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모임에서 협동조합으로, 영세봉제공장의 희망 찾기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현정

발행일 2013.05.24. 00:00

수정일 2013.05.24. 00:00

조회 2,844

[서울톡톡] 골목골목 돌산 밑 절벽마을로 이어진 길엔 가끔씩 오가는 오토바이와 작은 트럭들이 눈길을 끈다. 낮은 상가 건물 뒤로 다세대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이곳은 그저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 아니다. 이들 다세대 주택에는 동네 옷가게보다 작은 봉제공장들이 숨어 있다. 이곳이 바로 동대문시장 옷 생산기지, 창신동 봉제골목이다. 2,800여개의 영세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 창신동 봉제골목에도 협동조합의 바람이 불었다. 영세공장 사장들이 모여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647 골목에서 고기 구워먹다 협동조합 설립까지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은 '647모임'으로 시작해 '의류봉제사랑회'로 발전한 친목모임 회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2008년도인가? 서울시에서 무상으로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교육이 있었어요. 8주 동안 매번 만나 교육을 받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죠. 그때 수료한 9명이 계속 만남을 이어갔는데, 주로 요 앞 골목길에서 모여 고기를 구워 먹었지요. 그 때 지나가던 주민들도 같이 어울려 먹다 멤버가 되기도 하고 그랬어요."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박귀성 회장은 늘상 해오던 얘기인 양 조합의 지난 역사를 술술 풀어간다.

"골목서 고기를 구워먹다 보니 민원이 들어와서 인근 식당으로 옮겨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죠. 다들 이곳 창신동 647번지에서 공장을 하는 사람들이라 모임 이름도 '647'이라 하고..."

그야말로 단순한 친목이던 647모임은 다달이 사람이 계속 늘어났다. 10명이 20명이 되고, 그렇게 계속 늘어나 몇 년 새 200명이 되었다고 한다.

"하다 보니 사람 수가 너무 많아져서 조직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거예요. 그래서 결국 단체를 만들게 되었지요. 다들 봉제하는 사람들이라 '의류봉제사랑회'라고 모임 이름을 바꾸고 봉제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한 것이지요."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중국, 베트남 등에서 밀려온 저가 의류와 중저가 제조·유통 일괄의류브랜드들로 인해 일감은 점점 줄었다. 일감이 감소했다고는 하나 일손이 덜어진 것은 아니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쉴 새 없이 새로운 물건을 내 놓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맡긴 옷이 저녁에 나온다'는 말은 여전히 이곳 영세 봉제공장들에겐 유용하다. 아침에 주문한 옷이 재단 과정과 미싱을 거쳐 순식간에 옷으로 만들어진다. 이렇듯 대부분의 봉제공장들은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비수기인 1, 2월이나 휴가철이 끼어있는 여름 시즌에는 일감이 없어 폐업 상태나 다름없는 곳이 많다.

현재 이곳 봉제공장 종사자의 평균연령은 50대.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설사 젊은 사람들이 온다해도 이들을 교육시킬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주문 즉시 하루 안에 뚝딱 만들어내는 봉제공장의 구조는 숙련공들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초보자를 데려다 가르치며 키워낼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곳 창신동 봉제공장들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젊은 이주 여성들은 아무래도 어린 자녀들이 있으니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 이곳 환경에서 근무하기 힘들지요. 저 같은 경운 36년 동안 봉제일을 해왔는데, 이젠 일감 구하기도 힘들고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배우는 사람은 없고 그러니 미래가 걱정이죠."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구연희 과장의 설명이다.

박귀성 회장은 현재 이곳 창신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조합원의 80% 이상은 이곳 창신동의 소규모 공장 사장들이다. 종업원 3~4명이 일하는 영세공장 사장이지만 봉제 경력만 최하 25년 이상인 그야말로 잔뼈 굵은 장인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겐 오늘날 봉제산업의 현실이 피부 깊이 와 닿을 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봉제사업의 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이들을 모이게 했고 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의 결핍된 공간에서 시작된다.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찾아다니다 결국 뜻 맞는 부모들이 힘을 모아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든 것처럼, 안전한 친환경 먹을거리를 찾아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듯이, 협동조합은 절박함을 느낀 이들이 협동의 힘으로 문제를 개선하고자 만든 조직이다.

