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장인들의 협동조합 만들기

시민리포터 이현정

Visit1,953 Date2013.05.16 00:00

[서울톡톡]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을 찾아가 보았다. 협동조합 설립과 지난 몇 달간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생산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위해 어떤 준비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효율적인 구성과 합리적인 경영으로 안정적인 조합을 설계하자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어요. 일을 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마케팅이나 제작 등을 소화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각자 역할을 분담해 힘을 합쳐보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죠. 마침 협동조합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살펴보니 취지가 맞고 그 틀을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이사장 박경진씨의 설명을 듣자니, 성수동 수제화 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는 신문기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저가의 중국제품에 밀려 자체 판로를 잃고 하청업체로 전락한 영세공장들 얘기며, 유명브랜드 회사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기사며, 한때 잘 나가던 구두공들의 수임도 예전만 못해졌다는 기사까지…



한국 성수동 수제화협동조합의 조합원의 수는 7명. 적은 수의 인원지만 수제화 제조공장 사장은 물론이고 내피 ․ 원단 등 원부자재 수입자나 MD, 디자이너 등이 함께 일 하고 있다. 제품기획과 디자인, 자재 수입에서 생산까지 완제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전문인력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효율적인 구성인 듯싶다.


“함께 구성되어 있으니 예산도 절감할 수 있고 각자 역할을 하며 서로 보완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큽니다. 제조 부문에선 상당히 이상적인 구성이라고 하더군요.”


협동조합은 안정적인 자금력을 확보한 큰 기업들과 달리,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신생협동조합의 경우, 사업이 안정화되기까지 마냥 버텨 낼 막강한 자금력까지는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협동조합도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될 때까지는 초기 출자금으로 버텨야할 경우가 많다. 신생협동조합 중에도 지난 몇 달 사이 개설 당시 확보한 종잣돈도 소진되어 앞으로 운영에 대한 고민에 빠진 곳도 있다고 한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저희는 따로 매장을 내진 않기로 했어요. 매장의 경우는 상당히 많은 부대비용이 들어가는데, 동네 장사거든요. 게다 이런 부대비용은 결과적으로 제품 가격 상승을 가져올 테고… 그래서 저흰 매장보다는 리스크가 적은 온라인 쇼핑몰과 수출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조합을 운영하는 이사 · 실무진이 별도의 임금을 받지 않고 조합을 꾸려나가고 있어 현재까지 큰 문제없이 유지할 수 있었죠. 하반기 수입이 많아지게 되면 적은 금액이라도 이들에 대한 임금을 지급할 생각입니다.”


조합 실무진의 임금이 지불되는 순간, 적자 폭이 커지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이사진의 불만은 없을까?


“불만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문제없이 조합이 오래도록 잘 유지만 되어도 좋겠다 싶거든요. 그래도 생활을 유지하려면 따로 일을 해야 하니,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죠.”


이사장 박경진씨는 현재 조합에서 구두 디자이너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웹 디자인이나 패키지 디자인까지 모두 해내고 있다. 문득 제법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생협들의 초창기 모습이 떠오른다. 공급 후 남은 유정란이나 채소 등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길에서 팔던 한살림 초창기 활동가의 이야기며, 공급차가 없어 생산지에서 보낸 물건을 터미널에서 화물로 받아 지하철을 타고 공급하던 여성민우회 행복중심 생협 이야기까지… 이렇듯 초기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탄탄한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


“이제껏 예쁘고 좋은 디자인만 생각했는데 협동조합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수제화 공정에 따른 내용 자체도 볼 수 있는 판단력도 생기고 가치관도 변하게 되었어요. 조합원 여러 분들이 디자인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직접적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한참 얘기를 나누다보니, 함께 일하는 조합원들의 이사장 자랑이 이어진다.


