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아는 진짜 사나이들의 아지트, 멤피스 벨

서울시설공단

Visit2,167 Date2014.06.03 00:00





오랜시간과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더욱 진한 매력을 발하고 있는 서울의 숨겨진 보물창고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의 지하도상가입니다. 서울톡톡은 앞으로 10회에 걸쳐 서울시설공단과 함께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서울 지하도상가 구석구석의 매력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물건


#1 멤피스 벨(Memphis Belle), 회현지하상가


[서울톡톡] 이게 다 예능프로그램 때문이다. 안 그래도 확인할 바 없는 남자 친구의 군대 무용담이 더 부풀려지고 그럴싸해졌다. 얼마나 자랑할 게 없으면 그럴까 싶으면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군대’를 다시 가라면 싫어도 ‘추억’은 영원한 법인가.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로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 회현지하상가에 있는 ‘멤피스 벨’에 다녀왔다.


여자들도 좋아하는 남자의 위장, 카모플라주


가게에 들어서면 정글에 온 느낌이 든다. 위장무늬를 뜻하는 카모플라주 패턴의 물건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각을 잡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애써 각을 잡지 않아도 멋있는 그런 가게. 남자들이 ‘군대’는 싫어해도 ‘멤피스 벨’의 물건들을 하나같이 좋아하는 건 대표가 가진 안목과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군복, 프랑스 방독면 가방, 미 해군 옥스퍼드 슈즈, 미군 수통이 아무렇지 않게 선반에 앉아있다. 전시된 군용 물품들이 아니라 직접 판매하는 진품들이다. 선반 군데군데에는 군인 피규어들이 각을 잡고 서 있고, 가게 중앙에 자리 잡은 진열대에는 군용 선글라스와 시계, 야전용 작은 성냥갑들이 실제 군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독일의 전쟁영웅이자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의 친필사인은 액자에 고이 모셔두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간간이 보이는 핀업걸 그림들은 관물대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요염하다. 손님들은 곧바로 향수에 취하거나, 20대 초반 남자로 변하거나, 소년의 눈이 되어 멤피스 벨에 빠져든다.


기성복의 뿌리는 군복


“괜찮은 물건 들어오면 연락 달라고~ 팔리기 전에.”


단골들이 자리를 뜨면서 하는 말은 한결같다. 오리지널을 고수하는 그들에겐 보물창고와 다름없기도 하고, 다른데선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단골들은 20년 지기가 많고, 연령대는 40대에서 80대까지 폭넓다. 불쑥 들어와 태연하게 주차권을 얻어가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자리하는 등, ‘친구’처럼 허물없다. 의정부 부대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를 따라 5살까지 함께 출퇴근 하며 군부대의 문화를 몸소 체득한 대표는 자연스럽게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와도 이야기 상대가 된다.


연세 지긋하게 드신 분들은 와서 군복에 대한 향수를 나누고, 중년들은 후일담과 영웅담을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심지어 미군들도 신기해서 찾아오는 곳.요즘에는 ‘밀리터리룩’이 유행이라서 젊은 손님들도 많이 찾아오고 편한 옷을 즐겨 입는 사진작가들이나 예술가들도 많이 온다고. 손님들의 이야기와 가게의 물건들이 뒤섞여 더 정답고, 그러기에 정체되지 않는 신비한 곳이다.


밀리터리룩의 기본 ‘스모르 바지(Utility pants)’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가난하던 시절 미군용 바지 중 가장 작은 ‘스몰’ 사이즈를 받아서 입고, 팔던 것이 ‘스모르’로 발음이 굳어졌다. 석유통의 대명사 ‘제리캔(jerry can)은 2차대전 당시 보관이 쉽고 깨지지 않는 연료통으로 독일에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어디서도 그런 것을 만들 수 없어 미군과 영국군도 자존심을 버리고 독일제를 주워서 썼다고 한다. 영국군이 당시 독일군을 비하해서 부르던 ‘제리’에서 이름이 나왔다. 전지현이 드라마에서 입고 나와 유명해진 피시테일 파카(Fishtail Parka)는 ‘개파카’로 통한다. 1951년 미군 파카를 모티브로 한 군용 야전 상의인데, 예전에는 개털로 만들었다고 해서 개털파카라고 부르다가 개파카가 되었다. 이곳에선 ‘군대’에 얽힌 이야기라면 뭐든지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몇몇 물건은 ‘오리지널’임에도 백화점의 1/3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군복을 한 벌로 팔지 않아요. 손님들한테도 아래위를 똑같이 입지 말라고 조언하죠. 그건 유니폼이지, 패션이 아니거든요. 밀리터리룩이라고 해서 유니폼처럼 입으면 군인이 되는 겁니다. 멋스럽게, 포인트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①사진작가들이 렌즈가방으로 많이 사가는 프랑스군 방독면 가방 ② 예약해야 살 수 있는 `미션제작` 헬멧백 ③두 번째 미션으로 한 땀 한 땀 제작한 캡 ④하이드레이션팩이 장작돼, 수분 보충이 가능한 행군용 배낭 ⑤다양한 군용품 ⑥김영식 대표가 직접 모은 오리지널 와펜 ⑦태블릿PC 가방으로 제격인 독일 장교 지도가방


