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운영하는 직원협동조합 (1)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현정

발행일 2013.06.11. 00:00

수정일 2013.06.11. 00:00

조회 2,431

[서울톡톡] 을의 설움, 갑의 횡포로 떠들썩한 즈음, 서울시 시민참여 자유게시판에 홀로 협동조합 설립을 마친 후기 한 편이 올라왔다. 후배 직원들을 대신해 쓴소리 한 번 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퇴사당한 어느 중년 직장인이 을의 설움을 딛고 협동조합의 길로 들어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마치며>란 후기의 주인공,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김희범 씨와 유지보수협동조합 식구들을 만나보았다.

샐러리맨 을의 설움을 딛고

김희범 씨가 재직하던 K사는 10억 대의 순수익을 내던 튼실한 중소기업이었다. 문제는 대표가 독단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발생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은 결국 재정 악화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 회사는 적자가 예상되자 직원들의 인센티브나 각종 수당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 버렸다. 직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감수하려고 했지만 며칠 후 겨울철 무급휴가를 실시한다는 통보가 이어졌다.

"대부분 건설업계 회사가 겨울철 비수기에는 교육, 정비, 휴식 시간으로 보냅니다. 대표는 겨울철 1/2을 무급휴가를 실시하겠다고 또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실무부장으로 책임감을 갖고 직원들을 위해 사장님께 직언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대표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히 부장이란 놈이 사장 말을 거역한다'고 전 직원 앞에서 퇴사 명령을 통보하였습니다. 저는 저항 한 번 못하고 실업의 공포 속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어요. 큰 아들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휴식이나 원망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바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이 49세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0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단 두 군데였고 면접에서 모두 낙방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던 김희범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지하철 객실 내에 붙은 서울시 협동조합 광고였다.

"협동조합을 잘 운영하면 21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을'의 서러움, 셀러리맨의 아픔을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책도 찾아보고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본격적인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김희범 씨의 뜻을 알게 된 전 직장 후배들도 너나없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똘똘 뭉쳐 모두가 주인인 회사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조합원 서로에 대한 믿음과 협동조합에 대한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모두 7명. 모두 유지보수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팀장급 직원들이다. 이제껏 함께 일이다보니, 큰 어려움 없이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초기 운영자금을 산출해 필요한 출자금도 모았다. 조합 정관 상 출자금은 1구좌에 10만 원. 대략 1인당 200구좌 정도 납부해 총 출자금 1억 2,0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출자금 규모만 보면 현재까지 설립된 협동조합 중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사업 운영을 위한 집기도 주위에서 협찬 받은 중고품으로 하고 인맥을 동원해 홈페이지도 저렴하게 만드는 등 초기 설립비용도 간소화했다.

유지보수와 같은 건설 사업은 많은 자본금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발주할 때 자재를 가져다 쓰고 하청업체 대금 또한 공사 후 지불하는 게 관례인지라 영업 능력만 있으면 큰 자본 없이도 가능하단 얘기다. 하지만 유지보수협동조합은 또 다른 을의 눈물이 될지 모르는 불공정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출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갑을 관계없이 모두가 행복한 회사

건설업은 일반적으로 원청사 혼자가 아닌 여러 하청업체가 힘을 합쳐 공사를 진행한다. 그간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구조는 건설업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공사비를 적정공사비 이하로 책정한다거나, 늦장 지급하는 것도 모자라 떼어먹기도 한다. 대물변제나 어음 돌리기는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원청업체인 갑의 횡포는 부실건설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기계설비유지보수업도 특성상 협력업체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원청과 하청 관계로 일을 하게 되지만, 이곳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에서는 협력 관계를 이뤄 함께 일을 한다. 갑을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모든 관계는 평등하게 하자는 원칙을 정했었죠. 그래서 협력업체 12명의 전문가들을 기술위원으로 위촉해 업무 관련 운영회의에서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세한 하청업체에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한다 생각에서 저희는 공사 시작 전에 공사대금을 미리 지불합니다. 대신 업체에선 자재를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들 협력업체의 베테랑 기술자들은 현재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의 기술위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기술위원들은 업무관련 운영회의에 들어와 협동조합 직원과 동등한 자격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서류상으로는 조합원은 아니지만 조합원 이상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효율적이며 전문성이 강화된 작업 환경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기술위원들과는 정기적으로 3개월에 한 번 씩 회의를 하도록 되어 있으나 업무가 있을 때는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만난다고 한다. 큰 공사가 들어오면 컨소시엄을 이뤄 이익 분배 또한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투명하고 정직한 운영으로 신뢰를 쌓다

"대부분 업체들은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견적서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디테일하게 견적서와 함께 제안서를 제출하죠. 직접 구두 설명도 하고 필요에 따라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공사가 끝난 후에는 공사보고서를 별도로 제출합니다. 또한 공사 후에 하자보증 증권을 끊어주는 등 100% 믿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견적서와 제안서에 공사완료보고서와 보증보험증권 발행까지, 이러한 과정은 능력이 없거나 자신이 없다면 구지 할 필요도, 할 수도 없는 작업이다. 정직함과 안전을 최고로 생각하는 협동조합이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설비 배관 공사를 하면 업체마다 견적서가 들어가는데, 부속자제까지 세세히 아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작은 부품까지 세세하게 견적서에 표기해 알리는 업체도 없고… 대부분 토털 얼마 정도만 기입하죠. 일례로 국내산 KS부품을 쓸 거냐, 아니면 비품 쓸 거냐 그런 것까지 명시하는 업체는 거의 없어요. 국내산과 수입제품은 단가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근데 그게 한두 개가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금액 차이가 많이 나게 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거품이 생기는 거죠. 저희는 국내산을 쓸 것인지 수입자재를 쓸 것인지 미리 여쭤봅니다. 단가 차이가 얼마만큼 나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웬만하면 국내산 KS제품을 쓰도록 합니다."

기술영업부 이사 김영민 씨의 설명이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에서는 견적서에 작은 부품 종류와 가격 단가 등까지 세세하게 기입하고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종류에 따른 단가 차이를 확실히 알리고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고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꼼꼼하게 견적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서로 챙겨주자. 그리고 욕심을 버리자'라는 뜻을 모아 조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 건으로 확 벌면 물론 당장의 이익은 크게 발생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00만 원 이익 낼 수 있는 걸 50만 원만 남기면 2차 발주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업의 수익성만 보고 가는 것보다 그렇게 사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저희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고객을 만들려면 저희가 그만큼 솔선수범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 시공하고 시공 금액에 대한 거품도 어느 정도 낮춰야 되겠죠. 성실한 기업, 항상 같이 갈 수 있는 조합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인맥도 쌓아가고 평생 고객이 될 수 있는 끈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유지보수협동조합 두 번째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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