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

서울톡톡 조선기

Visit2,836 Date2012.11.19 00:00


[서울톡톡] ‘긴급출동, 긴급출동, 화재가 발생했으니 신속출동하세요.’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이광선 씨를 만나기 위해 마포소방서를 찾았다. 겨울이라 화재가 많은 모양이었다. 싸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발했다. 한차례 소란스럽던 상황이 지나자 실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오셨어요.’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가 바로 아이디어가 많기로 소문난 공무원, 이광선 소방위이었다.


소방공무원이 된 지 20년


1991년 2월 그는 서른다섯 나이에 소방공무원이 됐다. 지나다 우연히 벽에 붙어있는 모집공고문을 본 게 인연이 됐다. 평소에도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첫 모습을 갖춘 건 그가 수난구조대에서 일할 때였다. 수난구조대는 한강 구간의 안전사고 대처를 위해 일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한강에서 누군가 투신을 했다거나 배가 뒤집혀 인명사고가 났을 때 수난구조대가 출동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5분. 그러나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해서 사람을 구하기까지 5분은 참 짧은 시간이다. 특히 산소통 등 장비를 장착하는 데도 족히 5분은 걸린다. 그때 그의 첫 작품이 탄생했다.


“인명구조용 공기호흡기라고, 산소통을 메지 않고도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장비에요. 산소통을 배 위에 두고, 호스를 연결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거죠.”


이 장비로 구조원들의 입수 시간이 빨라졌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도 여럿이다. 이를 개발한 공로로 그는 특별 승진하게 됐다. 그는 지금까지 총 두 번의 특별승진을 했는데, 또 한 번은 삼풍백화점 사고(1995) 인명구조 및 사고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았을 때였다.


“삼풍 사고를 겪은 후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하죠. 사람들 만나는 것도 힘들고, 머릿고기 같은 것도 못 먹었어요. 후유증이 6개월 넘게 걸린 것 같아요. 몇 년간 헤매는 애들도 있어요.”



그 때 그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사고에 닥쳤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고 후에도 멍하게 지낼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그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결국 아이디어는 아쉬움에서 나온다. 그런 아쉬움은 그를 점점 발명에 빠져들게 했다.


‘스크루 재활용’ 제안도 그렇다. 그가 수난구조대에 있을 때 수난구조용 스크루는 자주 망가지는 부속품 중 하나였는데, 전량 수입하던 때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는 스크루를 보수해서 쓰자고 제안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수입대체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특별승급하게 됐다.


2005년도에는 초고온 산소절단기를 개발했다. 이 장비는 소방관들이 불 난 건물에 들어갈 때,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도구다. 또 2008년엔 노약자들이 소화기를 들고 이용하는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소화기용 손잡이를 발명했다. 소화기 본체에 손잡이를 부착해 누구나 손쉽게 들고 이동할 수 있게 개발한 것이다. 이는 직무 발명으로 인정받아 2008년 서울시로 권리이전하여 특허 출원됐다.


그 뿐인가. 올 3월엔 방화 커튼장치로 특허를 냈다. 아파트에 화재가 나면 윗집으로 번지는 사고가 많은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다.


“요즘 발코니 확장을 많이 해서 아파트에 불이 나면 그대로 윗집에 올라가거든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베란다 창문 위에 설치했다가, 불이 나면 열에 의해 떨어지게 돼 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


아이디어도 습관이라 한 번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가 만들고 제안한 아이디어만 200여건이 넘는다.


“아이디어 내고 이러는 게 병이에요. 계절병같이 안한다고 해놓고 어느 샌가 또 하게 되고 그래서 하는 사람들만 하는 거죠.”


2010년도엔 소방방재청 국민제안에 아이디어를 내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때 낸 아이디어는 한강다리 위에 다리 밑 표식을 적어두는 것이다. 이는 한강 투신자를 보고 119에 신고할 때 유용하다. 구조대가 사람을 구하려면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리 중간이나 끝이다 정도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리 위에도 다리 밑처럼 똑같이 기호를 표시해 두면 구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 화두는 방독면이에요.” 그의 머릿속에는 요즘도 발명 생각이 가득하다. 최근엔 방독마스크를 경량화·소형화시키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유독가스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엔 칫솔 하나만 타도 유독가스가 많이 나온다. 그의 발명과 아이디어들은 그가 일하는 것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때마다 느끼는 그의 고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화재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대기 중 산소가 15% 밑으로 내려가면 불이 꺼져요. 13%로 내려가면 완전히 꺼지구요. 그래서 화재가 나면 문닫고 빨리 나오는 게 상책이에요. 불이 번진다 싶으면 나오는 게 좋아요. 불 끄려고 했다가 불만 번지고 유독가스도 나오고 위험하죠. 괜히 나오는 길을 잃을 수도 있구요.”


그의 아이디어가 매력적인 건 혼자가 아닌 많은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되면서 간절해진 게 아닌가 싶다. 과거, 눈 앞에서 죽은 동료와 그가 살리고 또 살리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몇 번의 사고로 위험에 닥친 순간까지. 직업이 그렇다보니 그가 접하는 인생은 언제나 극과 극이다. 굴곡진 삶을 산 것 같다는 말에 그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라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허허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인상좋은 이웃집 아저씨다. 쌀쌀한 날씨에도 그의 웃음은 푸근했다. 그렇게 그는 험난한 세상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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