“영국 쪽에서 온라인 런칭 제안도 들어오고 며칠 전에는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회사의 바이어가 직접 다녀갔어요. 크리스진(한국성수동수제화협종조합 공동브랜드) 홈페이지를 보며 관심 갖고 지켜보다 한국에 올 기회가 되서 방문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처음 이사장 자리를 슬며시 욕심내던 분들도 이젠 이사장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기꺼이 함께 하고 있다. 사실 수제화업계 정서상 젊은 여성 디자이너가 대표가 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다. 이사장을 구심점으로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지원에 대한 관심을 열어놓고 있지만 지원을 위해서 뭔가를 억지로 만들어 낼 생각은 없습니다.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해 나가는 방향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싶거든요. 지원에 초점이 맞춰지면 협동조합이 지속되지 않고 흔들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조합이 장기적으로 오래 유지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참으로 똑 부러진 대답이다. 이제 몇 개월 되지 않은 협동조합의 생각이라니 내심 놀랍기조차 했다.


“돈이 일순위가 되면 위험하다 생각해요. 조합 설립의 목적이 지원이 되면 안 되죠.”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식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에 탄탄히 뿌리내리려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건강하게 느껴졌다.


신생협동조합의 고민은?


“협동조합 설립 후, 운영에 대한 교육 등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설립 절차에 대해서는 교육이나 상담 받을 곳도 많이 있는데 설립 후 절차 등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실제 협동조합으로 인가가 나오면 기간 안에 법인 등록까지 마쳐야 하는데 그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거든요. 게다가 실제 법인 등기해주는 등기사도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설립 후 상담 받을 곳이 마땅히 없다보니 지식경제부에서 나온 200페이지 이상 되는 지침서를 교재 삼아 공부하고 자체적으로 조사 ․ 연구하며 해결해왔다고 한다. 그나마 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의 경우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방면의 정보를 나눌 수 있어 그나마 수월하게 해결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신생협동조합이 적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조만간 이미 설립한 협동조합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의 장이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 사회적경제과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현재 운영하고 있는 협동조합 상담센터를 ‘지원센터’로 확대 ․ 개편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이들 신생협동조합이 직면한 어려움과 변수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협동조합 관련 기사 중에는 협동조합에 대해 다소 부풀려진 내용도 많다. 마치 몇몇 협동조합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지금의 모습인 양 얘기되어지기도 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게 하는 내용도 보인다. 때론 협동조합을 마치 노동조합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단체쯤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와 다소 차이가 나는 이런 얘기들은 조합원 사이에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들은 그때 그때 해결합니다. 부풀려진 내용은 정확히 다시 짚어보며, 계획으로 발표된 것인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인지 등을 확실히 구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지난 몇 달간 조합을 운영을 하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 생각을 혼자만 갖고 있으면 결국 자기 최면에 빠져 더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자주 만나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더 나은 품질을 꿈꾼다



지난 4월 성수아트홀에서는 ‘손, 작은 마을의 희망 수제화 장인들의 사진전’이 열렸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개최한 사진전으로 성수동 수제화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사진전이었다. 성수동 수제화 장인들의 작업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들은 모두 박경진 이사장이 디자인 연구를 위해 틈틈이 찍어둔 사진들이라 한다.


“공장에 가보면 폐쇄되어 있는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오늘 몇 개 만들었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분들이신데… 사진전을 통해 이분들의 자존감을 높여드리고 싶었어요.”


이곳 성수동 수제화영세공장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고 한다. 수제화 기술이란 게 최하 3년은 배워야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다보니, 외국인 근로자들도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이란 얘기다.


이곳 성수동 수제화 공장에서 일하는 구두공은 대부분 30여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수제화 장인들이다.


“전시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나 관람객의 반응을 보며 우리들이 하는 일이 가치 있게 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결과적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인드도 갖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국성수동수제화협동조합 홈페이지(http://coop5.tistory.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에서 자체 제작한 수제화 구두는 조합 사무실이나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다누리샵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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