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관사 VS 최고의 기관사

하이서울뉴스 조선기

발행일 2011.12.21. 00:00

수정일 2011.12.21. 00:00

조회 5,137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서울메트로 배재덕 기관사와 서울도시철도 이정한 기관사.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에서 최고의 기관사로 선정된 두 분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처음 최고수 두 분을 인터뷰하기로 했을 때, 무림의 고수들을 떠올렸다. 고수 대 고수가 만났을 때 흐르는 정적과 긴장감을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ooo은 잘 있어요?"
"네, 잘 계세요. 거기 ㅁㅁㅁ씨라고 계시지 않나요?"
"아 그 친구. 우리 소속인데 잘 아나봐요?"

처음 만남은 오래된 친척을 만난 것처럼 화기애애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계통에서 일하다 보니 직장만 다를 뿐, 하는 일이나 근무환경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한 명이 얘기하면 다른 한 명이 맞장구치고, 한 명이 얘기 하면 다른 한 명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쁨은 두 배로, 슬픔은 반으로 줄어드는 인터뷰라고나 할까.

출근 시간이 10시 58분?

두 분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이유는 근무 시간표가 맞지 않기 때문. 각자 일하는 스케줄이 다르기 때문에 비어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기관사는 출퇴근 시간이 개인별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2시 5분에 출근하고 어떤 사람은 10시 58분에 출근한다. 그날 배재덕 기관사는 아침에 퇴근하고 나오는 길이었고, 이정한 기관사는 저녁 근무가 예정돼 있었다. 이들처럼 출퇴근 시간을 에누리 없이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배재덕(이하 배) : 젊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다음날 새벽근무였어요. 전날부터 내일 어떻게 일찍 출근하지? 이런 생각에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젊었을 때는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일찍 출근하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후배 기관사들이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면 바꿔주고 그래요.

이정한(이하 이) : 시간을 확실히 지켜야 하니까, 난감한 경우도 있어요. 아침에 출근하려고 눈을 떴는데, 눈이 엄청 내린 거예요. 버스도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더라고요. 결국 다른 기관사에게 부탁을 했죠.

시간을 칼 같이 지켜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다. 자다가도 벨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고, 어떤 때는 벨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내일 근무라면 오늘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만약 급한 상황이 닥치면 심장이 더욱 콩닥거린다. 대기 기관사가 있으면 다행인데, 없으면 어휴~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아직도 20년 전 그 자리를 지나면...

배 : 이 기관사님은 사상사고 나셨어요?
이 : 아니요.
배 : 저는 있었어요. 6건.

현재 배재덕 기관사는 1호선에서, 이정한 기관사는 8호선에서 차량을 운전한다.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생겨서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 지하철 승강장이었다. 보통 플랫폼에서 사람이 뛰어내리거나 술 취한 사람이 선로로 내려와 걷다가 사고가 나는데, 굳이 책임여부를 따지자면 이럴 경우 운전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운전자 또한 강한 충격을 받는다.

배 : 제가 운전하고 간 차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굉장히 데미지가 커요. 아직도 그 자리에 가면 그 생각이 계속 나요.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래요.
이 : 아무래도 선배님이 지상 구간이 많은 1호선을 운전하시니까, 그런 사고가 더 많으신 것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지하라 사고가 잘 나는 편은 아니에요. 다행히 요즘은 스크린 도어가 생겨서 플랫폼 사고도 많이 줄었죠.

기관사들이 얼마나 스크린도어에게 고마워하고 있는지, 스크린도어 회사 사장님이 아시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스크린도어가 생기기 전에는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설 때 누군가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오면, 그 순간 기관사들의 갈등과 고민이 시작된다. 저 사람이 뛰어내리려는 걸까? 아니면 지하철을 타려고 앞으로 나오는 건가? 지금 비상제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여튼 이런 고민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게 스크린도어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지만, 1호선 일부 역에서는 아직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다.

배 :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니까요. 자살하려는 분들이 스크린도어 없는 곳으로 원정가면 어떡하나 하고.

