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다문화 선생님 되다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4.06.13. 00:00

수정일 2014.06.13. 00:00

조회 2,043

마을기업 [마을무지개]

[서울톡톡] 2007년 은평구 대조동 자치센터에 한국어교실이 마련됐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등 결혼이주여성 10명이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조동 꿈나무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던 6명의 활동가들과 의기투합,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을 소개하는 다문화 수업을 이어졌다.

이렇게 약 4년 동안 지역에서 다문화 수업을 진행한 이들은 2011년 서울시 마을기업 공모에 당선됐다. 다문화여성기업인 ㈜마을무지개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13명의 결혼이주여성과 7명의 지역 주부들이 다문화 강사 양성 및 강사 파견, 각 나라의 전통춤과 노래를 공연하는 다문화 공연단 '컬러링'을 운영하며, 초·중학교 학생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문화 선생님입니다!

러시아, 일본, 베트남 문화수업 모습

"한국말도 전혀 몰랐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던 제가 지금은 어엿한 다문화 선생님이 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결혼하고 3년 내내 집에서만 지냈어요. 그러다 은평구 대조동 자체센터 강좌로 한국어교실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를 공부하러 다녔어요.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비슷한 처지의 중국 친구들과 중국어로 수다를 실컷 떨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어교실 도우미 선생님이신 전명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 중국어를 조금씩 가르쳐드렸죠. 중국어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며 겨울방학 동안 도서관에서 '중국을 배워요'라는 방학특강을 진행하자고 했어요. 한국말에 자신이 없던 저는 선생님과 함께 중국의 인구와 지형, 공식 명칭, 국기와 전통 의상, 음식들을 소개하는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5회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한 번 더 하게 됐어요. 이 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됐고, 마침 한국에 와 계시던 친정아버지께 용돈을 드렸어요. 작지만 제가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릴 수 있어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한국에 와서 3년 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제가 5년 됐을 때는 길에 다니면 '선생님'하고 저를 부르는 아이들이 생기게 됐어요. 저는 이제 중국의 문화를 한국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당당한 다문화 선생님이랍니다."

다문화 선생님으로 은평구와 영등포구, 마포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어린이 집에서 다문화 수업을 진행하며 종횡무진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도혜림(중국) 씨는 다문화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다문화 이야기, 유익하고 재밌네!

㈜마을무지개 전명순 대표

㈜마을무지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명순 대표의 특별함이 밑거름이 됐다. 수년 동안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은평구로 이사를 오면서 대조동 한국어교실에서 무료 도우미교사를 자처했다. 중국 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수업이 끝나면 중국어를 배우면서 중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도 있었고 중국의 풍습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유익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학생들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에 중국여성 도혜림 씨에게 인근 꿈나무도서관에서 무료방학특강 '중국을 배워요'를 제안했다. 말이 서툴러 자신 없어 하던 도 씨와 함께 커리큘럼도 짜고 수업도 함께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다문화 여성들의 모국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지라 20명을 모집하는 정원을 훌쩍 넘어 인기를 끌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장 큰 욕구인 경제활동과 가정 내에서의 자존감 회복, 결혼이주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찾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대조동 자치센터에 정식으로 강좌를 열어줄 것을 의뢰했다. 한 강좌에 두 명의 강사가 진행을 하는 전례가 없다며 망설이던 자치센터에서는 어렵사리 3개월만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중국 5차시, 일본 2차시, 대만 1차시...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중국 문화 수업

결혼이주여성들은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각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소품들을 집에서 가지고 오는 열의를 보였다. 인근 꿈나무도서관에서 활동 중인 6명의 활동가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이 멘티-멘토로 짝을 이뤄 커리큘럼도 짜고 수업도 함께 진행해 나갔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은 좋았다. 3개월만 해 보자던 수업은 1년 정규수업으로 편성됐고,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다문화 수업을 하려는 결혼이주여성들은 많았고 강의는 한정적이었다. 그 문제를 고민하던 중 서울시의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과 서부교육청의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공모사업에 선정돼 수업의 양을 늘려 계속 진행할 수 있었고, 점차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도 수업을 하게 됐다.

마을기업 마을무지개 탄생과 위기

2011년부터는 작지만 외부 요청에 의한 유료 수업이 조금씩 늘었다. 또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마을기업 공모에 당선돼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다문화 교육과 도시텃밭 도시농부, 마을카페 등 세 개로 나눠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기업으로서의 이윤창출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도시텃밭에서의 이윤창출은 경험이 없었던 여성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을기업 1년간의 여정에 위기의 순간이 왔다. 하지만 실패와 위기는 마을기업의 생리를 온 몸으로 체득하는 전화위복이 됐다.

수업가이드북

마을기업 2차년도인 2012년에는 ㈜마을무지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다문화 교육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대만, 필리핀,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8개국 수업 내용을 e-book 형태로 제작해 수업에 활용했다. 좀 더 전문적이고 수월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자, 은평구뿐 아니라 영등포구와 마포구 중학교에서도 수업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2년간의 사업지원이 종료되자 결혼이주여성들과 지역 활동가들은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어야 했다. 계속해서 들어가는 공간 부담 비용(월세 25만 원과 관리비 15만 원)과 지원금 없이 마을기업을 운영하며 이윤을 창출해야만 한다는 명제에 맞닿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공간 운용비용은 결혼이주여성들과 지역 주부들이 십시일반으로 매달 모아 충당하기로 했고, 그간 모아놓은 자금과 향후 강사들은 강사비의 20%를 기업에 내며 2013년을 보냈다.

컬러링 공연

그해 9월엔 다문화공연단 '컬러링'도 만들어 운영했다. 아마추어였지만 다문화 공연이라는 특색이 있어 가을축제 때엔 하루에 3건이 겹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수익은 크게 나지 않았지만, 모국의 전통춤과 노래를 맘껏 할 수 있는 다문화 공연 활동이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생활의 활력이었고 남다른 즐거움이 됐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자신감과 사회적 위치를 주다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 내에 있는 마을무지개 사무실

2014년엔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3층에 무료로 사무실을 1년간 임대받을 수 있게 됐다. 사무공간과 대회의실, 소회의실 등 센터의 크고 작은 공간들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센터에 입주해 있던 다양한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정보 공유뿐 아니라 힘도 받고 위로도 얻게 됐다.

"다문화여성기업인 ㈜마을무지개를 꾸리면서 가장 잘 한 일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자신감 회복과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찾게 해 준 일일 겁니다. 타국에 와서 정체성이 모호했던 그들에게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들로 당당하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중국과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성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다문화선생님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확고히 해 준 것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엄청난 가치창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을무지개는 큰 욕심을 부리려 하지 않습니다. 직장이면서 가족이면서 이웃이라는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꾸준히 지역 안에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고 만족해가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을무지개는 다문화결혼이주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된 사례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문화 수업 & 공연단 문의 : 070-764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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