실제 새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이들을 보면 '5명이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데 우리도 한번 만들어볼까?'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협동조합은 임의단체가 아닌 법인체이다. 쉽게 생각해서 만들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문을 닫을 수 있는 일종의 동아리가 아니란 얘기다. 마음과 뜻을 모아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출자로 만든 작은 회사이기에 그 정성만큼이나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먼저 우리에게 어떤 절박함이 있는지 자기 점검부터 해보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공동브랜드 개발과 공동구매로 활로를 모색하다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에서는 현재 공동브랜드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브랜드 개발을 통해 오늘 주문받아 내일 물건을 납품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여름 상품을 봄부터 준비하는 계획 생산이 가능한 체계로 차츰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간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합리적인 거래가 가능한 토대를 만들고 아울러 신진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도 진행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또한 원부자재 공동구매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은 지난해 7월부터 준비해 12월 창립총회를 거쳐 지난 1월 설립 인가를 받았다. 출자금은 한 구좌 10만 원으로 별도의 조합비는 따로 받고 있지 않다. 46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협동조합은 2013년 4월 현재 조합원 수가 200여 명이다. 조합원 증가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의류봉제 사랑회' 430명 회원 중 절반 정도가 조합원이 된 것이다.

"물론 사랑회 회원들이 모두 조합원이 되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이곳 봉제골목에서는 10만원 내기도 벅찬 분들도 있습니다."

현재 협동조합이 설립되었지만 '의류봉제사랑회' 모임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매달 한 번씩 진행하는 모임은 밤늦게 끝나는 봉제일과의 특성상 밤 9시에 모인다. 이러저러한 세상살이 얘기나 일감 얘기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지만 매월 150명의 회원이 참여할 정도로 끈끈함을 자랑하고 있다. 사랑회는 조합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사랑회 모임을 시작하며 사무실 있어야 하니 임원들 중 열사람만 300만 원씩 내보자 했었죠. 그런데 스물 한 명이 낸 거예요."

친목모임인 사랑회 시절부터 이와 같이 열성적인 임원들이 있었기에 조합 설립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곳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은 신설협동조합 치곤 조합원수도 많고 임원진도 비교적 탄탄하게 꾸려진 조합이다. 이는 친목모임 시절부터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김 사장님"
"워메 부위원장 와 버렸네." "아따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임시이사회가 열리는 조합 사무실에는 속속 조합 이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반갑게 인사 나누는 소리며, 전화 소리, 참가 여부를 확인하는 소리까지 조용했던 사무실이 이내 시끌벅적하다. 4개의 팀으로 나눠 조장 하에 출석체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팀, 2팀, 3팀, 4팀, 빠르게 출석을 확인하는 것이 나름 재미있었다. 간간이 섞여 나오는 사투리도 정겹다.

이곳 봉제협동조합은 이사를 포함한 운영위원은 43명. 이날은 워낙 급박하게 잡힌 이사회다 보니 25명 정도의 인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40명 가까이 참석하며 출석률도 높은 편이라 한다. 이 날 임시이사회에서는 공동매장 확보에 따른 이전 문제가 주로 논의되었다.

"솔직히 저흰 협동조합 내용은 잘 몰랐어요. 구과장이 알아서했죠. 여기선 알짜형, 척척박사로 통해요."

이들에게 협동조합에 대해 알려주고 설립에 필요한 제반 서류를 준비하고 인가에서 법인 등록 과정까지 실질적인 일을 진행한 이는 구연희씨다. 50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도 똑 부러지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그녀가 첨부터 예사롭게 보이진 않았다. 협동조합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나 중장년층 남성들 특유의 권위의식과 '내 밑에서 일하던 누구'라는 일종의 서열의식이 남아있는 제조업 공장들에선 더더욱 쉽지 않다. 이곳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도 실제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원칙 맞게 운영해 하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앱으로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협동조합 실무 일을 할 수 있는 인력도 양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도 괜찮을 듯싶은데..."

구연희씨의 바램처럼 누구나 재미있게 게임하듯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신설협동조합에 대한 금전적 지원 외에 교육이나 인력양성 등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도 필요할 듯싶다. 더불어 선배 생협들의 적극적인 연대의 장도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표 의류를 생협 장보기를 통해 만난다든지, 그렇게 협동조합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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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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