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필수품의 불편한 진실, 우리가 해결!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09.09. 00:00

수정일 2011.09.09. 00:00

조회 3,069

목화송이 대표들(좌로부터 채옥림, 한경아, 김혜숙)

“처음 시작할 당시인 5년 전엔 사람들에게 생소해서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처음보다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행스러운 건 젊은 층의 관심이 높다는 것이죠.”(채옥림, 52)

“면 생리대에 대해 몰랐다가 접해보고 정말 필요한 것이로구나 하면서 사용해 본 분들이 몸의 변화를 말씀해 주실 때 이 일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김혜숙, 57)

“평상시 면 생리대를 써 보니 너무 좋아서 많이 만들어서 주변에 나눠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 5년이 넘었네요.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자제할 수 있다는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실천이 지금의 목화송이의 시작입니다”(한경아, 50)

면 생리대와 친환경장바구니를 만드는 마을기업 목화송이를 찾아갔을 때 세 명의 목화송이 대표들의 첫 마디였다. 9월 3일부터 생활협동조합을 표방하는 한살림의 전국 146개 매장에 대안생리대인 ‘면 생리대’가 제품화되어 판매에 돌입했다. 그동안 공동경영, 공동투자, 공동책임, 공동노동을 통해 면 생리대를 당당히 제품화 한 세 명의 공동대표들은 자신들의 보급 노력이 ‘이제야 좀 빛을 보는구나’란 생각에 감회가 남다르다. 여성들의 필수품인 생리대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심심하면 한 번씩 공중파를 타고 있는 현실에서 면 생리대의 제품화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면 생리대 만드는 마을기업 목화송이가 있기까지

2005년 10월, 도봉구 지역에서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던 한경아 대표는 면 생리대의 많은 장점을 들어 한살림 매장에서 판매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써 본 사람이 많지 않아 제품화 할 단계가 아니란 결론이 났다. 그는 여성 건강에도 좋고 장기적으로는 환경보호에도 일조하는 대안 생리대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각자 자신의 집에 가정용 재봉틀이 있던 동료와 함께 면 생리대를 만들어 그가 활동하고 있는 한살림 쌍문 매장에 샘플을 전시하고, 소모임방에서 면 생리대 만드는 방법을 여성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이 혼자서 소모임방을 지키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기를 1년. 당시 한살림에서는 조합 활동의 일환으로 회원들이 공동 출자해 같이 노동하고 같이 경영하고 이익도 똑같이 나누는 새로운 일자리 형태인 워커즈 컬렉티브(worker's collective)라는 활동이 시작되고 있을 당시였다. 한 달에 한 차례씩 1년 동안 워커즈 컬렉티브 활동을 시작하려는 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워커즈의 최소 인원인 3명을 모집하기 위해 소식지 등을 통해 주변에 알렸지만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1년 동안 워커 모집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포기할 순 없었다. 가정용 재봉틀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더 배우기 위해 당시 재봉교육을 실시하고 있던 강북구 미아8동 주민센터 지하1층 풀빛살림터를 찾아갔다. 그러던 중 면 생리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재봉 선생님과 생각이 같은 또 한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4명으로 워커즈 콜렉티브가 성원이 됐고, ‘목화송이’라는 상호를 만들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동네작업장이었던 풀빛살림터를 한 달 간 실비(3만원)를 내고 빌려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무엇을 만들어 볼까 고심했다. 보자기 형태의 장바구니도 여러 가지 만들어 보고, 수저집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면 생리대가 주력 상품이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많이 만들어내진 못했다.

목화송이 작업장

때마침 한살림으로부터 폐 현수막으로 장바구니 200장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왔고 4명의 대표는 각각 10만 원씩 출자금을 내서 공동작업장을 빌려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표들 간에 이견이 생겼다. ‘돈도 못 버는데 건강까지 해치면서 이렇게 지저분한 것을 우리가 만들 필요가 있는가’와 ‘환경보호활동에 대한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힘들고 더럽다고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하는 의견으로 갈렸다. 결국 두 명의 워커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났고 두 명만이 남았지만 일은 더욱 늘었다. 폐현수막을 이용해 만드는 장바구니뿐 아니라 생활협동조합원들에게 회원 가입 시 지급되는 에코장바구니 제작 의뢰도 이어졌다. 한 달에 몇 천 장씩 만들어내야 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하청공장에 맡기기도 했다. 일감이 늘어나자 원단이 쌓이고 풀빛살림터를 사용하는 빈도수가 늘자 공간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의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한 달이면 에코장바구니 천 장씩, 폐현수막 장바구니 500개씩 만들어야 하는 주문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본금 몇 백 만 원씩을 투자해야 하는 새로운 워커들을 모집해야 했다.

