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실천하라는 뜻의 ‘귀밝이술’

이종철

발행일 2011.01.31. 00:00

수정일 2011.01.31. 00:00

조회 3,642

한민족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새해의 첫날인 ‘설’은 본래 ‘조심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날 우리는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웃어른과 가족․친지․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음식과 덕담을 교환하고, 가족․이웃과 어울려 놀며,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설계하면서 쉰다. 온갖 의미가 얼개처럼 짜여진 있는 성스러운 잔치(축제)인 것이다.

설은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잔치가 되었을까? 기록이 없어 분명치 않으나, 늦어도 부여(夫餘) 때부터는 차례를 지내고 잔치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三國志)'라는 중국의 고대 역사서에는 부여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은나라 정월(음력 12월)에는 하늘에 제사지내며 큰 축제를 열어 날마다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영고(迎鼓)라고 부른다. 이때에는 죄지은 사람들을 벌주는 일도 멈추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곧 부여가 중국의 은나라 달력을 썼으며, 정월 초하루 곧 설날에 잔치를 벌였음을 전해준다.

같은 무렵 남쪽의 마한(馬韓)에서는 음력 5월과 10월에 모두 모여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며 춤추고 놀았다고 한다. 농사를 기준으로 씨 뿌리는 단오와 추수하는 추석에 큰 잔치를 벌인 것이다. 같은 책에는 왜인(倭人)들을 “한해의 시작과 4계절을 모르고 단지 봄에 밭 갈고 가을에 추수하는 것을 따져서 달력처럼 쓴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로써 마한과 왜에는 아직 정밀한 달력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설은 단오나 추석과 달리 달력에서 만들어낸 잔치이기에 다분히 정치적이고 의례적인 뜻이 강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의례와 달력이 발달한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태양력의 24절기에 따라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12개월을 나누고 12지(支)의 이름을 붙였다. 즉, 동지가 들어있는 음력 11월을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 등으로 부른 것이다. 나라마다 설날의 기준이 달라서, 은(殷)나라는 축월(12월), 주(周)나라는 자월(11월)을 정월로 삼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 '주서(周書)'에는 백제 사람들이 인월(寅月)을 한해의 첫머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인월은 음력 1월을 가리킨다. 백제는 부여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이지만, 설날은 부여와 달랐던 것이다. 음력 1월은 봄이 시작되는 기준이기도 했다. 1년을 4계절로 나눌 때 1․2․3월은 봄, 4․5․6월은 여름, 7․8․9월은 가을, 10․11․12월은 겨울로 나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력 1월의 첫날은 생명 탄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261년 설날에 백제 고이왕(古爾王)이 “소매가 큰 자주색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 관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서 일을 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해 첫날에 새로운 각오와 소망으로 업무에 임한 고이왕의 모습이 꽤 생생하여 설날을 으레 쉬는 날로만 생각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설날을 한자로 원일(元日), 세수(歲首) 등으로 표현하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지내 삼가 바르게 지내자는 신일(愼日)의 뜻을 지녔다. 어린 시절, 설날 아침 새 옷을 지어입고, 차례에 참석할 때 할아버지께서는 두건과 제복을 갖추고 엄숙하게 차례를 지내셨다. 참으로 경건해 보였기에 지금도 기억하는 장면이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의 설 추억은 차례 후의 맛있는 과일 음복과 푸짐한 세뱃돈만한 것이 없다.

대학 입학 무렵에는 밤과 대추를 분배받던 음복과 세뱃돈 대열에서 나도 모르게 물러나고, 대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실천하라는 귀밝이술과 건강․행복․인생에 대한 덕담을 선물로 받았다. 어머니는 섣달 그믐날 밤이나 설날 아침 새벽에 복조리를 부엌 앞이나 문지방에 걸어두며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가 그믐날 밤에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마을의 동제당, 당산나무터나 큰집 앞마당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널뛰기를 했다. 수줍은 처녀들의 설빔 치마폭이 너른 창공과 활기찬 총각들의 시야를 가르고, 양지바른 고샅에는 할아버지와 아저씨, 대갓집 안방에서는 가족이 모여 윷놀이를 즐기고 새해 토정비결도 보았다.

강변이나 강나루 모래사장, 남산에 올라가서 정성들여 만든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하늘 높이 날리면 마치 내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액운을 쫓아낸다며 대보름날 밤에 정들었던 연을 불태울 때면 나는 항상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설날 기운이 무르익으면 마을의 액을 쫓고 행복과 건강, 수명장수를 부르는 매구굿을 쳤다. 이때는 부잣집, 가난한 집을 가리지 않고 모두 대문을 활짝 열고 무사태평을 기원했다. 지신밟기 때 집집마다 낸 쌀과 돈은 마을의 기반시설과 복지사업에 썼다. 꿩 대신 닭고기를 넣은 떡국․만둣국의 맛, 할머니․어머니의 솜씨가 담긴 식혜의 감미로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송화다식의 꿀맛, 생강엿의 시원함 속에 이웃 친지의 집을 돌며 세배를 하고 함께 즐기던 화목했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글/이종철(한성백제박물관건립추진단장)

#설 #풍습 #귀밝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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