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시장가는 것, 제겐 특별한 일이었어요."

이은혜

발행일 2013.12.19. 00:00

수정일 2013.12.19. 00:00

조회 1,879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 `전통시장 코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올빼미버스 등 시민 말씀대로 탄생한 10가지 정책을 직접 경험한 체험담, 영상, 그리고 웹툰을 공모하는 <제7회 서울사랑공모전>이 지난 10월에 있었다. 서울톡톡에서는 그 중 이야기부문에 선정된 13편을 매일 한 편씩 소개한다.

[서울톡톡] 전통시장은 새빨갛다. 적어도 올 2월 '서울시티투어 전통시장' 행복동행을 하기 전까지 내겐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서울 전통시장은 핑크빛이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은 있지만, 노력하고 발전하는 서울 전통시장에서 나는 행복을 찾고 있다. 울퉁불퉁 나의 핑크빛 하트 모양 서울 전통시장이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서툴지만 조금씩 자신의 하트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이 흡사 나와 엄마의 어색하지만 따뜻한 행복동행 찾기와 같아 보인다.

어릴 적 시장 근처에 살았던 내게 시장은 울긋불긋 시뻘겋고 어둑어둑한 곳이었다. 쇠파리가 사방을 날아다니고 구더기가 욱신거리는 비위생적인 모습! 싸움이 일어날 듯 사방이 시끌벅적 난잡한 모습! 더욱이 시장 입구 화장실은 어렸던 내게는 더럽고 무서워 보였었다. 초등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시장 입구에서 떼기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떼기 모양을 맞추다가 화장실이 급해지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곤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시장 입구 화장실 밖에는 갈 데가 없는데, 그 곳은 어린 내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악마소굴처럼 보였다. 친구들 서넛을 데리고 같이 가야만 안심하고 볼일을 볼 수 있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관을 주로 이용하는 나였다. 주차장도 있고 위생적이고 안전한데가 악천후 걱정까지도 안 해도 되니, 전통시장에는 자연스레 발길이 끊긴 지가 여러 해다. 그런데 내게 벌겋고 어둑하기만 했던 전통시장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올 2월, 이모의 주선으로 엄마와 자리를 함께 했었다. 여느 모녀들처럼 싸우고 웃으며 지내는 '다정한 모습'이 우리에겐 어색한 말들이다. 나에게 엄마라는 자리는 10살 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로는 텅 비었다. 그토록 그리고 보고 싶던 엄마가 내가 성인이 다 되고 이젠 홀로 있는 게 더 편할 때 쯤 내게 찾아왔다. 솔직히 싫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다가 두 분의 재결합으로 함께 했었다. 같이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도 어색하고 목욕탕에 같이 가자는 것은 정말 남 같아서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이모의 자리 주선으로 처음으로 엄마, 나, 이모 이렇게 셋이서 나들이로 서울시티투어 전통시장 코스 관광을 하게 됐다. 이모 딴에는 무엇을 해야 엄마와 내가 친해질까 생각하던 차에, 모녀가 같이 장보는 모습을 보며 이게 가장 적당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는 자리인데다가 하필이면 전통시장 투어라고 하니, 더더욱 가기 싫었다. 처음에 이모 말을 듣고 전통시장이 뭔가 했다. 내 어릴 적 뻘겋고 어둑한 시장은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투어를 하게 되면서 재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명칭이 바뀐 걸 알게 되었다.

입술이 한 다발 튀어나온 나를 이모는 억지로 끌고 나왔다. 우리 세 사람은 이른 아침 동대문 두산 타워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가니 전통시장 서울시티투어 관련한 안내문이 있었다. 전통시장 서울시티 투어는 총 105분이 소요되며 3대의 버스가 3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출발해 '방산 중부시장 – 롯데영프라자 – 서울역 – 남대문 – 명동 – 종각 – 인사동, 탑골공원 – 종로 보석상가거리 – 광장시장 – 평화시장 – 도깨비, 서울풍물시장 – 마장동축산물시장 – 신당동 중앙시장'를 돌아보는 코스다. 아침에 원하는 곳에서 탑승해 가보고 싶은 시장에 하차해 돌아보고 버스 시간에 맞춰 다음 버스를 승차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 여러 번 탑승해도 가능하므로 일일투어권으로 서울 전통시장을 여유자적하며 살필 수 있었다.

