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밤 일찍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

정연학

발행일 2012.01.19. 00:00

수정일 2012.01.19. 00:00

조회 5,761

신도와 울루는 옛 문헌에 나오는 문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신도와 울루라는 문구를 많이 써서 붙였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경북 안동 퇴계 종택)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1월을 정월(正月)이라 하고, 정월 1일을 설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원단(元旦)이라고 하는데, 원(元)은 시작, 단(旦)은 이른 새벽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단(旦)은 상형문자로서 태양이 지표면 위로 올라가는 형상으로 원단(元旦)은 새해의 첫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원단(元旦)은 시대에 따라 날짜가 다르다. 중국 하(夏)왕조에서는 정월 1일을 원단(元旦)으로 보았으나, 상(商)나라는 12월 1일을, 주(周)나라는 11월 1일을, 진(秦)나라는 10월 1일을 새해 첫 날로 각각 정했다. 한(漢)나라 무제 때 다시 정월 1일을 원단(元旦)으로 삼았다.

한편, 우리나라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隋書)』와『당서(唐書)』에 신라에서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명절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설은 1896년(고종 32년) 양력을 선택하면서부터 ‘신정’과 ‘구정’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서민들은 신정을 개나 쇠는 설이라는 뜻으로 ‘개설’, 일본인이 세는 설이라고 하여 ‘왜설’이라고 낮추어 불렀고, 일제의 탄압에도 공공연하게 몰래 구정을 지냈다. 그러다가 1985년 ‘민속의 날’ 이라고 설을 달리 명명하여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1989년 음력 1월 1일부터 설의 본명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 신정도 3일간, 2일간 연휴로 지내다가 1999년 1월 1일부터는 신정은 1일, 구정은 3일로 휴일이 변경되어 구정(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이처럼 명절의 규모와 활성화는 국가의 공휴일 지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기산 풍속도의 연날리기부적과 함께 많은 복조리를 걸어놓은 모습(경기도 이천)
진숙보와 위지경(하회마을 북촌댁).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액을 쫓기 위해 장군 문신을 대문에 붙였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하회 북촌댁에는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문신이 보관되어 있다.수복 기원 리본과 복조리(충남 연기군 금남면)

설은 3일 연휴로 보통은 고향을 방문해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는데, 일부 사람들은 ‘황금 연휴’라고 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런데 한 가족이 며칠 동안 함께 지내다보니 부부나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여행 도중 사고를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설은 신일(愼日), ‘달도(怛忉)’라 해서 근심하고 조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오늘날의 설 세태와는 맞지 않다. 해마다 띠가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에도 띠에 해당하는 동물이 적용되는데, 예전 새해 첫 동물 날마다 어떤 이유를 들어 외출이나 노동, 위험한 연장 등을 만지는 것을 못하게 한 것도 근신하라는 의미이다. 가령 첫 쥐날에 일을 하면 쥐가 곡식을 축내고, 칼질이나 바느질을 하면 쥐가 곡식을 갉아먹고, 길쌈이나 옷을 지으면 쥐가 옷감을 쏠아 못 쓰게 된다는 식으로 노동을 금지시켰다. 마찬가지로 첫 소날에 도마질을 하면 소에게 좋지 않고, 곡식을 밖으로 퍼내면 소에게 재앙이 온다고 금하였다. 이런 식의 행위 제한은 보름 전까지 진행되어 새해 일정기간 근신하도록 하였다. 실제 새해부터 갈등이나 사고를 당하면 그 해 내내 불행한 것이 사실이다.

