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만날 수 없는 가족, 하지만……
발행일 2010.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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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과 걱정이 뒤섞였던 양씨와의 첫 만남
어떤 모습일까 매우 궁금했다. 복장은? 수염은 깎았을까? 머리는 감았을까? 얼굴에는 며칠간 씻지 않은 흔적이 있지 않을까? 혹시 잘못하다가는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가끔 역 주변이나 지하도에서 지나쳤던 노숙인들을 떠올리면서 첫 대면에 대한 호기심과 걱정이 반반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양씨의 근무처를 찾았다.
그를 발견하는 순간, 낡은 고정관념은 깨졌다. 다리 한 쪽이 불편해 보였지만, 옷은 빅이슈 판매원 복장의 조끼와 모자를 쓰고 굵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인터뷰하기 전에 몇 분 동안 주위에서 지켜 보았다. “안녕하세요!”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하철 입구 한쪽 모퉁이에서 잡지 판매에 노력하고 있었다. 드디어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양씨도 손을 내밀었다. 인터뷰에 대해 사전에 빅이슈코리아에 양해를 구한 터였으므로 알고 있는 듯했다. 잡지를 사고 잔돈을 거슬러 받았다.
그는 당당했다. 잡지를 계속 팔면서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현재 양씨와 같은 빅판은 22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빅이슈코리아에 직접 찾아 가서 면담을 하고 설명을 듣고 10가지 빅판 행동수칙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커밍아웃'을 한 노숙인이다.
◇ 다가오는 추석에 관한 양씨의 생각
“그거 제일 힘들어요. 자신 없어요. 추석 연휴에는 잡지 판매도 안할 것 같고 빅이슈에서 3일 연휴동안 ‘마석’인가 어디로 놀러 간다고 하던데 저같은 사람은 술에 대한 유혹이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쉼터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추석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힘들고 걱정이 앞선다는 양씨. 아버지가 82세이고 어머니는 76세.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과일 사드리고 어머니 용돈 3만원이라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노숙 생활)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금방 일어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양씨는 현재 자신이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두 분 부모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모른다고 하면서 “지금은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끝나면 꼭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잠시 글썽였다.
양씨의 노숙생활은 5년이 좀 넘는다. 모든 것이 술때문이다. 알콜은 6년간의 장사, 13년간의 건설현장 막노동에서 번 돈도 다 먹어치워 버렸다. 알콜중독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고, 이혼하고, 경제력이 없어지고, 노동력도 상실하여 결국 길거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슬하에 딸 셋이 있지만 헤어진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둘째와 셋째 쌍둥이 딸만 작년에 화해를 했다. 그 두 딸은 올해에 대학에 진학했다. 큰딸은 26살이지만 아직 화해는커녕 만나보지도 못했다. 술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이번 명절에 양씨는 다른 여느 때 추석과는 다른 각오를 갖고 있다. 명절 분위기에서 오는 술의 유혹을 끊어 버리겠다는 생각이다. 한번 음주를 하면 10일 이상 후유증을 겪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음주와 후유증이 되풀이되는 생활을 '빅판' 생활을 통해 끊어 버리고 싶은 것이다. 딸들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짧은 문자메시지나 보내는 처지에서 이번 추석에는 단념하는 눈치였다. 딸과 전화를 하면 그 상황이 술안주가 되어 알콜의 유혹을 받는다면서.
◇ '빅판'은 구걸이 아니라 판매 일(Working Not Begging), 희망이 생겼다
양씨는 ‘빅이슈코리아’에 입사한 지 8일째되는 임시 '빅판'(빅이슈 판매사원)이다. 27일이 지나면 정식 빅판이 된다.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안녕하세요, 라는 말도 겨우 했죠. 3일이 지나니 지나가던 한 분이 힘내라고 웃어 주셨죠. 이제 매일 힘내라고 웃어 주시는 분이 한두 분 계세요. 그분들의 말이 힘이 되고, 잡지가 1부씩 팔릴 때도 용기가 솟습니다”라며 그는 웃었다. 빅판을 시작하고 자전거도 구입했다. 몸이 성하지 않아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는 있지만, 쉼터에서 근무처까지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구입했다고 했다.
빅판 수입은 처음에는 10부를 무료로 받았고 8일째 오전 판매결과 100여 부를 팔고 있다며 주머니에서 매일 판매 부수와 저축액을 적은 작은 수첩을 꺼냈다. 100부의 판매액은 30만원이다. 순수입은 16만원이지만 판매 시에 잔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9만원은 통장에 있고 7만원은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 하루 10여 부를 팔고 있지만 잘 파는 빅판은 30여 부를 판매한다며 빨리 하루 20부를 넘어 30부까지 팔았으면 하는 의욕을 보였다. 쉼터에서 내부 자활로 버는 월 30여 만원과 합해서 월 60만~70만원의 수입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잡지를 구입하는 분들이 어떤 분이냐고 했더니, “상당수는 TV나 매스컴을 통해 보신 분들이죠. 읽어 보고 생각보다 허접하지 않고 내용이 좋다고 하십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웃기는 이야기인데, 라며 덧붙였다. “잡지 1부를 구매하고 1만원을 내시고 잔돈을 사양하고 가시는 분이 있어요. 저는 반드시 7,000원을 거슬러 드려요.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고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자립해서 (빅이슈코리아) 판매권을 양도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보다 힘든 다른 노숙인에게 이 자리를 빨리 양보하고 싶습니다.” 다른 노숙인에게 양씨는 조심스럽게 조언한다. “중독에서 벗어나라! 술, 도박, 경마, 경륜을 하다가 쉼터에 온 많은 노숙인들을 봅니다. 요새는 PC중독자도 있죠. 중독자에게 교육, 약물치료 등 도움의 기회나 상담을 피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무료로 해 주는 데가 꽤 있어요.” 쉼터나 복지사들과 빅이슈가 정신적으로 많은 동기를 준다고 하면서 희망을 주고자 하는 복지사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생각도 잊지 않았다. 빅판에 지원하면서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놀랍게도 성격도 달라지고 자신감과 자립심이 날로 커가고 있다.
◇ 함께 하는 한가위, 빅판 양씨의 꿈이 이루어지길
“겉으로는 옷도 깨끗이 입었지만 마음은 노숙인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임대주택이라도 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도움을 받지 않으니까요.” 양씨는 실제로 노숙인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날은 2천만~3천만원을 모아서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사는 날이라고 했다. 양씨는 △알콜을 끊는 것 △조그만 방을 얻는 것 △장사의 밑천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50세라고 보기에는 앳된 얼굴이다. 그는 덧니를 드러내 보이며 웃어 보였다. 자주 웃었다. 그리고 웃으면 행복하다고까지 했다.
며칠 남지 않은 추석 한가위. 빅이슈코리아의 빅판 양씨에게 올 추석에 온 가족들과의 완전한 상봉은 어렵더라도 희망의 불씨만은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몇 년 되지 않아 양씨가 바라는 바대로 더 어려운 다른 노숙인에게 양씨의 빅판 판매권을 양도했으면 한다. 그리고 헤어진 가족들과 만나는 꿈이 이루어져서 한가위를 웃으면서 행복하게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소식을 양씨로부터 듣고 싶다. 정말, 그런 추석이 좀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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