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협의 건강은 과연 누가 지킬까?
시민리포터 이현정
발행일 2013.05.07. 00:00
[서울톡톡] 무늬만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사무장병원 등으로 불리는 유사 의료생협(유령 의료생협)의 문제가 심각하다. 유사 의료생협과 달리, 협동조합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건강한 의료생협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의료생협연합회)' 가입 여부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료생협연합회는 왜 만들어졌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유사 의료생협과 다른 건강한 의료생협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한국의료생협연합회를 찾아보았다.
건강한 의료생협을 키우는 교육의 장
불광역 인근 옛 질병관리본부 터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건물 곳곳에서 다양한 모임과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용은 하지 않고 회의만 참석하는 이사, 띄엄띄엄 참여하는 이사. 떠넘기는 이사, 이런 사람들은 이사가 되어선 안 되겠죠?"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신입임원 교육이 진행되는 교육실에선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권영근 소장의 강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바탕 웃고 넘기긴 했지만 내심 허를 찌르는 말들이 이어진다.
"조합원으로부터 의결권과 선거권을 위임받은 대의원은 총회 등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위임 받은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위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들 또한 조합원을 대표하여 회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조합원의 의사를 대변하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은 설립취지에 동의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해 만들어가는 곳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스스로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출자도 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조합의 사업방향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데도 참여해야 한다. 출자, 이용, 참여는 조합원의 권리이자 의무인 동시에, 협동조합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이날 교육은 회원의료생협에서 새롭게 선출된 이사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협동조합의 정의와 가치, 원칙에 대한 강의와 함께 의료생협의 역사와 활동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또한 신입임원의 책임과 역할 등 임원의 자세를 가다듬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신입임원 교육이라 해서 기대 많이 하고 왔습니다. 제가 임원으로 자질이 있나 궁금하고 다른 지역 의료생협 활동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산의료생협 신입이사 고환순 씨의 바람처럼 교육 시간은 신입임원들을 위한 맞춤정보 제공의 장이자, 동시에 여러 생협들과 자연스런 교류의 장이 되었다.
건강한 의료생협들의 자발적 모임, '한국의료생협연합회'
한국의료생협연합회는 전국의 건강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연합회이다. 협동조합은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연합회를 꾸리기도 한다. 이들 협동조합연합회도 협동조합 원칙을 지키며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원 협동조합들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조직으로 회원 조합의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교육사업 및 홍보, 신규 조합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원 생협 임원이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의사 연수뿐만 아니라 의료생협 전반에 대한 연구조사를 통해 회원 생협이 필요로 하는 의료생협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의료생협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의료인 양성 및 사업 모델 개발 등의 활동도 하고 있으며, 건강한 의료생협을 준비하는 조합을 위해 신규 의료생협 설립 지원도 함께 하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홍보 및 연대 활동을 통해 의료생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최봉섭 이사는 "의료생협의 주기능과 목적은 1차 보건 예방 활동을 통한 조합원들의 건강 증진 및 의료 · 보건 · 복지를 네트워크화 하여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며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밥도 제대로 잘 챙겨 먹진 못할 것이고, 집도 엉망이고 지저분하죠. 그러니 영양 상태는 물론이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겠지요. 그러한 분들께는 의료 · 보건 · 복지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의료생협은 전문적인 의료와 활동가들이 같이 결합해 있어 고령화되고 있는 지역사회의 변화에 맞춰 적합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지요. 건강과 관련된 방문 관리도 하고, 집도 청소하고 말벗도 되어드리는 복합적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생협의 고민은?