설과 관련하여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도 있다. 우리는 설을 ‘설날’이라고 흔히 부르는데, 설에는 ‘정월 초하루’라는 날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설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전 앞’, ‘흰 백마’처럼 잘못 부르는 꼴이다. 그러나 설날이라는 단어도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른에게 세배를 할 때 두 손을 벌리는 행위도 잘못 된 것이다. 두 손을 벌리는 경우는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로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할 때 하는 행위로 세배 때는 손을 포개 쥐어야만 한다. 남자의 경우는 왼손, 여자의 경우는 오른손을 위로 포개는데, 이는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이라는 남좌여우(男左女右) 관념에서 왔다. 세배를 할 때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따위로 인사하는 것도 잘못이다. 본래는 세배를 한 후 어른들의 덕담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이젠 어른에게 명령을 하는 인사가 일반화되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차례상을 차리는 시점도 전남 해안가 지역에서는 섣달 그믐(음력 12월 31일) 저녁에, 육지에서는 설(음력 1월 1일) 아침에 차린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전남 해안가 지역의 차례상을 ‘섣달 그믐 차례’라고 달리 부르나, 차례상만 차린 것이지 제사는 설 새벽에 지내기에 그 명칭도 올바르지 않다. 이처럼 차례상 진설의 시점이 다른 것은 설 차례 시간의 오해에서 온 결과이다. 즉 차례는 섣달 그믐이 지나 설을 맞이하는 시점에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차례를 지내는 것인데, 전남 해안가 지역에서는 차례상을 미리 진설한 것이고, 육지는 늦게 진설한 셈이 된다.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라는 수세(守歲) 풍속도 어린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해서 새해를 맞이하게 하려는 속셈이다. 오늘날 제야의 종소리 행사에 참가하든지 새해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동해안을 찾는 것도 설을 남보다 일찍 맞이하기 위함이다.

색동저고리와 털배자아이들을 거느리고(매일신보 1918.2.13)
널뛰기(매일신보 1918.2.13)조선일보 1925. 1. 25

설 풍속 가운데 ‘세함(歲銜)’과 ‘청참(廳讖)’ 풍속이 있다. 설은 선생님이나 어른을 찾아 그간의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찾는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새해 인사를 다녀 집이 비는 경우가 있어 ‘세함’이라는 풍속이 생기도 하였다. 즉,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게 대문 앞에 쟁반을 놓는데, 그것을 세함이라고 한다. 설 새벽 거리에 일정한 방향 없이 다니다가 처음 듣는 소리로 일 년 간의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 이것을 ‘청참’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조,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조로 여겼고, 소가 우는소리를 들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쥐 소리를 들으먄 흉년이 든다고 보았다.

설에는 복조리, 체 등을 걸어 만복과 제액을 기원한다. 조리는 쌀을 일러내는 도구로, 쌀이 점점 조리 안에 가득 차는 모습은 마치 재물이 늘어나는 것과 동일하게 보아 ‘복조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리 안의 쌀이 모아지면 덜어내기 때문에 복이 사라지게 된다. 달처럼 차고 기우는 것이 반복되는 셈이다.

설에는 ‘야광귀’라는 귀신이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발을 신고 사라지는데, 그 신발의 주인은 재앙을 맞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의 신발을 감추고 대청 벽에는 체를 걸어둔다. 야광귀는 그 체를 보면 체의 구멍을 헤아리는데 그 눈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 수를 헤아리는 동안에 잊어버리고 또다시 처음부터 헤아리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날이 새고 닭이 울면 야광귀는 도망을 간다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적혀있다. 민간에서 체를 거는 것은 체의 무수한 구멍, 즉 많은 눈을 가진 존재가 악귀의 침입을 막아준다고 여긴 것이다. 조리를 방문 위에 걸어두는 것도 조리도 수많은 틈을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설에 설빔을 입고 떡국을 먹는 풍속은 여전이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설에는 윷놀이·승경도놀이·돈치기·연날리기 등 집을 중심으로 소수의 인원이 즐겨 마을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정월 대보름놀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설 때 가장 중요한 일이 '차례'이다. 표현대로라면 차를 가지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하나 실제로는 차대신 물을 올린다. 차례상의 제물은 살림살이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설은 차례를 통해 조상과 부모, 형제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고리이다. 그러기에 차가 도로에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가득하여도 즐겁게 고향을 찾는다.

글/정연학(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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