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전을 좋아하는 벽안의 노신사를 만나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은자

발행일 2011.09.27. 00:00

수정일 2011.09.27. 00:00

조회 3,100

여름방학과 한가위 연휴를 지난 초등학교 교정은 이제 가을축제 준비로 활기차다. 화초들도 얼마나 예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곤 한다. 방과후수업으로 여전히 활기찬 교실과 교정에서 만난 78세의 백발 네덜란드 시아로네 할아버지, ‘서울시티홀 리포터’라며 다가서서 대화를 나누는데 한국말도 웬만큼은 하는 것 같아서 방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서야로’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을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노신사였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마치 인자한 친할아버지를 만난 듯 금방 친해지고 익숙해져 그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 편한 평상복으로 마치 동네 나들이하듯 나오셨는데, 혹시 학교 가까운 곳에서 사시나?
▲아니다. 고향은 네덜란드 레이던 시이다. 지금 수업 중인 방과후 미술선생님(김숙미, 54)과의 인연으로 한국에 자주 여행을 온다. 20년 전 김 선생님이 네덜란드로 유학을 와서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 한국이 좋아 2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을 찾는다. 이번이 9회째다. 김 선생님을 알기 전인 39년 전 이곳 서울 사당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입양했었고, 그 이후로 남매를 더 입양했는데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

-레이던 시는 어떤 곳인지?
▲레이던은 화가 렘브란트의 출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김 선생님도 그래서 유학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이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고 생활 속에서 미적인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곳 한국 어린이들의 그림공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의 교실 풍경이 떠올라 잠시 추억 속에 잠기기도 했다. 손자, 손녀들과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이다. 1575년에 당시 왕자가 설립한 오랜 전통의 레이던 대학은 몇 해 전 유럽 명문대 20위 안에 들기도 했다. 도시가 아주 차분하고 조용해서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도시다.

피마자 열매를 보며 신기해 하는 할아버지

-입양해서 잘 성장한 자녀들이 궁금하다. 어떻게 입양하게 됐나?
▲한국전쟁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이 많았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도 한국의 고아를 입양하는 이웃들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를 잃은 삼남매를 함께 입양해서 친자식처럼 키웠다. 한국에 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좋아한다. 한국 우표와 민속화, 엽서들도 많이 수집했고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들도 많이 읽고 있다. 세 아이 다 잘 성장해서 큰딸은 젊은이들을 위한 액세서리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막내딸은 결혼해서 애가 넷이나 되는데 셋째와 넷째는 쌍둥이다. 아들은 은행원인데 2년 전 독일여자와 결혼해서 딸이 하나 있다.

-유명한 화가의 출생지가 고향이어서인지 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셨나?
▲모피에 대해서 공부했고, 모피사업을 해왔는데 환경단체들의 강렬한 시위와 항의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의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과 의지에 큰 박수를 보낸다. 포기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한국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자료수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그 동안 9회나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 특히 서울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설악산이나 제주도도 아주 좋다. 서울은 갈 곳이 아주 많다. 산, 궁궐, 역사 유적지 등. 방문 때마다 가는 곳이 바로 남산, 북한산, 인사동,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 등인데 지금은 갈 곳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도시 자체가 유적지이고 보물인 곳이 흔치 않다. 서울은 세계적인 문화유산 그 자체다. 이번에 와보니까 성곽길이나 둘레길이 잘 조성돼서 걷기에 아주 좋고 한강도 아주 매력적이다. 올 때마다 변화된 모습들을 보기 때문에 늘 새롭다. 고향에 있는 자식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한국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드실 것 같은데, 특히 어떤 음식이 좋은지?
▲비빔밥, 김치, 된장, 고추장, 추어탕 등 모든 음식들이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맛있다. 잘 발효된 식품들이 많아서 안심하고 먹어도 좋다. 부추전을 특히 좋아한다. 요리가 아주 간편하면서도 입맛에 맞아 즐겨 먹는다.

-학교 화단에 피어있는 꽃들과 야채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던데, 네덜란드는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초로 유명한 곳인데 혹시 화단에 네덜란드에 없는 귀한 화초가 있나?
▲화단에 화초들이 참 소박해서 텃밭 같다. 정성스럽게 잘 재배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가을 날씨는 정말 큰 축복이다. 식물들이 잘 영글어가는 풍경을 보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가시가 돋아난 이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처음 본다.

할아버지가 가리키고 있는 열매는 옛날에 시골에서 기름을 짰던 피마자 열매였다. 아주까리라고도 하는데, 할아버지는 열심히 피마자라고 메모를 하며 계속 갸우뚱거렸다. 아이들의 표정도 교정의 화단도 아름답기만 했던 어느 가을날, 우연히 만난 한국을 사랑하는 네델란드인 노신사와의 데이트로 인해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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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문 #네델란드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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