하지만 의료생협의 길은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실제 적지 않은 지역의료생협이 경영 적자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많이 보거나, 검사와 같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을 따로 해야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의료생협은 정직한 진료를 원칙으로 불필요한 진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환자 1인당 충분한 진료 시간을 지키고 있어 환자 수를 많이 볼 수도 없지요. 당연히 일반 병원에 비해 진료 수입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조합원 활동이나 지역 사회 기여하는 여러 활동들을 함께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출이 많은 편입니다. 의료생협은 태생적으로 수익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현재 의료수가체계가 치료 행위에만 돈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니, 보건 예방 활동은 아무래도 뒷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것은 보건 예방 활동이나 건강 증진 교육이다. 이러한 사전 건강관리는 결과적으로 병원에 가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비용적 측면에서 보다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왕진이라든지 교육 · 보건 예방 활동 등을 수가화한다거나, 공익적 사업으로 인정하여 지원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함께 할 의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의료생협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이다. 현재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소속 의료생협 중 마포, 시흥, 안양 등 여러 생협에서는 의사를 찾고 있다고 한다. 환자의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감싸 안는 의사, 수술 등의 방법 보다는 건강한 식단과 운동 등 생활 개선 활동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 주민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의사, 건강한 삶을 위한 지혜를 미리 알려주고 실천하도록 권하는 의사,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쉬운 길을 두고 보람 하나로 의료생협과 함께 해 줄 의사를 만난다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도약,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현재 한국의료생협연합회에는 전국적으로 20여개의 의료생협이 소속되어 있다. 서울에는 우리네한의원 · 우리네 치과 · 재가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료생협, 은평구에서 살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살림의료생협, 노원구에서 함께 걸음 한의원과 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함께 걸음 의료생협 등이 있으며, 현재 병원 개설을 준비 중인 마포의료생협 등이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등록된 의료생협은 300여개가 넘는다. 대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만든 유사 의료생협들이다. 의료법상으론 의사나 의료법인, 국가, 지방자치단체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으나 의료생협을 통하면 비의료인도 병원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을 악용해 의료생협을 설립하고 있는 것. 이들은 설립허가를 받을 수 있는 서류상 조건만 맞추거나 허위로 조작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의료생협으로 등록하고 있다. 실제 주민이 만들고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라기보다는 설립자가 사무장직을 맡아 이윤을 추구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 많다. 이러한 무늬만 의료생협들은 과잉 · 불법 진료, 진료비 과다 청구 등으로 사회 문제화 되고 있어 보건 당국에서 골머리를 않고 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건강한 의료생협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지역주민과 신뢰를 쌓고 만든 조합들이 이러한 유사 의료생협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목적과 본질이 왜곡되어 의료생협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소속 회원생협들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브랜드화해 유사 의료생협과 차별화하고 보다 건강한 의료생협의 길을 굳건히 가고자 함이다. 서울의료생협을 비롯해 그간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은 의료생협들은 조합원 총회를 거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 마을, 우리 병원, 우리 주치의'는 어찌 보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지향하는 조합원들의 요구이자, 우리네 소시민들의 바람일지 모르겠다. 지역 주민들의 크고 작은 병력까지 꾀고 있는 우리 동네 의사와의 기분 좋은 만남을 통해 나와 내 가족, 지역민의 건강을 지키고, 예방 교육과 건강 실천도 함께 하며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일, 의료생협이라면 함께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 딱 보면 알 수 있는 유사 의료생협 구별법! 건전한 의료생협과 달라도 너무 다른 유사 의료생협,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구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사 의료생협을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을 알아보자. - 간판 등에 의료생협 표시가 눈에 잘 띄도록 되어 있나? 유사 의료생협들은 영리를 위해 의료생협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병원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간판이나 서류 등에서 의료생협 명칭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면 일단 유사 의료생협임을 의심해보자. - 조합원 가입 안내를 제대로 하고 있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생협들은 조합원이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더군다나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꺼린다. 조합에 대한 안내도 하지 않고 가입 권유도 하지 않는다면 일단 의심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가입하는지 알 수 없으며 제대로 된 안내조차 받을 수 없다면 유사 의료생협일 확률이 높다. 반면, 건강한 의료생협들은 조합 안내와 출자, 참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조합을 알리는 게시물이나, 모임 안내, 조합 소식지와 같은 홍보물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조합원 명부나 회계 장부 등을 비치해두고 조합원들이 원할 경우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나? 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 명부, 회계장부 등 조합 운영자료를 조합원들이 항상 볼 수 있도록 비치해두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유사 의료생협은 이러한 운영자료를 쉽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 소모임이나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나? 유사 의료생협은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임이나 지역 모임 등을 활성화하는 일엔 관심이 없다. 어떤 모임이 있는지,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도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일단 유사 의료생협이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 건강강좌나 거리건강 체크 등 지역보건 예방활동을 하고 있나? 협동조합의 사회적 기여는 마땅히 지켜야 할 운영 원칙이다. 하지만, 이윤이 목적인 유사 의료생협은 취약계층을 위한 보건활동 등 사회적 기여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밖에 조합원에 대한 교육이 없고, 총회 진행 여부 등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유사 의료생협일 확률이 높다. 또한, 유사 의료생협은 출자구조가 몇 사람에게 편중되어 있으며, 탈퇴 시 조합비를 돌려주는 등의 조합원 권리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구별이 모호하다면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 연합회'로 문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문의: 02) 835-5412, http://www.medcoop.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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