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인생 앞에선 누구도 울지 않을 수 없다
서울톡톡 박혜숙
발행일 2012.12.12. 00:00
[서울톡톡]인생이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똑같은 삶이란 없다. 그것이 인생의 재미이면서도 또한 슬픔이다. 故 김우수씨의 삶을 들여다보면 시작은 슬픔 그 자체였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고, 살기 위해 앵벌이를 했지만 그것마저도 힘 있는 자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 호객행위로 번 돈을 그나마 믿었던 형에게 사기로 잃은 뒤, 시비가 붙은 취객들과 함께 죽고자 온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몸뚱이 하나로 이 세상에 온 그에게 분노가 살아가는 힘이었고, 친구라곤 외로움뿐이었으니 죽음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인생엔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바라던 그를 생명이 더욱 확고히 붙잡고, 죄 값으로 가게 된 감옥에서 만난 책 한 권이 그의 삶의 목적을 바꿔놓았다. 더 이상 분노가 외로움이 그를 주무르지 않았다. 나눔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고, 그의 곁엔 수많은 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 땅을 떠나던 마지막 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의 삶을 추억하는 영화마저 탄생했다. 이른 한파로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 나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그 남자, 故 김우수씨의 삶을 조금이라도 배우기 위해 영화 <철가방 우수씨>의 윤학렬 감독을 만났다.
<철가방 우수씨>의 삶을 따라, 의식 있는 사람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는 독특하다. 감독부터 제작자,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까지 모두가 '기부'란 이름으로 참여했다. 주인공 고 김우수씨 역을 맡은 배우 최수종은 눈물로 읽어 내린 대본에 재능 기부를 결정했고, 김태원은 OST로,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상봉은 의상으로 참여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그저 훌륭한 삶을 살아가다 이 땅을 떠나신 고인을 기리고 싶은 마음에 그분이 살던 고시원을 다녀오게 됐고, 그 소식이 주변 지인들에 의해 퍼져나가면서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가 돌게 됐고, 친구가 제작자로, 또 그 친구의 인맥으로 여러 의식 있는 분들이 재능기부로 동참해주셨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이렇게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제작 중에도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기부는 이어졌다. 영화를 제작하다보면 시끄럽고, 밤샘 촬영도 계속되기에 촬영 장소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의 민원이 종종 발생하기 마련인데, 故 김우수씨의 삶을 다룬 영화란 말에 촬영 장소였던 은평구 갈현동 주민분들이 항상 응원해주시고, 근처에서 가게를 하시던 어떤 분은 매일 밤 우유를 돌리기도 하셨다고 한다.
또한 김우수씨의 어린 시절을 촬영했던 서울역 옆에 통로는 노숙하시는 분들의 주 무대여서 영화 촬영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내심 걱정했었는데, 촬영 끝날 때까지 단 한 번의 클레임도 없이 조용히 지켜봐주셨다고 한다. 모든 것이 영화의 주인공이 실제 살아낸 삶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분들의 마음의 기부였다.
난생 처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그의 인생 전부를 바꿔
외로움, 속임, 거짓말, 분노 등 부정적인 단어들로 꽉 채워져 있었고, 끝내 죽음 앞에 스스로를 내던지려 했던 그에게 우연히 다가온 책 한 권. 도대체 그 책에는 무슨 내용이 있었기에 그를 변하게 만든 걸까?
"분신자살 시도 후 방화미수로 징역 1년 4개월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됐죠. 그곳에서도 외톨이였어요. 아는 사람이 있어야 사식이라도 받고, 사식을 받아야 주변에서도 다가오는데 그는 세상의 시각에서 말 그대로 별 건질 게 없는, 친해질 이유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저 조용히 성경책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한 사형수가 두고 간 <사과나무- 어린이재단에서 발행하는 책자(편집자 주)> 라는 책을 보게 되죠. 결손가정에서 자란 한 남자 아이가 척추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꼽추인 여동생이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가방이라도 메면 놀림을 덜 당할 것 같다며 동생에게 가방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글이었죠. 그걸 보고 우수씨는 이 아이의 사연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죠. 부모 없이 살아봤고, 수없이 거짓말 해봤기에 무엇이 진짜인지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거죠."
