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한강에 가본 적 있으세요?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발행일 2011.08.31. 00:00

수정일 2011.08.31. 00:00

조회 3,753

노을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난지캠핑장과 한강

 

지루한 비 소식이 잠잠해지자마자 수은주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그보다 더 매서운 초가을 땡볕이 몰려와 극성이다. 진작부터 한강을 취재하려 했다가 우천으로 몇 번씩 일정을 취소했던 서울하모니 서포터즈단 제3기가 드디어 한강공원에서 집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태양이 정수리 위를 따갑게 내려쬐는 금요일 오후 1시에 말이다. 그래서 뒤따라 길을 나섰다(서울하모니 서포터즈에 대해서는 제2기 취재기사 http://inews.seoul.go.kr/hsn/program/article/articleDetail.jsp?menuID=001001005&boardID=176823&category1=NC1&category2=NC1_5를 참고하면 되겠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듯 평일 오후의 한강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무슨 특별휴가나 예기치 못한 선물이 손 안에 떨어진 기분마저 들었다. 그곳은 주말과는 완연히 다른 신세계였다. 혹시 올 가을 주중에 반나절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긴다면 한강공원의 한 거점을 정한 뒤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유쾌했다.

① 난지한강공원에서 마주친 실버 자전거 라이더

오래 전에 잠깐 타 본 것이 전부지만 애초에는 난지한강공원의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둘러볼 생각이었다. 자전거대여소는 난지강변물놀이장과도 바로 인접해 있어 튜브를 든 아이와 엄마들의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덩어리처럼 타오르는 자전거 핸들을 만지자마자 이내 포기해버렸다. 마침 서울하모니 서포터즈가 노을공원으로 오르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래서 자전거대여소 관리인에게 물어 노을공원으로 가는 지름길코스를 알아냈다. '야구장-캠핑장-개구멍-나무계단'을 지나는 30분 이내의 코스였다.

5분 정도 걸었을까? 키 낮은 나무 그늘 아래 유유자적하게 쉬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흘끗 봐도 헬멧에 유니폼을 갖춰 입은 바이크 족들이었다. "신정교 밑에서 오전 10시에 모여서 그날 목적지를 선정해서 나옵니다." 영등포자전거연합회의 박길재 회장은 한강의 자전거도로가 참 잘 되어 있다며 덧붙였다. "특히 반포한강공원 지나서 동쪽으로 놓인 자전거길은 새로 만들어져 노면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초로의 멤버들 주위로 산악전문 MTB 자전거들이 지쳤다는 듯이 눕혀져 있었다. 말씨도 고운 정경엽 회원은 햇살이 따가운데 어떻게 나오셨냐고 묻자 "주말은 애들하고 직장인들에게 양보해야지"라고 답했다. 그마저도 여유가 느껴졌다.

난지한강공원에서 잠시 휴식 중인 영등포자전거연합회 회원들

노을공원 가는 길에 만난 신동진 씨(중간 사진)

② 노을공원 근처에서 마주친 서울 여행자

멋진 실버 라이더들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가자 왼편으로 야구장이 보였다. 10명 남짓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연습 중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가자 주말 예약은 몇 개월 전에 해야 한다는 그 유명한 난지캠핑장이 나왔다. 자동차 뒷트렁크에서 짐을 빼 리어카에 싣고 있는 몇몇 가족이 보였다. 캠핑장을 지나자 아까 자전거공원 관리인이 '세 개의 개구멍'이라고 표현한 그곳이 나왔다. 동물들이 지나가는 생태통로와 자전거족들이나 뚜벅이들이 지나가는 사람 통로와 자동차 통로가 나란히 놓인 난지나들목이었다.

나들목을 빠져나가니 노을공원으로 향하는 500여개의 계단이 나왔다. 어찌 올라가나 하고 숨을 돌릴 즈음, 한 청년이 길을 물어왔다. "저, 메타세콰이어길이 어딘지 아세요?" 안양에서 온 대학생 신동진 씨였다. 마치 지리산이나 설악산 중턱에서 만난 산행 중의 길벗처럼 마냥 반가웠다. 그는 오늘 선유도부터 시작해 난지한강공원 일대를 돌기로 하고 하늘공원에 먼저 들렀다가 노을공원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여행을 되게 좋아해서 서울에 가보고 싶은 곳 열 군데를 정했는데 그 중에서 노을공원이 아홉 번째 장소였거든요. 서울숲이랑 (북서울)꿈의숲도 갔다 왔는데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가족끼리 같이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바로 이 노을공원이었어요." 그는 메타세콰이어길을 찾아 총총 사라졌다.