2009년 각각 4백만 원을 내고 워커 2명이 모집이 됐고, 기존 2명과 합세해서 자본금 1천 6백만 원으로 강북구 삼양동 주택가에 14평 규모의 작업장을 얻었다. 자본금이 투입되고 일이 늘면서 배분되는 수익금도 차츰 늘었다.

목화송이 제품들

그러는 와중에도 면 생리대 보급을 위한 워커들의 노력은 이어졌다.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면 생리대의 장점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뚝섬벼룩시장에도 5년 넘게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면서 면 생리대 만들기 시연을 펼쳤고, 지역의 학교와 복지관 등을 찾아다니며 면 생리대를 알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친환경적인 면 생리대 제품화에 한살림 본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제품화를 제안했다. 만들어도 어디다가 팔아야할지 고민이던 목화송이 면 생리대의 판매 루트가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난관이 찾아왔다. 생리대이기 때문에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야했고 그 절차는 1년 넘게 소요될 뿐만 아니라 작업 공간을 세분화해야 했고, 허가 비용도 약 1천여만 원이 더 들어가야 했다. 식약청 허가 비용 마련을 위해 추가 비용을 각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 끝에 ‘그래도 면 생리대는 제품화해야 한다’ 에 의견이 모아졌다.

때마침 지식경제부에서 추진했던 지역 내에서 지역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공모 사업인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에 그간 했던 사업으로 공모했고 전국에서 10팀이 선정되는 가운데 들게 됐다. 받게 된 지원금으로 식약청 허가 비용을 충당했지만 지원 1년 만에 사업이 중단돼서 계속적인 지원은 어려워졌다. 만들어지는 제품의 특성상 큰 수익을 남기는 제품들이 아니어서 외부의 지원이 필요했다.

목화송이 대표들은 구청을 찾아가 폐현수막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지역에 배포해 비닐봉지 사용을 줄여보겠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담당 공무원은 ‘마을기업’에 공모할 것을 권유했고 공모에 당선되면서 약 3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목화송이는 면생리대 물품화의 원재료비로 1천만 원, 도봉구를 비롯해 인근지역에 면 생리대 무료교육을 나가기 위한 재료비와 강사비로 1천만 원, 폐현수막 장바구니를 만들어 지역의 슈퍼에 보급해 비닐 사용을 줄이는 환경운동을 시도해 보겠다는 비용으로 1천만 원을 각각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준비된 마을기업 5년의 쌓인 노하우, 지역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

2010년 10월 작업장을 얻은 지 1년 만에 강북구 삼양동 작업장에서 도봉구 방학동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사정이 생겨 그만 둔 한 명을 제외하고 세 명의 대표만으로 운영되던 목화송이는 일감이 늘어나면서 작업 공간을 늘리고 여섯 명의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도봉자활센터에서 장애인 두 명을 고용했고, 실밥을 따고 포장 일을 하는 노인 두 명도 고용해 노인 일자리 창출을 해냈다. 재봉 일을 하는 사람과 면 생리대를 박아 놓으면 집으로 가져가 뒤집어 오는 사람 등 재택근무자 두 명도 채용했다. 장바구니 2가지 정도와 앞치마, 네 가지 형태의 면 생리대가 약 2천 장씩 출고 준비 중이라 재단과 생리대 일부를 박아오는 일을 지역의 공장에 하청을 주기도 했다. 일감이 없었던 공장에선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공간이 좁아 인원을 더 뽑진 못하지만 늘어나는 물량에 따라 재택근무자들도 꾸준하게 물색 중입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이나 마을 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목화송이가 향후 지역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동안은 면 생리대와 친환경 장바구니 등을 보급해 환경운동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는 일들이 우리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식의 전환이 생기면서 우리가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취약계층을 고용해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작은 일자리, 즐거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일을 해 낸다는 보람과 그런 것들이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한경아 대표의 말 속에는 지역공동체에 산재한 각종 특화자원(향토·문화·자연자원·인력 등)을 활용해 주민 주도의 비즈니스를 통해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단위의 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이 사업의 취지와 나가야 할 방향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마을기업은 그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다. 수년간의 준비와 시행착오,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 어렵게 무르익어 탄생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마을단위의 작은 기업들이 잘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인 지원은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해 내고 있었다.

#마을기업 #목화송이 #면생리대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