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와 영주의 주말 어린이집 적응기
하이서울뉴스 조선기
발행일 2011.06.28. 00:00
메아리, 너 참 밉다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에 상륙하겠습니다.”
26일 아침, 뉴스를 보니 태풍 소식이다. 아차, 오늘 아이돌봄센터 취재가야 하는 데, 혹시 센터에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냐? 불안한 마음으로 센터가 있는 혜화동으로 향한다. 마침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오늘 오기로 한 아이가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단다. 총 세 가족이 예약을 했는데, 다른 아이들도 날씨가 이러니 안 올수 있을 것 같다고. 아, 우려는 현실이 되는 건가.
대학로 '여성행복 아이돌봄센터', 이곳은 육아로 인하여 문화생활을 즐길 기회가 적은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시설로, 영화나 공연관람 시간동안 일시적으로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다. 4시간에 2000원, 누구말대로 웬만한 주차값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다보니,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날도 원장님, 보육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누군가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 맡기러 왔는데요.” 인상 좋으신 남자분이 남자아이를 안고 센터로 들어왔다. 곧이어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붙잡고 들어왔다. 여자 아이의 이름은 정은지(만 4세), 남자 아이의 이름은 정영주(만 3세)였다. 아이들은 처음 온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낯가림없이 센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엄마 아빠 공연보고 올 테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어려움 없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어린이집 이곳저곳을 휘젓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끌벅적한 아이들 세상이 시작되려나보다.
내가 파워레인저 상어를 만들었어요~
센터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공연 보는 이들을 고려해 2시부터 6시, 7시부터 10시까지 2부로 나누어 신청을 받고 있다. 쉽게 말해 주말 시간제 보육인 셈이다. 그럼 그 시간동안 아이들은 뭘 하며 놀까.
은지는 제일 먼저 소꿉놀이에 빠졌다. 모형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선생님도 주고 자신도 먹는 시늉을 했다. 또 우주선을 멋들어지게 만들고, 우주선을 타고 날아갈 별도 만들었다. 과학자가 꿈이라고 하더니, 그 나이 또래 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다.
영주는 소방수가 되어 방 안 곳곳의 불을 끄러 다녔다. 또 다양한 모형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곰인형에게 토토란 이름을 붙여주고 좋아라했다. 토토는 영주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모형 집 안에 자리를 잡았다. 영주는 막내답게 천진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시종일관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다.
보육 시간이 짧다고 아이들에게 자유시간만 주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심심해하지 않게 만들기 활동도 이어졌다. 그날은 비닐과 은박지, 색깔 있는 펜을 이용해 물고기를 만들었다. 영주는 파워레인저 상어를 만들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은지 역시 '집에 가져가야 하니까 잘 보관해주세요'라며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자랑스러워했다.
은지는 귀염둥이, 영주는 서너개(?)
아이들과 있다 보면, 가끔씩 의외의 대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만들기 시간이 끝나자 허기진 아이들을 위해 간식시간이 마련됐다. 아이들은 손을 씻고 간식으로 나온 카스테라와 오렌지주스를 맛있게 먹었다. 별명이 뭐냐는 질문에 은지는 귀염둥이라고 말했고, 영주는 서너개(?)라고 답했다. 서너 개? 서너 개가 뭐지? 그때 선생님 한 분이 얘기하셨다. "왜 그 노래 있잖아요. 내 동생 곱슬머리로 시작하는. 거기서 별명은 서너 개라고 나오잖아요." 아, 그 노래구나.
간식 후 영주는 또 한 번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다. 간식을 빨리 먹은 영주에게 선생님은 '영주가 빨리 먹었구나' 하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영주는 '빠르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며 인생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말을 던졌다. 이게 세 살짜리 아이에게서 나올 말인가. 김지연 선생님은 "부모님께서 주로 쓰시는 말 같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의 생각을 많이 존중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숙진 선생님은 "은지는 생각이 맑고 창의적인 사고가 발달된 아이 같고, 영주는 막내다운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어딜가나 사랑을 받을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원장 선생님은 날씨가 좋다면, 옥상에 있는 야외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날씨가 좋지 않아 아쉬워했다. 그런 아쉬움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센터 곳곳을 신나게 다녔다. 간식 후라서 그런지 한껏 에너지가 충전돼 보였다. 식물을 관찰하는 돋보기로 여기저기를 살펴보기도 하고, 미끄럼틀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복도에 비치된 책도 지나치지 않았다. 은지는 곁에 계시는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가 꽂고 있던 핀을 빼서 달아주기도 했다. 영주는 선생님과 엄마 아기 역할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부모님이 돌아오자 영주는 자기가 만든 파워레인저 상어를 들고 가 "내가 만든 거"라며 폴짝폴짝 뛰었다. 부모님 역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보육선생님께 고마워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려줘야겠다는 의견을 비추기도 했다. 하긴 아이 있는 부모들이 문화생활을 하기가 쉬운가. 특히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최신영화는 고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보는 게 전부가 아닌가.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떠나자 아이돌봄센터는 다시 조용해졌다. 역시 이곳은 아이들이 있을 때야 비로소 살아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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