닉네임 동글이로 활동하는 블로거, 유람선에서 세빛둥둥섬 촬영 중, 대만에서 온 앤디와 애니

③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그리고 한강유람선의 대만 관광객 커플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서울의 여름을 보내고 난 뒤라서였는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며느리'가 들어간 속담이 생각나는 가을 볕은 정말 매서웠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한강의 풍경이 아니었다면 홀로 오르는 노을공원 계단길은 어쩌면 오랜만에 내면을 돌아보는 한 직장인의 고행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한강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지런히 사진 셔터를 눌러대는 사이에 드디어 고지에 도착했고, 마침 노을공원 취재를 마치고 목을 축이고 있던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일행과 합류했다.

잠시 후 자동차가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는 노을공원에 조금 낯선 차가 한 대 도착했다. 맹꽁이 전기차였다. 노을공원 캠핑장에서 시원한 1박 2일을 보내려는 가족들이 도착하자마자 능수능란하게 짐을 내리고 옮겼다. 반쯤 부러운 눈으로 캠핑족들을 바라보던 우리는 그 전기차에 뒤이어 몸을 실었다. "내려가는 속도는 빠르네!" 누군가 말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노을공원의 시골 같은 자연 풍경이 일상에 찌든 도시민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씻어줬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공원 풀들과 강바람 냄새가 콧속에 밀려들어왔다.

드디어 한강유람선 여의도 선착장.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3기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한강유람선과 세빛둥둥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동글이(http://blog.naver.com/ejshim326)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서포터즈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친구들이 서울에서 어디를 가면 좋겠냐고 물으면 달빛무지개분수와 세빛둥둥섬을 추천해줬거든요. 다행히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덕분에 멋진 곳을 봤다며 만족해 했어요. 인사동이나 삼청동은 누구나 아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은 오히려 일본 친구들이 저보다 더 잘 알구요. 그런데 정작 저 자신은 달빛무지개분수와 세빛둥둥섬을 가보지 못한 거예요."

유람선에 오르니 평일 오후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배가 서서히 항해를 시작하자 관광엽서보다 더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서울N타워 뒤로 내사산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게 마치 병풍을 펼친 것 같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10년 전 중학생 때 무작정 친구와 올랐던 한강유람선에 이제는 대학생이 돼 블로거로 취재를 하기 위해 다시 오른 서포터즈 역시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한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민들의 휴식처예요. 개인적으로는 여의도한강공원에 자주 들리죠. 친구들은 반포한강공원이 좋다고 하지만요." 유람선에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그 중 대만에서 서울로 관광패키지 여행을 온 애니(본명 Chiung An Chi)와 앤디(본명 Cheng Hsi Yu) 부부를 만났다. 4박 5일 코스 중 오늘이 마지막날인 나흘째. 그들은 유람선을 통해 본 한강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beautiful!"을 외쳤다. 서울의 마지막 밤을 그들은 어디서 보낼까 궁금해졌다.

세빛둥둥섬에서 일몰을 촬영 중인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④ 세빛둥둥섬에서 노을과 일몰을 잡은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유람선에서 내린 우리는 세빛둥둥섬으로 이동했다. 제1섬의 나무데크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젊은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벤치는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연인들의 차지였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처음으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서울하모니 서포터즈는 3기를 끝으로 해단식을 가졌다. 서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블로거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서울을 체험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나가자는 취지로 시작했던 것이 서울하모니 서포터즈였다. "아쉽네요. 한 10기까지 갈 줄 알았는데요." 여행 전문 블로거이자 닉네임 푸른하늘(http://blog.daum.net/bluepoto3)로 활동하는 서포터즈는 아쉬운 듯 연신 셔터를 눌렀다. 7시경이 되자 다른 서울하모니 서포터즈들도 일제히 건물 밖으로 나가 카메라를 들었다. 한동안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물에 비친 태양이 노을 속으로 아주 느리게, 느리게 지고 있었으므로. 이 순간은 서포터즈들의 블로그 속에 담겨 멀리 멀리 퍼져 나갈 것이다. 오늘 반나절의 한강에서 그들은 무얼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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