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다

김영옥

발행일 2010.10.20. 00:00

수정일 2010.10.20. 00:00

조회 3,700

“그저 흙을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 않은 유쾌한 일이 생기고, 순수한 시선을 배우고, 특별한 창조물이 나왔다”

서울시창작공간페스티벌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0월 초 여의도한강시민공원 행사장 안. ‘예술가와 함께 한 7개월간의 문화 나눔 프로젝트’ 라는 부제의 전시 앞에 발길이 멈췄다. 신당꿈지역아동센터(사회적 배려 대상) 18명의 아이들이 만든 작은 컵 모양의 도자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컨테이너 한 면에는 그동안 아이들이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모습들의 사진이 붙어 있고, 다른 두 면엔 작고 앙증맞은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자기의 얼굴 모습을 형상화 한 도자기 컵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중앙엔 다락방 모양의 비밀스런 공간이 있었는데 양쪽 계단을 올라가 머리를 밀어 올리니 그곳엔 작가가 만든 아이들의 익살스런 모습을 담은 도자기 컵이 전시되어 있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엄마가 안아 주거나 아빠의 목말을 타고 올라 그 비밀스런 공간을 감상하곤 했다. 작가의 눈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더불어 문화적인 혜택이 덜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도자 작업을 진행하며 흙을 만지는 즐겁고 창조적인 경험을 준 작가가 궁금해졌다.

비어 있는 점포를 리모델링하여 공예 중심 창작공방을 조성하여 노후한 지하상가 시설을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되살려 놓은 신당창작아케이드는 독특한 공간구성을 갖고 있었다. 작가의 공방과 상가 점포가 혼재된 공간엔 다양한 분야의 공예작가 40명이 입주해 창작활동 중이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작가의 공방에서 만난 임나영 작가는 밝고 젊었다. 임작가는 도자를 이용하여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얼굴을 표현하는 도예가로 작가는 유년의 얼굴 모습이 가장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 순수한 유년의 얼굴 모습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감정적인 표현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가장 순수한 아이들에게도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록해 보는 신나는 경험을 갖게 하고 싶어졌고 본인이 대상으로 삼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해내며 즐거워할까라는 생각으로 지역의 아이들과 만나보고 싶어졌다.

임나영 작가는 신당창작아케이드 운영사무실에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 했고 일반적인 아이들보다는 문화적인 혜택이 덜 미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작가가 만난 지역의 아이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의 편부모 아이들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과 자신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경험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흙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처음 12주간은 지역아동센터 고학년 아이들과 만났고, 이후 10주간은 저학년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이런저런 사정들로 시간은 길어져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거의 40주에 이르렀다.

자기의 얼굴을 컵이라는 공간에 표현해 보기 위해 아이들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평면에 그려 보았고 그것들을 토대로 입체적인 작업으로 흙으로 물레를 직접 차며 원형의 틀을 만들고 눈과 코와 입을 붙여가며 자기의 얼굴을 만들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만드는 과정을 힘들어 했지만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익숙해져 가며 아이들도 도자 만들기에 집중하게 됐어요. 생각나는 대로 스스럼없이 흙을 만지며 자기를 표현해 가는 아이들을 통해 작업을 하면서 너무 생각이 많아 쉽게 작업에 몰입하지 못하는 제 작가적인 태도도 반성하게 됐어요. 아이들처럼 머리가 깨끗한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큰 소득이죠.”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한 40주의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가르쳤다는 느낌보다 아이들과의 자연스런 소통이 이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그저 흙을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 않은 유쾌한 일이 생기고, 순수한 시선을 배우고, 특별한 창조물이 나왔다’고 고백했다.

작가와 아이들이 만났던 시간과 그에 따른 결과물을 외부 공간에서 전시하게 되는 일도 일어났다. 처음 아이들과 도자 작업을 기획해 작업을 진행할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만든 결과물은 작가의 공방에서 조촐한 전시를 가질 계획이었다. 아이들이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들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봐주고 관심을 갖고 지지해 준 이번 전시를 통한 감동을 작가는 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겨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많은 이들이 와서 봐 준다는 사실에 아이들도 무척 기뻐했다.

기존의 예술이 작가가 내면과의 대화를 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로 이루어졌다면 요즘 추세는 작가들이 예술을 통해 실제 삶,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나누며 함께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실제로 임나영 작가는 “이번 경험은 지속적으로 나가야할 작업의 방향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앞으로 아이들과의 작업을 더 진행해 볼 계획입니다. 다음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만나 볼 생각이고 그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얻은 결과물들로 더 풍성한 전시도 열었으면 합니다”라며 지속적인 문화 나눔 프로젝트를 진행할 의사를 다졌다.

아이들과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달라진 점에 대해 조심스레 묻자 “도자 작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단기간에 달라진 무엇을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저소득층이라서, 편부모 가정이라서’라는 선입견도 어른들의 편견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이미 밝았어요”라며 아이들과의 흙을 통한 이번 소통의 경험이 무척 유쾌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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