"전 재산이 고작 30만원이었어요. 다 줄 순 없으니까 그 통장에서 11만원을 그 아이에게 보내달라고 교도관에게 몇날 며칠을 졸랐다고 해요. 수감자가 은행활동을 할 수 없으니 교도관은 계속 거절했고요. 결국 김우수씨의 열정에 교도관이 부탁을 들어줬고, 얼마 후 김우수씨에게 첫 편지가 도착해요. 그 내용이 '아저씨, 제 동생이 너무 좋아서 잘 때도 가방을 메고 자요. 이름도, 어디에 사시는 지도 모르지만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였대요. 그 세 번의 '감사합니다'를 보고 우수씨는 나눔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됐죠. 또한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도 감사하다는 아이가 있다는 것에 인생의 목적을 갖게 되고,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죠."
천식기 있던 우수씨, 죽고 나도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고 싶어 생명보험 가입하려 했으나...
영화를 준비하면서 윤감독은 故 김우수씨에 대해 박사가 된 것 같았다. 실제로 윤감독의 책상에는 故 김우수씨의 유품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장례 후 다다음날 그가 묶던 고시원을 찾았을 때 유품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물었더니, 무연고자라 유품을 태울 거라는 말에 윤감독이 부탁해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 중엔 김우수씨 이름으로 가입된 생명보험도 보였다.
"천식기가 있었어요. 폐가 안 좋으셨거든요. 근데 그분이 배달하는 그 논현동 지역에 보험사가 하나 있었어요. 그 보험사에 걸린 생명보험 광고를 보고,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아이들에게 계속 약속을 지키고 싶어 보험사를 찾아가죠. 하지만 거주지도 고시원이고 가족도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죠."
결국 어린이재단에서 보증을 서서 보험에 가입하지만 이미 고시원비용을 뺀 나머지 금액 대부분을 후원하고 있던 터라 보험금을 매번 납입하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우수씨의 나눔 정신이 해당 보험사 지점의 전직원이 기부에 동참하게 되는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초청을 받았을 때도 양복 한 벌 해 입는 돈으로 아이들에게 기부한다며 평소 입던 배달복을 입고 갔으며, 아이들에게 줄 선물금 마련을 위해 경제신문지를 보며 증권도 했단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열정으로,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한 그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렇다고 기부만 하신 건 아니에요. 취미생활로 일주일에 두 번씩 조조영화를 보셨어요. 주로 작품성 있는 예술 영화였어요.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진정한 자유를 누릴 줄 아셨던 분이셨던 것 같아요."
<철가방 우수씨>는 개봉과 함께 여러 학교에서 단체 상영을 했다. 윤감독은 김해시에서 학생들의 소감문으로 엮은 책자 하나를 보여줬다. 자신의 영화보다 아이들의 감상문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는 윤감독은 "영화를 본 청소년,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한탄하거나 불평했던 점을 돌이키고, 삶의 희망과 꿈을 발견했다고 해요. 실제 자살 꿈꿨던 취업 오수생이 영화를 보고 새 삶의 목적을 갖게 되었다는 소감도 들었어요.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철가방 우수씨>는 한 사람의 실제 삶이기에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것 같아요. 새롭게 태어난 이분의 제2의 인생이 우리에게 힐링이 되고 있는 거죠."
평생 거절당하던 그의 삶, 영화마저 상업주의에 밀려 조기종영 앞둬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영화를 보고자 상영관을 찾아봤다. 하지만 배급사에 CJ라는 이름이 적힌 것과는 달리 상영관이 턱없이 없었다. (실제 기자가 포털에서 영화를 검색했을 때 상영관은 서울에 단 두 곳만이 나왔다. 후에 CJ계열사인 CGV에서 몇 곳이 상영하는 것을 또 다른 포털 검색으로 알 수 있었지만, 영화 시간이 띄엄띄엄 있었고, 2~3일 상영할 계획이어서 주초에 주말 예매가 불가했다)
태어나서 부모에게 거절당하고, 살아가면서 힘 있는 자들에게 거절당하고, 새 희망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보험회사도 거절하고, 무연고자란 이유로 장례조차도 거절당했었던 고 김우수씨. 왠지 그의 영화마저도 상업주의에 밀려 거절당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그에게 나눔이 희망이었고, 어린이재단이 보증이 되어주었고, 그가 일했던 동보성의 이금단 사장이 백방으로 노력해서 장례를 치르고 1,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조문왔던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노력으로 태어난 이 영화가 지금 죽음과 절망을 노래하는 누군가에게 새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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