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이순재의 시민청 나들이

시민기자 이현정

Visit5,265 Date2013.09.03 00:00






[서울톡톡]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에는 시민에게 활짝 열린 공간, ‘시민청’이 있다. 시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으며,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 외국인 관광객까지 언제나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투어’가 아닌 목적으로 시민청을 찾는 시민들이 있었으니, 이현정 시민기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시민들의 꿈, 희망, 도전이 있는 소박한 삶을 만나보자.



요즘은 싱그런 꽃 같은 아이돌보다 ‘할배’가 좋다. 그보다 이제껏 외면 받았던 황혼의 이들에 주목하는 할배 열풍이 반갑다.


“성공할거라 예상 못했죠.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게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천진난만하기도 하고, 진실이 있고, 그래서 시청자들이 좋아하시는 모양이예요.”


지난 28일, 8월의 시민청 토크콘서트의 주인공은 요즘 대세 중의 대세라는 꽃할배 H1 이순재 씨였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노배우들의 첫 여행


“과거 풍문에 들었던 명화들. 우리가 화보에서만 보던 것을 직접 보니까 좋잖아? 객지 나갔는데 많이 다니면서 봐야되는 거 아닌가요? 많이 보고 싶어서 가다보니 빨라졌는데 지들이 못 따라온거지, 내가 빠른 건 아니지.”


그의 눈빛엔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브르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순간 ‘죽어갈 때도 잔상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던 신구 씨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우리는 작업상 긴 여행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드라마라는 것이 이번 주 대본 받아 가지고 이번 주 녹화해서 다음 주 방송해야 하는 건데, 연속극 한 번 걸리면 거의 밤 샌다고.”


젊었을 땐 먹고 사는 게 바빴다. 이순재 씨는 이제껏 해외에 나가본 게 ‘딱 세 번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것도 드라마 촬영과 국회의원 시절 해외 일정이 전부였다고 하니, 그나마 관광에 가까운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란 얘기다. 대발이 아버지, 버럭순재, 야동순재에 이어 새롭게 붙여진 ‘직진순재’라는 별명에는 기실 한평생 연기밖에 몰랐던 노배우의 삶이 담겨있는 듯싶다.



딴따라라 불려도, 수입은 거의 없어도, 예술로 직진


“더러 얘기해요. 천천히 좀 쉬어 가자고. 근데 그거 안하면 내 생명이 끝나는 건데, 그게 내가 해야 할 과제고, 그것으로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거고, 생의 원동력인데…….”


어느덧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는 연기, 황혼의 노배우는 그렇게 인생 후배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얘기를 건넨다.


“당시 행정관, 의사, 은행원. 교수가 최고의 직종이었지. 그에 비하면, 우리 직종은 바닥이야, 바닥. 부모 99%가 모두 반대하는 딴따라였지요.”


그러함에도 ‘잘하면 예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한 일이다보니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연기 · 연출 등 이론 서적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대학 동아리 동문들과 외국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다. 이순재 씨는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20대부터 지금까지 늘 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나운서도 그렇지만, 배우도 정확한 발음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 장음 · 단음 구별 등 정확한 발음 교정을 위해 국어사전을 끼고 연기 연습을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치열한 자기 훈련을 통해 국민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가족이 있어 마음 놓고 걸어온 한 길


연기생활 50년, 겉으론 화려한 이들의 생활엔 여행은 물론이고, 가족도 없었다.


“신혼 초, 제가 집에서 잘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에 일주일 아니면 닷새 정도였어요. 영화 열 편을 동시에 하니까. 하루에 네 군데 다니며 찍은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모처럼 집에 들어오면 자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서 우리 애들은 아버지하고 기억, 추억이 없다고 얘기해요. “


무용을 전공한 아내가 자기 것은 다 접고 뒷바라지를 해준 것이 마음 놓고 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단 얘기다. 애써 표현하지 않지만 내심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진심어린 고마움이 느껴진다.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가거라’


이날 콘서트에서는 이너밴드가 꽃보다 할배 ost로 인기몰이 중인 ‘대지의 항구’와 김국환의 ‘타타타’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 중간 중간 들려주었다. 가만 귓가에 맴도는 노랫말이 노배우의 인생을 얘기하는 듯 싶다.


서울대학교 연극동아리 총동문회장인 이순재 씨는 현재 대학동문들과 함께 막바지 연극 준비로 한창이다. 이날 시민청 토크콘서트도 연극 총연습 중 짬을 내어 찾은 것이라 한다. 관악극회 두 번째 정기공연으로 선보이는 연극은 아서밀러의 ‘시련’. 이번 작품에서 그는 연출을 맡았다. 지난 88년 ‘가을소나타’ 연출 이후, 25년 만에 다시 연출가로 나선 것이다. 9월 5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라 하니, 직진 순재의 계속되는 도전에 박수를 보낼 겸 한 번 찾아봐도 좋겠다.






■ 시민청 토크콘서트
사회적으로 깊은 관심을 받고 있는 유명인사를 초청, 그들의 비전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강연 프로그램. 음악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진정한 힐링(Healing) 콘서트다. 한 달에 한 번 매달 마직막 주에 열리며, 9월에는 손택수 시인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안내 및 접수 신청 : http://www.seoulcitizenshal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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