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이불 더 없어? 아저씨, 쌀 받아가세요!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Visit4,454 Date2011.12.16 00:00


 










온도계 수은주가 며칠째 영하에서 올라올 줄 모른다. 몸도 움츠러들고 마음도 시려워 생각나는 것은 그저 따뜻한 보일러와 이불 속뿐인 지금, 하물며 안 그래도 어려운 이웃들은 이 겨울을 도대체 어떻게 날까? 지난 기획기사에서 한 푼이라도 양말 한 짝이라도 나누고 싶은 시민들을 위해 ‘희망온돌’을 통한 기부 방법을 안내한 데 이어 오늘은 시민들이 기부한 물품을 모아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희망마차’를 소개한다. 지난 14일 희망마차는 우리의 마음을 싣고, 이불과 쌀과 각종 생필품을 싣고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으로 달려갔다. 나눠주는 이들과 받는 이들 그리고 의료봉사 활동을 나온 서울간호봉사단의 회원들까지 훈훈한 현장으로 안내한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나? 비밀스런 배포 작전의 이유


일사불란한 선물 증정식을 상상한 것은 오산이었다. 오후 3시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 한 가운데인 동자동 사랑방 앞에 정차하려던 희망마차는 쪽방촌 골목을 가운데 놓고 크게 몇 바퀴 돌다가 결국 멀찍이 떨어진 도로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내렸다. 무슨 비밀 작전 수행 같았다. 동자동 사랑방 자원활동가들이 총출동해 희망마차의 물품을 받을 주민들을 여기저기서 데리고 왔다. 기력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자원활동가들이 아예 쌀포대를 둘러매고 부리나케 쪽방 계단을 오르고 뛰며 직접 배달을 했다. 그 시각 동자동 사랑방 내부에서는 또 다른 기부품인 이불 300채가 6채 혹은 10채씩 나누어 들어왔다가 주인을 찾아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11월 30일 ‘희망온돌 프로젝트’ 발대식을 가진 이래 개인과 단체 그리고 기업 단위의 기부가 줄을 이으면서 그 물품을 직접 배달하는 희망마차도 슬슬 시동을 걸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희망온돌’이 애초에 기존 복지시스템의 공적인 수혜를 받지 못하는 소위 ‘차상위계층’에게 민간 차원에서 시민들이나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연계해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출발한 만큼, 이날 동자동 쪽방촌의 희망마차 물품도 보다 신중하게 배분되는 게 중요했다. 갈월종합사회복지관과 용산구청이 우선 물품이 필요한 주민이 누군지 수요조사 역할을 맡았고, 쪽방촌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동자동 사랑방’이 중심이 되어 물품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전달되도록 진행하는 역할을 맡은 것.



쪽방촌에서 마을공동체로, 서민의 마음은 서민이 안다


쌀 20포대, 이불 300채 그리고 라면, 참치, 통조림, 고추장, 음료수 등 생필품 꾸러미를 합쳐보니 도합 200가구 분량. 그런데 쪽방촌 주민들은 1000명이 훌쩍 넘어가니 자칫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다. 마을공동체로 너나없이 가깝게 지내고 있는 주민들끼리 괜시리 서운한 감정이 생기면 안 되는 일. 모두 다 어려운 이웃이지만 그래도 좀 더 어려운 가구에게 시민들이 기부한 물품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은 그렇게 공들여서, 조심스럽게, 오후 내내 진행됐다.


사실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 시내의 쪽방촌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곳이다. 서울역 맞은편, 빌딩으로 둘러싸인 블록의 작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측으로 쪽방촌과 ‘밥이보약밥집’ 같은 마을기업과 중국집, 구멍가게 등 자영업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10분만 있어 보면 정겨운 분위기와 활기찬 에너지에 놀라게 된다. 그 중심에 바로 동자동 사랑방이 있다. 사랑방은 쪽방지역 문화공동체를 지향하며 2008년 주거, 일자리, 알콜중독, 도박 등 쪽방촌 주민들의 당면 문제를 상담해주고 기초생활수급권 등록을 도와주는 일로 시작한 이래 올해는 급기야 ‘사랑방 마을 공제협동조합’을 성사시켰다. 은행 대출은 불가능하고 사채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쉬운 쪽방촌 주민들도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 몇 십만원이라도 필요할 때 자신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연 2%의 이자로 이웃에게 대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그대로 사랑방인 이 공간을 오가며 무보수 자원활동가 10명과 주민들은 서로를 형·누나라 부르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공동체의식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었다.