매표소 앞에서 우리가 탑승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게 웬일?! 우리 눈앞에 홍콩이나 유럽에서나 볼 법한 2층 오픈버스가 있었다. 이번에 서울시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오픈형 버스였다. 기존의 시티투어 2층 버스도 예쁘지만, 2층 오픈 버스는 정말 해외여행을 온 마냥 기분부터 설레게 만들었다. 이모가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지, 이거 2012년 런던 sbs 올림픽 방송에 나왔던 오픈 버스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픈 버스로 기분 좋은 출발을 한다며, 오늘 무척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나 역시 겉으로는 무심한 척 했지만 왠지 오늘 여행이 기대가 되었다. 아직은 널리 홍보가 안 되었는지 시티투어 전통시장 코스엔 탑승자들이 많진 않았다. 대다수가 외국인들이었다. 나 역시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마트며 백화점이 있는데 할 일 없이 전통시장 시티 투어에 괜한 돈 쓴다며 이모에게 날선 말을 했었다. 더욱이 내게 전통시장은 안 좋은 기억뿐이니……. 아마 나와 같은 이들이 많아서일까?! 전통시장 시티투어 코스에 탑승하는 이들이 외국인 외에는 별로 없었다. 홍보가 덜 된 부분보다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전통시장 코스를 찾지 않는 거라면, 주변에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전통시장 코스 꼭 한번 구경해보세요. 우리 주변의 전통시장이 달라졌어요. 해외여행 못지않게 재미있으니 가족끼리 꼭 가보세요!"라고.

설레는 기분으로 출발했던 우리는 가장 먼저 방산시장에 가서 건어물 구경을 한 뒤 광장시장에 도착해서 빈대떡과 순대를 먹었다. 광장시장에는 5,000여 개의 도소매시장이 있어서인지 나전칠기, 수예, 침구, 여성의류, 직물, 포목 등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일일이 다 구경하며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에 오기로 하고 이동했다. 처음에는 썰렁하게 말도 없던 엄마와 나는 2층 오픈형 버스를 타며 조금씩 친해졌다. 버스를 탄 우리를 향해 사람들이 헬로우~ 하며 손을 흔드는데, 우리 세 사람 마치 외국인이 된 냥 외국관광을 하는 느낌이었다. 동대문 의류전문 평화시장에서는 엄마에게 스카프를 사서 선물로 주었다. 무뚝뚝하게 건네는 내게 이모는 "엄마에게 직접 매드려라"며 권하는데, 못이긴 척 엄마에게 스카프를 매주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엄마 얼굴에 패인 주름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픈형 버스와 2층 버스를 번갈아 타며 우리들은 전통시장 관광을 즐겼다. 여태껏 내가 알던 전통시장이 아니었다. 비가림개도 있어 악천후에도 시장을 찾을 수 있고,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화장실도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다.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는 몇 십 년 전 물건들도 있어 신기했다. 서울 약령시장에서는 한약재가 정말 저렴했다. 엄마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다음에 약령시장에 와서 한약재라도 사서 다려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다음 장소인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 갔다. 대형마트보다 30%가 넘게 저렴한 가격으로 축산물도 구매하고 고기도 먹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덕분에 우리는 마장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맛난 고기를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당동 중앙시장에 들려 떡볶이도 먹고 주방용품도 샀다. 다음에 우리 딸 결혼 혼수는 여기 와서 사야겠다는 엄마의 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엄마에게 못나게만 굴던 나인데, 엄마는 내가 밉지도 않은가 보다. 죄송스럽고 나도 모르게 콧등이 욱신거렸다.

아쉬운 전통시장 여정을 뒤로 하고 그날 우리 세 사람은 전통시장에 또 오자며 약속을 했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비가림개 아케이드설치, 오픈형 버스 도입 등 시설화 정책만 있는 게 아니라 노래자랑, 제비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 정책도 있어 전통시장 찾는 재미가 쏠쏠 할 것만 같다. 여기에 이런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싶다. 모녀 또는 부녀가 함께하는 전통시장 코스를 행사기획으로 마련해서 하루 일정동안 인증샷도 올리고, 일정 코스에서는 '노래자랑이나 부모님 업어주기, 모녀 및 부녀지간 세족식, 부모님께 편지쓰기' 같은 행사도 있으면 더 훈훈할 거 같다. 올 겨울 칼바람 속에 찾아든 '핑크빛 전통시장 나들이'가 우리 모녀에게도 따뜻한 희망 하트를 쏘아 주었다. 전통시장이 더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듯, 우리 모녀도 조금씩 훈훈함이 더해지고 있다. 희망서울에서 꿈꾸는 핑크빛 모녀의 행복찾기에 앞으로도 전통시장이 함께 해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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