당신의 장은 안녕하십니까?

어떤 직업이나 직업병이 있다. 그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근무시간이 불규칙하다보니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일정치 않다. 그러니 자칫하면 위장병 걸리기 쉬운 게 이들 직업이다.

배 : 식사 시간이 불규칙 하니까요. 제가 아침을 새벽 4시 30분에 먹으면 점심을 11시 30에 먹어요. 그리고 저녁 먹는 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나 그러죠. 시간 맞춰 먹는 사람이 없다고 봐야죠.

이 : 또 아침에 먹고 왔는데, 얼마 안돼서 점심을 먹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때 안 먹으면 점심 먹는 시간을 놓쳐버리니까. 미리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먹다보면 저녁 식사 시간은 훨씬 늦어지곤 합니다.

먹는 일도 그렇지만, 배설(?) 하는 일도 이들에겐 쉽지 않다. 언젠가 차장 하나가 달리는 차에서 문 열고 볼 일을 보다가 사망했던 일이 있었다. 이처럼 운전하는 동안 배설 욕구를 참아야 하는 것도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사고 이후로 운전실에 간이용 화장실을 만들어놨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이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저 장이 불편하면 근무 전에 굶고 타거나, 약을 먹으면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다.

기관사의 취미생활

배 : 한겨울에도 자전거 타요. 영하 5~6도에도 타고 다니니까, 오늘도 타고 왔는걸요.

그럼 그들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까. 배재덕 기관사는 자신있게 자전거라고 답했다. 그는 이미 6년 전부터 MTB에 푹 빠져있다. 2년 전부터는 관련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근무가 불규칙하다보니 주말 라이딩엔 잘 참석하지 못한다. 대신 평일 라이딩은 자주 참석한다고. 이정한 기관사 역시 최근 새로운 운동에 취미를 붙였다.

이 : 두 달 전부터 야구 동호회 시작했어요. 내년부터 대회 나가기로 했는데, 일단은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려고요.

배 : 포지션이 어떻게 되세요?

이 : 그저께 정했는데, 투수하기로 했어요. 어떤 분이 저를 투수로 지목해가지고. 하하하

근무시간이 일정치 않다보니 규칙적인 취미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그들은 이럴수록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운동을 하다보면 체력도 키워지고, 피로감도 확실히 줄어든다고.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같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민원은 전동차 냉난방 문의다. 사람마다 체감 온도도 틀린 데다가 옷의 두께도 다르다보니,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동시에 들어오는 일이 많다. 어떤 차장은 춥고, 덥다는 민원이 같이 들어오자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라고 승객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그리고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출입문이 닫히려고 할 때 뛰어드는 사람이다.

이 : 장난치는 사람들, 신경쓰이죠. 어떤 사람은 문에 끼인 것처럼 연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단체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한 사람이 지하철 문이 안 닫히게 잡고 있어요. 그럼 안열어주기도 뭐하고 열어줘야죠.

배 : 이 기관사님은 혼자서 운행하시니까 그러시겠네요. 저희는 차장이 출입문 관리를 하니까 그런 고민은 좀 덜하죠. 그런데 거기서 감정 상하면 자기만 손해니까 후배들에게도 웬만하면 그냥 넘기라고 해요.

얘기를 듣다보니, 후배들에게 전해줄 그들 나름의 철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최고의 기관사니까.

배 : 기관사들도 자기 개발이 필요해요. 전동차도 가끔 고장 나거든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려면 자기개발이 필수죠. 오래돼서 잃어버린 게 있으면 계속 공부해야 해요. 또 아침에 운전하려면 전날 술 먹는 것도 자제해야 해요. 아침 음주 수치도 의외로 높거든요.

이 : 차량 장애가 났을 때 그때그때 처리방법을 공부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고장들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거든요. 자기 것으로 만들다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런 정보들이 쌓이다 보면, 큰 정보가 되죠. 워낙 큰 사고는 실수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확인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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