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시민리포터 장경근

Visit2,254 Date2012.05.24 00:00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나는 아이들에게 존경 받는 아버지일까. 아니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장으로 인정받고 있기나 한 걸까.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이방인이 되는 원인은 자녀와의 대화 부족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정채기 강원관광대학 영유아보육복지과 교수(한국남성학연구회장, 교육학박사)를 만나, 모든 아버지들이 가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 현상, 전적으로 아버지 책임


지난해 모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초등학교 2학년생의 자작시가 방송되어 많은 아버지들에게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이뻐해 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는 놀아주기는커녕 얼굴보기도 어려운 존재로, 인식론 차원에서는 존재하지만 목적론적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던 셈이다.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 현상은 크게 두 가지죠. 이혼이나 별거, 사망 등으로 인한 사실적인 부재와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정서적인 부재 즉 비사실적인 부재가 있습니다. 사실적인 부재에 비해 비사실적인 부재는 내용적인 면으로 공허감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채기 교수는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가 자녀와 대화를 멀리하는 버릇에서 비롯됐다며, 이는 전적으로 아버지 책임이라고 단정 지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와 대화하지 않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가족부가 2011년 실시한 가족실태조사를 보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대화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아버지 3명 가운데 1명은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15~18세 청소년의 69.5%가 하루에 2시간 미만으로 부모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하루 대화시간이 30분이 안 된다는 청소년도 20.8%에 달했는데,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9명이 아버지와의 대화를 어려워한다는 데 있어요.”


그러면 자녀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 교수는 자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맞추고 자녀에 대한 좋은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친구(friend)’와 ‘아빠(daddy)’의 합성어인 ‘프렌디(friendy)’가 대세입니다. 프렌디는 아버지로서의 삶에 행복을 느끼고 자녀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친구 같은 아빠’를 뜻하지요. 또한 ‘비로드 파파’도 같은 맥락인데 이는 곱고 부드러운 천인 비로드(벨벳, velvet)로 만든 바지를 입은 아빠라는 뜻으로,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아빠의 모델을 말합니다”


친구의 눈높이로 이야기를 들어줄 것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아버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면 안 되며, 아끼는 마음을 나누는 또래역할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무거운 권위를 내려놓고 친구처럼 편안한 역할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친구처럼 대한다고 해서 자녀가 아버지에게 막 대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자녀들도 없겠지만…… 아버지가 자녀의 또래역할을 할 때 대화하기가 한결 쉬워지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자녀에 대해 미리 공부해야 하지요.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뭘 사고 싶어 하고,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친구 입장에서 분석하고 판단해보는 겁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친밀감을 주는 아버지가 되는 것도 시작이 중요하다. 일상의 작은 일부터 자녀와 함께 하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면 일단은 성공이다.


방학이나 휴가 중에 테마가 있는 여행하기는 물론, 손잡고 동네 산책하기, 함께 목욕하며 스킨십하기,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기, 그리고 비오는 날 아이들 학교에 마중가기, 자주 통화하고 문자 보내기, 감동이 담긴 이메일 편지하기 등 찾아보면 아이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소박한 아이디어는 수없이 많다.


물리적인 아버지가 아닌 실존적인 아버지로서 자녀들과의 대화에 적극성을 갖자. 대화는 사랑의 표현이고, 교육이며 가정의 화목과도 직결된다. 아버지들에게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이방인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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