닌데, 다른 것에 비해 80%는 안 미끄러워요. 나이가 들수록 다리에 힘이 없잖아요. 그거 감안해서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한 번 구매하시면 보통 10년 이상은 신으세요.

- 호세반에 대한 단골들의 평가는 어떤가요?
어느날 인터넷에 보니까 혹평을 해놨어요. 다른 매장의 직원이 불친절했나 봐요. 나는 그걸 좋게 봅니다.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같은 서비스도 누구는 좋게, 누구는 안 좋게 받아들이시잖아요. 다만 호세반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걸 수용해요(웃음). 물론 반성도 하지만요. 사실 저도 몸에 밴 세일즈가 아니다 보니, 손님 비위 맞추기를 잘 못해요. 근데 저는 '내가 물건을 잘 만들자, 그것밖에 없다. 이게 서비스업이 아니니까. 물건보고 오시겠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정찰로 판매하고 나쁜 짓을 하지도 않으니까요.

가방

- 호세반을 운영해오시면서 가장 신명 났을 때가 언제인가요?
맨 처음 오픈했을 때죠. 우리는 꽃이었어요. 제품도 정열적으로 제작했고, 반응도 즉각적이었고요. 이게 15년 전까지 이어졌어요. "호세반은 한국의 자존심이다"라고 하면 신명나는 거죠. 요즘엔 손님들이 물질 자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실용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창작에 관한, 예술성에 힘을 싣어줄 때 우리는 힘이 났어요.

- 그러면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가장 어둡고 힘들고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 해야하는 게 지금이에요. 나는 외국에서 들여온 브랜드와 국산브랜드를 공정하게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아직 우리나라 고객들은 문물이 너무 급작스럽게 들어오다 보니, 판단의 능력이 성숙해있지 않아요. 시기적으로 짧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공정하게 못 받아들이시면서 그걸 표면화시킬 때 가슴이 아파요. 한 계통을 열심히 살아온 분들에게는 이게 자기 삶이거든요. 상처가 돼요. 요즘 들어서는 우리나라가 자기 것에 대한 긍지가 없으면 누가 우리나라 것을 지켜줄 것인가 하는 회의도 많이 들어요. 무심코 던진 돌 하나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지나가면서 '국산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할 때는 자존심 많이 상하죠. 오히려 외국인들은 아름답고 좋다고 하는데 한국분들은 심란하지.. 이런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상처가 많을 거예요.

- 정말 무턱대고 한국 물건이 왜 이리 비싸냐고 물으면 속상하시겠어요.
저는 그래요. 좋은 수입제품의 가격과 우리 가격을 냉정히 비교해놓고 보시라는 거야. 가격이 서너 배 차이가 나는데 품질이 한두 배 좋다고 하면 이 물건이 좋은 거예요. 저는 그렇게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걸 결정짓는 게 뭐냐, 단지 장식 같은 거거든요.

- 지하상가가 많이들 침체되었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명동 지하상가 홍보이사이신 걸 보면 이곳에 정말 애착이 있으신 것 같아요.
상가 자체에 애착이 있죠. 예전에는 최고급의 상가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렇게 된 것이니까요. 명동 지상에 백화점이 들어오고 지하가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본래는 다양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밀집되어 있던 것들이 많이 변했어요. 그럼 고객은 열 번 나올 거 한 번 나오시는 거예요. 이것도 하나의 흐름이죠. 모라비또나 펜디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부각되듯이 지하상가도 그런 것이라고 봐요. 이걸 뭐가 막겠어요. 솔직히 이 흐름을 타자면 저는 여기 없어도 되어요.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순전히 세월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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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서울시설공단(http://sisul.or.kr)에서 발행하는 지하도상가 매거진 G:HA[지:하]를 편집한 것으로 매거진 전체보기::링크새창베네핏 매거진(http://www.benefit.is/)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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