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프신 데 어머니까지......

김현경

발행일 2014.01.07. 00:00

수정일 2014.01.07. 00:00

조회 2,448

의사와 환자(사진제공:서울의료원)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올빼미버스 등 시민 말씀대로 탄생한 10가지 정책을 직접 경험한 체험담, 영상, 그리고 웹툰을 공모하는 <제7회 서울사랑공모전>이 지난 10월에 있었다. 서울톡톡에서는 그 중 이야기부문에 선정된 13편을 한 편씩 소개해왔고, 오늘이 그 마지막 이야기다.

[서울톡톡] 가까운 친구에게도 차마 자세히 늘어놓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평범하고 건강한 가정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더 풍요롭지 못함을 투덜거리며, 단조로운 일상을 무료하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감사함을 모르던 나를 벌주듯 불행은 무심히, 그리고 조용히 찾아왔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출퇴근을 하시며 건강관리를 최우선 하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작년 건강검진에서 갑작스레 전립선암 통보를 받으셨고 수술을 통해 치료할 수 있었다. 수술 후 급격히 자신감을 잃으신 듯한 표정, 가끔씩 보이는 멍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잘 지나갔음을 가족끼리 토닥였다. 하지만 올해 전립선암 환자에게 잘 발생한다던 탈장으로 또다시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작년에 입원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침통함이 병실에 감돌았다. 이제는 '계속 이런 일이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깊이 다가왔다.

친정아버지의 수술 날짜가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어린 딸을 키우는 나도 교대로 병실을 지켜야했기에 짐을 싸고 있었다. 그 때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얘야, 나 지금 피를 막 토한다. 둘째 불러서 병원가고 있다."
"네? 어머님! 갑자기 피를 토하시다니요?"

자세히 여쭙지도 못하고 끊어진 외마디 비명 같은 전화에 넋이 나갔다. '별일 아니겠지', '단순한 식중독이나 장염 같은 것 아닐까?' 했는데 얼마 지나 걸려온 시동생의 전화로 어제 어머님이 퇴근길에 통근 차량이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가슴을 앞좌석에 세게 박으셨는데 오늘 오후 갑자기 피가 왈칵왈칵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일찍이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몸으로 아들 둘을 키워 장가까지 보내시고 추위에도 더위에도 밖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이 혼자 텅 빈 집에서 피를 토하시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었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와 CT를 찍어보고 추가 출혈을 막기 위해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날 밤에 시어머니는 전화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지만 새벽에도, 다음날 오전에도, 또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하신 어머님은 결국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시게 되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친정아버지의 수술 날, 시어머니 역시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했다. 남편은 차를 갖고 시어머니 병원으로, 나는 애를 유모차에 태워 달래가며 아버지 병원으로 갔다. 친정어머니가 지방에서 일하는 중이고 여동생도 직장에 있다 보니 급한 대로 어린 것과 같이 병원에서 동동거리며 수속을 밟았다. 간사한 생각이지만 내일 잡힌 아버지의 수술이 걱정되면서도 큰 병원에 온갖 환자들이 있는데 어린 딸이 감기라도 옮을까 자꾸 걱정이 되었다. 누워계신 아버지는 시어머니께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계속 걱정을 하셨다. 시간은 느리게 가고 마음은 점점 불편하고 무거웠다.

계속된 검사에도 시어머니의 출혈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남편은 더 이상 회사를 결근할 수 없어 초조해져갔다. 상황은 악화되어 어머니의 혈압은 급격히 떨어졌고 중환자실로 옮기게 됐다. 또한 출혈이 염려되어 화장실 거동도 금지되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검사를 받기 시작하신지 사흘 째, 가까스로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고작 사흘인데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밀린 일과 회사에 눈치가 보여 더 이상 병간호를 할 수가 없었고, 건강하던 아이는 병원 출입이 고된 것인지 감기에 수족구도 걸렸다. 임신 중인 나 역시 피로감에 저혈압이 오고 집안 꼴도 엉망이 되었다. 동서네 역시 맞벌이 하며 매일 병원으로 퇴근하고 회사의 눈치를 봐가며 병원에 들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젊은 자식 내외가 두 집이나 있건만 겨우 사흘 병간호에 지쳐버린 것이다. 어머님도 아들들에게 대소변 수발을 들게 하는 것을 불편해하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데, 겨우 사흘에 일은 일대로 몸은 몸대로 축나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답답했다. 남편도 더 이상은 휴가를 낼 수 없어 간병인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나와 남편 모두 간병인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작년에 잠시 어머님이 입원하셨을 때 다인실을 사용하며 지켜봤던 간병인들의 모습에서 진정성, 전문성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정아버지가 입원해 계신동안 마주친 조선족 간병인들 역시 환자를 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기보단 틈만 나면 간병인들끼리 모여 잡담을 하거나 잠을 자는 모습에서 내 부모를 저렇게 모신다는 것을 자식들이 알면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검색을 하던 끝에 보호자 없는 병동이 있는 환자안심병원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듣는 말에 남편도 의아해했지만 급한 만큼 '일단 한번 가보자'며 차에 올랐다.

처음 가본 환자안심병원은 우리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중증 환자들이 간병인도 없이 병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안하고 안쓰럽게 느껴졌었는데, 직접 와보니 온갖 짐과 간병인들의 떠드는 소음, 다인실에 여럿이 모여 있다 보니 느껴지는 답답함이 없고 쾌적한 병실에 잘 정리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의심이 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휴게실에서 귀동냥도 한 뒤, 어머니를 여기서 모셔야겠다고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친절하고 빠르게 처치해주는 간호사들 때문이었다. 큰 병원의 간호사들은 불친절하고 무신경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누구보다 전문적이고 상냥한 모습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입원 수속을 도와드리고 나오면서 솔직히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바로 회사로 가야하고 나도 아이의 수족구 때문에 집으로 향해야했지만 편찮으신 어머니가 혼자 계시며 서운하고 섭섭하진 않으실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어머니와 통화하고 난 뒤 두발 뻗고 몸을 기댈 수 있었다. 같은 병실에 계신 분들도 좋으시고 간호사님도 친절하시고 편하게 대해주신다며, 조용한 것도 잠들 때 편해서 좋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검사 후에도 검사와 관련한 것들이나 앞으로 일정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불안하지도 않고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이셨다. 직접 모시지 못한 죄송함이 많은 누그러들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호전되셨고 출혈도 거의 멈추셔서 음성이나 호흡도 많이 안정되셨다. 잠깐씩이라도 들를 때면 어머니의 표정이 밝으셔서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2주 후 퇴원할 수 있었다. 같은 병실에 계셨던 분들과는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으시며 퇴원 전에는 서로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어주셨다는 얘기에 웃음이 났다.

몇 주가 흘러 이제는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신 어머님은 아직도 가끔 간호사들이 생각난다고 한다.

"야야, 이상하지. 치료는 의사가 해줬는데 말이야, 간호사만 생각이나."하며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우리 부부는 환자안심병원에 모시길 참 잘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나누었는지 모른다. 또한 이렇게 전처럼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평범한 하루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런 집안의 우환에 입버릇처럼 두 돌 지난 아이 앞에서

"갑자기 아프시니, 이런 슬픈 일이 있나."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자주 했다. 어느 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 아프면 슬퍼? 아픈 게 슬픈 거?"라고 물었다. 생각 없이 "그래"하고 대답하려다가,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아픈 건 고치면 돼. 세상에는 병원도 있고 의사, 간호사 모두 도와주시니까. 그러니까 아픈 건 슬픈 게 아니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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