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샘암 이겨내고 금메달 영광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안혜련

발행일 2011.01.19. 00:00

수정일 2011.01.19. 00:00

조회 3,535

“제가 많은 복을 누린 게 사실이지만, 절대 거저 얻어진 건 아니에요. 간절히 원하며 흔들림 없이 가다보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제 좌우명 ‘노력하는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다’처럼요.” 갑상샘암을 이겨내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사이클 여자 도로독주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민혜(26·서울시청)선수를 만났다. 매서운 한파를 헤치고 달려온 그녀에게서 시련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2월 31일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시민대표로 당당히 섰던 그 모습 그대로 반듯하고 씩씩한 신세대였다.

story1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준 갑상샘암

‘제야의 종’같은 국가적 행사에서 타종할 수 있었던 건 큰 영광이죠. 게다가 시민들이 직접 투표로 저를 뽑아주셨다고 하니 더 값지고요. 암을 극복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제 모습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께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선정되었다더라고요. 그러니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2008년 평소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고생하시던 엄마가 검사를 권하셔서 발병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서 준비하던 무렵이었는데, 너무 쉽게 피곤해지고 회복도 잘 되지 않아 힘들어 했거든요. ‘나이 먹으면 몸이 다르다던데, 과연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싶었어요. 훈련도중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절망스럽고,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런 상태에서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결국 메달도 따지 못했고요.

그러다가 올림픽에서 돌아오니 갑상샘암이라는 결과가 나와 있더군요. 전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희망을 얻었어요. ‘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그동안 힘들었던 원인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소속팀인 서울시청 김석호 감독님께서도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돌아오라”고 믿고 격려해주셔서 수술 잘 받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어요. 이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감독님의 그런 믿음과 배려 덕분이지요.

요즘 흔히 말하는 제 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에요. 몸 상태도 아주 좋고요. 수술 후 7~8개월 쉬는 동안에도 계속 몸 관리를 했거든요. 지금은 2년 뒤인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죠. 아, 정확하게 1년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네요. 이런 절 보고 주변 선수들은 “독하다”고들 하죠. 제가 사실 좀 독해요! (웃음)

story2 선생님의 착각으로 시작한 사이클

초등학교 때 원래 육상선수였거든요. ‘달려라 하니’처럼 달렸지요. 그러다가 6학년 때 육상감독 겸 담임선생님께서 저희 집 사정을 잘 아시니까 “민혜야, 육상보다 사이클이 비전이 있다. 프로 경륜 선수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단다”라고 권유하셔서 사이클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경륜은 없는데 그 사실을 모르셨던 거죠. 은사님의 착각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육상 선수가 되어 달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4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제 환경을 원망해본 적은 없어요. 아버지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성향이었고 책임감도 강했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든,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그 마인드가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훈련 도중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면 옆에서 달리고 있는 선수를 보면서 ‘나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달리려고 해요. 누구든 ‘힘들지만 아직은 더 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지 않나요?

하지만 저라고 왜 슬럼프가 없었겠어요.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는걸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포인트 레이스에 참가해 기대를 모았지만 22명 가운데 19위였어요. 거의 꼴찌였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와 전국체전에 참가했는데 메달을 휩쓸었어요. ‘이래도 국내에서는 통하는데, 뭘!’이라는 못난 자기 위안이 고개를 들더군요. 제 상처를 위장하느라 헛된 만용을 부렸던 거죠.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태함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의의 라이벌인 후배들은 고마운 존재죠. 사석에서는 친한 언니, 동생이지만 훈련에 들어가면 보이지않는 경쟁으로 분발하게 해주고, 또 단체 종목에 참가할 때는 한 몸처럼 팀워크로 똘똘 뭉쳐, 서로 윈윈할 수 있거든요.

story3 나를 달리게 하는 그 이름, 엄마

제가 존경하는 인물은 저희 엄마예요. 혼자 몸으로 포기하지 않고 딸 둘을 키울 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늘 “엄마, 나중에 내가 운전기사 딸린 차 뒷좌석에 모실게”라고 말하곤 했어요. 광저우 아시안게임 전까진 연금 포인트가 얼마 안 됐는데, 이번에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따 연금 포인트를 채워 엄마께 드렸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평생 해오던 일이라 쉬면 더 아프다며 아직도 일을 계속하세요. 저도 몰랐는데 엄마가 어떤 인터뷰에서 저를 ‘남편같고, 아들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그런 엄마의 고생과 기대에 보답하려면 평생 갚아도 모자라죠.

현재 목표는 우선 2012년 런던 올림픽 옴니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거예요. 런던올림픽에서 육상 10종경기와 비슷한 ‘옴니엄(6개 종목 합산점수로 순위를 결정) 종목’이 신설되거든요. 지금은 중장거리 선수지만 과거에는 단거리가 저의 주종목이었기 때문에 옴니엄 경기는 여러모로 제게 유리하죠. 지금 페이스대로 꾸준히 훈련해간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봐요. 그리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그리고 32살이 되는 2016년 리오올림픽까지 출전할거예요. 이렇게 해서 국내선수로는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총 3회 출전, 올림픽 총 3회 출전을 이루는 게 제 중장기 목표예요.

그 후에는 지도자가 되어 후진을 양성해야지요. 국내선수들이 기록을 잘 거둘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보다 좋은 여건에서 훈련하도록 훈련 환경도 조성해주고요. 저도 2007년부터 스위스 국제사이클연맹 센터에서 전지훈련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클을 널리 알리고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유럽에서는 축구 못지않게 인기 있는 사이클이 비인기종목으로 취급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거든요. 연애 계획요? 아직 없습니다. 연애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

#이민혜 #사이클 #갑상생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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