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가 마치 등대처럼 반짝였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07.26. 00:00

수정일 2012.07.26. 00:00

조회 4,583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서울엔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등 크고 멋들어진 산이 많다. 가끔 그런 산들을 걸어 오를 때마다 '밤에도 이런 숲길을 걸으면 얼마나 운치있고 좋을까'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나 요즘처럼 무더운 날엔 그런 밤 산행이 더욱 아쉽기도 하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다음에야 5시만 되도 부지런히 산을 내려 와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그런 밤 산행이 가능한 곳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남산이 그곳으로, '낮에도 좋지만 밤에 산행하는 기분은 어떨까?'로 시작된 내 작은 소망을 바로 해결해 주었다. 동네 뒷산처럼 가까이에 있는 남산이 저녁나절 오르기 좋다는 것을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가장 좋은 산은 집에서 가까운 산'이라고 했던 작가 김훈의 말은 남산에도 잘 들어 맞는다.

한양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지고 수도 방위를 위한 성곽이 지어지면서 뜬 산이 북악산, 낙산, 인왕산 그리고 남산이다. 해발 262미터의 전형적인 도심 속 낮은 산 이지만 시민들에게 계절의 즐거움에 더불어 걷는 즐거움까지 선사해주는 데는 이만한 곳이 없지 않나 싶다.

고즈넉하고 운치있게 걷는 야밤 산행

친구에게 남산 기행을 가자며 그럴듯한 말로 꼬여 내는 것 까진 성공했는데 저녁 7시에 만나자고 하니 놀란다. 그 또한 나처럼 남산의 야경과 저녁나절이 좋다는 걸 한동안 잊고 살았다며 청춘시절 남산 타워에 올라가 데이트 하던 추억을 꺼낸다.

남산에 오르는 초입길이나 방법은 참 다양하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바쁜 도시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케이블카나 버스, 손쉽게 택시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 밤 산행의 들머리로 택한 곳은 동국대학교, 장충단 공원이 있는 국립극장이다.

3호선 전철을 타고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장충단 공원을 지나 국립극장을 향해 워밍업 하듯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남산 순환로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는 게 보인다. 예상대로 저녁녘의 남산길은 고즈넉하고 고요해서 요즘 같이 햇살 눈부신 낮과는 또 다른 멋과 감흥을 느끼게 된다. 이 시간이면 벌써 산을 내려와야 했던 걸 떠올려보면 이색적인 기분이 들고 발걸음은 여유롭기만 하다. 동네 주민들, 데이트 하러온 연인들, 필자처럼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 등 남녀노소의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심심하지 않게 남산 순환로 길을 올랐다.

땅거미가 드리워 나무와 꽃의 화사함은 보이지 않지만 가로등에 은은하게 비쳐오는 산속의 느낌이 한껏 고즈넉하기만 하다. 길은 일반적인 산처럼 흙길이 아니지만 푹신푹신하게 깔린 보행로는 산행이 아닌 가벼운 산책의 기분이 들게 해서 좋다. 완만한 경사로를 천천히 걸어 오를수록 왼편에 점점 크게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에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이런 밤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남산의 길 위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그건 바로 남산의 성곽길로, 부드러운 빛깔의 조명을 받아 무척이나 운치있고 고풍스러워 보여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성곽들은 남산의 능선을 따라 나있어 가이드처럼 산 정상까지 친근하게 사람들과 함께 한다.

좀 쉬어 가라는 듯 순환로 한쪽에 나무 데크 쉼터 겸 전망대가 나있다. 차들과 빌딩들로 가득한 서울 풍경은 그저 삭막했었는데, 도시의 야경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문명과 닮았다. 밤이라 그런지 코로 들어오는 공기도 시원하고 상쾌하다. 낮엔 나무와 꽃들의 향연에 탄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이젠 남산의 야경에 감탄을 하며 너도 나도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남산에 둘레길도 있네

남산 순환로 중간에 전에 없었던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잠깐 나무 데크길을 걸어 보았다.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뻗어있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위의 저 소나무'들을 밤에 보니 묘하게 신령스러운 느낌이다. 정말 철갑을 두른 듯, 수백 년을 살아온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하고, 수많은 전투를 치른 노장군의 세월이 묻은 갑옷 같기도 해서다. 밤이라 그런지 공기 속에 은은하게 배인 소나무 향이 참 좋아 숨을 깊이 들이마시기도 한다. 새들도 잠들었는지 고요하기만한 오르막 길, 아름다운 가로등 불빛과 성곽 조명, 살짝 설레기까지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길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 새 남산타워가 커다란 등대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정상부근은 산책 나온 주민, 관광 온 외국인들, 자전거타고 올라온 라이더들 등으로 시끌벅적하다.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는 편의점에서 향긋한 커피에 빵을 곁들여 먹으며 다리 힘을 재충전한다. 남산 도서관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안중근 기념관이 있는 산 중턱에 걷기 전용 길인 '남산 둘레길'이 있다고 해서다. 몇 년 전 히트한 드라마에서 이름 지은 '삼순이 계단'에서 한 떼의 젊은이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내려가면 오른편에 남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이정표를 따라 와룡묘, 서울시 남산별관, 국립극장 방면으로 난 오붓하게 걷기 좋은 길이 바로 '남산 둘레길'이다. 아까 걸어왔던 '남산 순환로'와 달리 차량은 물론 자전거도 통행이 안 되는 오로지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둘레길답게 산중턱을 오르막길 하나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머리 위 가까이에서 불빛들이 반짝거리기에 얼굴을 들어 보니 작은 케이블카가 남산 타워를 향해 미끄러지듯 흘러가고 있다. 밤 산행은 반짝거리는 작은 케이블카마저 낭만적으로 보이게 한다. 과거 차들만 쌩쌩 달렸던 길이 이제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넉넉한 산책길이 되었다. 남산 둘레길은 하산길이기도 하다. 오르막도 내리막길도 없는 편안한 평지 둘레길을 따라 쭉 걸으면 들머리로 올랐던 국립극장, 장충단 공원이 나오고 전철역 3호선 동국대입구역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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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둘레길 #남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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