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강사가 베란다 텃밭을?
발행일 2012.06.14. 00:00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2012년 급부상한 트렌드는 '도시 농업'이다. 정부도 이 트렌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단다. 도대체 도시농업이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5년째 베란다 텃밭을 가꾸다 못해 최근 책까지 출간한 토박이 도시인, 대치동 생물 강사 장진주 씨를 만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주말농장을 가지고 계셨다. 자연스럽게 식탁에는 늘 채소반찬이 가득했다. 어느 날인가 먹고 있던 샐러드의 방울토마토 씨를 시험 삼아 심어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싹이 나더니 이내 쑥쑥 키가 컸다. 자라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했단다.
"그 이후로 베란다 화분에 작물을 심어 키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서너 가지 정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50종류, 100종류로 늘어났어요" 늘어난 작물로 베란다는 곧 작은 텃밭으로 변했다.
"베란다는 실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식물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춥지는 않아요. 겨울에도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채소가 필요하면 바로 따서 쓸 수 있으니 접근성이 진짜 좋죠."
베란다 텃밭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흙, 화분, 씨앗만 있으면 된다. 베란다에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채소를 골라서 키우면 된다. 예를 들어 샐러리는 빛이 잘 들지 않아도 잘 자라고, 상추나 허브의 경우에 씨를 심는 대신 모종으로 키우기 시작하면 햇빛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은 그렇지만 사실 채소를 잘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벌레나 병충해같은 돌발요소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생물 강사라는 직업이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가령 그녀는 식물이 자라는 데 왜 일조량이 중요한지, 씨앗을 파종할 때 왜 지나친 양분 사용이 독이 되는지, 왜 겨울에 자라는 잎채소의 색깔은 자주색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물주고 햇빛만? 채소마다 달라요~
"식물의 골격을 만드는 것은 탄소에요. 빛은 식물이 탄소를 저장하는 데 꼭 필요하죠. 그리고 씨앗을 심을 때 양분이 너무 많으면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요. 겨울에는 초록색을 구성하는 엽록소가 다 파괴되기 때문에 자색을 띠는 작물이 나오죠."
그러나 아는 것이 많은 그녀에게도 시행착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부분은 양분이에요. 적어도 탈, 많아도 탈이었죠. 양분이 너무 많아 작물이 검게 타기도 했어요. 채소도 종류에 따라 필요로 하는 양분의 양이 달라요. 열매채소는 열매를 맺기 위해 중간 중간에 양분을 계속 보충해줘야 하는 반면 잎채소는 햇빛만으로도 양분을 보충할 수 있죠. 잎채소는 양분이 너무 많으면 비축해 둘 곳이 없어 꽃대를 올려버리는데 이게 꼭 좋다고 볼 수 없어요. 꽃을 피우기 위해 잎채소의 잎 크기가 줄어들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진짜 초보에게 그녀가 추천한 작물이 있다. 바로 방울토마토와 상추. "방울토마토는 다른 작물에 비해 쑥쑥 자라고 수확의 재미가 쏠쏠해요. 다른 열매채소는 열매를 맺는 데 양분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보통 4~6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처음 하시는 분들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상추는 잎채소라 별다른 비료가 필요 없죠. 아, 돌나물도 추천해요. 워낙 번식력이 강해서 마트에서 사다먹고 남은 것을 심었는데 금방 퍼져 나가더라구요."
다 똑같은 채소니까 물이랑 빛, 양분만 있으면 알아서 잘 자라겠거니 하는 게으른 생각은 하지 말자. 다 따지기 어렵다면 하나만 기억하자. 열매채소는 양분이 많이 필요하고 당근 같은 뿌리채소는 햇빛이 많이 필요하다.
채소는 칼로리가 낮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다. 직접 기른 채소는 맛도 더 좋다. 갓 딴 채소에서는 단 맛이 난단다. 키우는 재미는 도시농업의 또 다른 매력이다. "갓 생겨난 방울토마토는 진주알만한 크기에 연둣빛을 띠고 있어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파랗던 파프리카는 하루 사이에 물감이 퍼지듯 노랑, 빨강색으로 물들어요. 정말 신기하죠."
아침 방송부터 잡지까지, 강사야? 도시농부야?
그녀는 직접 기른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도시락도 싸가고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다. 베란다 텃밭으로 파워블로거가 되고나니 방문객들과도 절친한 이웃이 되고 잡지와 방송에서도 연일 러브콜이다.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처음에는 집을 어질러 놓는다고 부정적이었던 가족들도 이제는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녀가 바빠서 채소를 돌보지 못하면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물을 주고 돌본다. 어디선가 신기한 채소나 과일을 보면 씨앗을 받아다 주기도 한다.
요즘 베란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녀는 일반적인 도시 농부와 조금 다르다. 채소재배를 마치 연구하듯 한다고 할까. 씨앗을 심고부터 자라고 열매 맺고 병에 걸리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공부하고 기록해가며 키운다. 많이 보다는 깊이인 셈이다. 몇 년에 걸친 이런 과정들이 최근 책으로 출판되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올해의 주요작물로 선정한 콩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자연 딸기, 난쟁이 블루베리 등의 베리류를 키울 예정이란다. 그녀에게 베란다 텃밭은 놀이터인 모양이다. 직업이 입시 강사인지라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해야하는 날이 부지기수, 힘들기도 할 텐데 그만할 생각은 없냐니까 '이 재밌는 걸?'이라고 되묻는다. 정말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모양이다. 도시농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말한다. "시작이 반이에요. 실패하면 또 하면 되죠. 일단은 도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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