작정하고 ‘빈티지’


패션 팁을 줄 수 있을 만큼 감각도 좋지만, 손님들이 고르는 물건들의 출처와 내력을 마치 큐레이터처럼 설명해주는 김영식(50) 대표. 70~80년대에 무역회사에 근무하면서 군용물품을 수출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수출시장에 침체가 오자 진로를 바꿔 남대문에서 ‘장사’를 배웠고, 1년 후에 독립해서 자리 잡은 곳이 지금 이 자리다.


<멤피스 벨>의 비결이자 가장 큰 매력은 ‘오리지널리티’이다. 서양 복식의 역사가 군복에서 나왔고, 고어텍스, 아라미드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버텨줄 수 있는 소재들도 거의 군복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연식이 오래되어도 해체해서 쓸 수 있고 아웃도어룩이나 캠핑용으로 충분히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경험을 살려 유효기간이 만료된 군용 물품을 불하받아 수출하고, 또는 사들이는 것이 그가 희소성을 가지고 장사할 수 있는 재산이 되었다. 그중에서 보석 같은 것들을 모아서 다시 재가공을 하는데 2년 전부터는 파일럿들이 들고 다니는 헬멧백을 직접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제가 만든 건 실제 70~80년대 군용을 해체해서 새롭게 만든 거예요. 외피는 군용텐트, 내피는 월남 판초 이불, 미군용 제너럴 지퍼를 헬멧백 하나에 다 담은 거죠. 오리지널을 재가공 하는 업사이클링입니다. 그런 개념에 나름대로 디자인을 풀어서 50개 한정판으로 팔았는데 난리가 났어요.”


프로젝트 자체는 문화가 되었다. 옷 좀 입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한정판을 거래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4번의 프로젝트를 했지만 때마다 예약이 밀리고 추가 작업도 해야 했다. ‘프로젝트B’라고 칭한 작업공책 마지막 장에는 예약자들의 이름과 넘버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런 노력에도 라벨까지 고스란히 베낀 ‘짝퉁’이 나왔다, 대표는 애써 태연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알아보고 제작했던 것들이라 쓰린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좋은 제품이기에 베낀 거라 위로하며 다음 프로젝트를 챙긴다.


3평 남짓한 가게 정면에는 <멤피스 벨>의 실제 모델인 B-17기가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있다. 2차 대전에서 생존확률이 적은 가운데 25번의 출격 임무를 수행한 유일한 폭격기, 대표는 거기에 영감을 얻어서 25번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다.


“내 나이 50이고, 이 장사를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정도 더 할 수 있다고 치면, 1년에 한두 개 만드는 이 프로젝트도 20회나 25회까지 하겠죠. 계획이 계속 간다면 나중에 물건 산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어보려고요. 25회 끝나면 그동안 만든 디자인 엮어서 책 만들어 선물로 주고. 그런 계획이 있어요. 폭격기 <멤피스 벨>처럼 무사히 완주해야죠.


철칙과 원칙 그 사이


멤피스 벨에는 오후 12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 반에 문을 닫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아, 또 한 가지의 철칙은 비수기인 여름엔 최대 20일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것. 가게를 유지하고, 균형을 잡는 데에 가장 좋은 태도는 즐기면서 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 거다. 그래서 이곳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 절대 국군의 물건은 들이지 않는다.
2. 군용물품 컬렉터가 되지 않는다.
3. 하자 있는 물건은 팔지 않는다.
4. 유행에 민감하라.


“남자친구 선물 사러 여기에 오면 아마 한번에 살 수 있을 거예요, 여자들이 해도 썩 괜찮은 밀리터리 아이템도 많으니 데이트 코스로도 좋고요.” 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망설이지 말자. 하루 종일 군대 얘기를 들을 각오는 하는 게 좋겠지만. 내 남자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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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b17crew


* 위 글은 서울시설공단(http://sisul.or.kr)에서 발행하는 지하도상가 매거진 G:HA[지:하]를 편집한 것으로 매거진 전체보기::링크새창베네핏 매거진(http://www.benefit.is/)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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