기부는 주는 사람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 필요가 우선


동자동 사랑방의 엄병천 대표는 “연말이면 기업에서 훨씬 엄청난 물량의 기부물품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1,000개의 물품을 한 번에 와서 놓고 가면 간단하죠. 하지만 가끔 주는 사람의 입장과 기분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에게 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거죠. 남들이 다 받는데 나도 하나 챙겨야지, 하는 마음도 심어줍니다. 어떤 할머니 방에는 작년 것까지 이불만 여러 채가 쌓여 있어요. 이렇게 한 번에 쫙 주는 것은 부작용이 있죠. 사회적 낭비도 막고, 필요한 사람이 신청하고 물품을 받아갈 수 있는 어떤 체계가 생겨나야 할 때입니다.”


엄대표는 그런 점에서 ‘희망온돌 프로젝트’에 희망을 건다고 했다. “진짜 숨은 빈곤층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건 대량 물량 공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반지하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옆집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보고 동주민센터나 복지관에 가서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알리고, 쌀포대 같은 무거운 물품이 들어오면 몸 사리지 않고 직접 할머니에게 배달해드리는 그런 사람이죠. 열정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랑방에서 활동하는 자원활동가 한 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각박해져 간다지만 제도권 복지제도의 확대와 병행하여 이러한 나눔의 정신과 실천이 공공자원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메울 때야말로 비로소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희망온돌’이 그런 나눔의 씨앗을 퍼뜨리고 연결하는 매개체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올 겨울 희망마차가 더 바빠져야 할 것이다.



서울간호봉사단의 의료봉사, 재능기부는 희망온돌의 또 다른 축


밖에서 물품 전달이 바쁘게 진행되는 동안, 서울간호봉사단의 회원 6명은 조용히 쪽방촌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주민들의 겨울철 질병 예방을 위해 건강 체크를 해드리려고 온 것. 이들은 오후 6시까지 3시간 가량 쪽방촌 인구 중 독거 노인 200명을 중점적으로 맡기로 결정하고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계세요, 어르신?” “진료 도와드리러 왔는데…서울시 간호사협회에서 나왔어요.” 분홍색 가운을 입은 임신자, 조송자 간호사가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웃옷을 올리고 등을 내미는 분도 있다. “대상포진 앓으셨으니까 가려우시면 테이프 뜯으시면 되구요….아이고, 많이 아프셨겠네요.” 할아버지는 통증을 참고 참다가 혼자서도 뜸을 뜨셨다. 등짝은 여기저기 흉터자국으로 험하다.


건너편 방에는 강씨 할아버지(64)가 사신다. 두 사람이 들어가니 안 그래도 비좁은 방이 꽉 들어차는데 방벽에 걸린 새하얀 국가유공자 표창장이 유난히 빛난다. 간호사들은 뭔가 이상한지 몇 번씩 혈압을 잰다. “어르신, 심장이 뛰다 안 뛰다 그래요. 다음에 병원 가시면 부정맥이 잡혔다고 꼭 말씀하세요. 음식은 싱겁게 드시고 고기 같이 기름진 음식은 절대 삼가세요. 어쩌다 먹어도 심장에 부담을 줘서 제일 위험해요.” 몇 번씩 당부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드리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할아버지는 베트남 참전자로 고엽제 피해자다. 올해 10월 유공자 표창을 받았기에 20일만 있으면 연금을 받게 된다. 내년에는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시려나.


희미하게 겨울빛이 들어오는 쪽방촌 복도의 방문은 거의 잠겨 있다. “좀 더 많은 분들에게 해드렸으면 좋은데…” 조송자 간호사는 많이 아쉬운 듯했다. 그의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혈압계, 혈당계, 체온계, 청진기, 통증을 완화시키는 비비테이프, 소화제 외에 사탕도 보인다. 혈당이 떨어진 분들을 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품목이다. 강씨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면서도 지병이 있어도 그나마 활동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은 낫다고 한다. 조 간호사는 “우리 같은 방문간호사의 손길이 가장 시급한 분들은 저소득층 와상환자들이죠. 항상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요.” 4만명 회원을 보유한 서울간호봉사단은 주로 저소득층 당뇨환자들을 방문해 간호봉사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희망온돌’의 든든한 협력 파트너로서 지속적인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문의: 희망온돌 프로젝트 추진본부 ☎ 02) 3707-9656, http://ondol.welfare.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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