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기대보다 훨씬 끔찍할 수도 있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7.04. 00:00

수정일 2014.10.05. 19:39

조회 1,772

벽화(사진 wow서울)

진실이 문을 두드리면 우리는,
"가버려, 나는 진실을 찾고 있어!"라고 소리쳐서 쫓아낸다.

--로버트 퍼시그(Robert M. Pirsig) 《선을 찾는 늑대》 중에서

[서울톡톡]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문득 '진실'이 무언지 알 수 없어 아득해진다. 그래서 배운 대로, 하던 대로 국어사전부터 찾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된 명사 '진실(眞實)'의 뜻은 세 가지다. 첫째, 거짓이 없는 사실. 둘째,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셋째, 불교적 의미에서,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진리를 방편으로 베푸는 교의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하지만 뜻풀이를 읽어도 '진실'의 실체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언젠가 분명히 스쳐 지나거나 마주치기도 했으련만 돌이켜보면 그 민낯이 가물가물하다. 한때 찾아 구하겠노라고,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어지러이 헤매었음에도 정작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자칫하면 눈앞에서 보고도 알아보지 못할지 모른다. 심지어는 대문을 쾅쾅 두드리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는데도 불청객 취급하며 쫓아버릴 지 모른다.

진실이라는 손님을 맞을 때에도 마땅히 준비가 필요하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누가복음> 12장의 말씀. 그날, 그 순간, 그 진실의 시간을 위한 예수의 권고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종들처럼' 늘 깨어 있기를 채근한다. 진실이 찾아왔을 때 잠들어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지라도 눈을 부릅뜨고 허벅지를 찔러가며 깨어있어야 한다. 부지런하고, 귀가 밝고,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

그런데 진실을 찾고 진실을 기다리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로버트 퍼시그의 지적이 무섭고 뼈아픈 까닭은, 어쩌면 진실은 우리가 원하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진실은 아름답고 맑고 우아하리라 짐작하지만, 실상 기대보다 훨씬 추악할 수 있다. 바라던 것과 전혀 다르게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턱없이 불친절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잔혹할 수도 있으며, 딸 춘향이와 혼인한 사또 아들이 금의환향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월매 앞에 거지꼴을 한 채 나타난 이몽룡처럼 기가 막히게 누추할 수도 있다. 과연 그때 그를 내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겉모습에 속아 이몽룡이 쫄딱 망해버린 줄만 알고 홀대하며 타박한 월매보다 낫거나 다르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개의 경우, 잔인하게도, 거짓이 더 아름답고 거짓말이 더 달콤하다. 평소에 강직하고 소박하다고 알려진 사람조차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아첨꾼의 감언이설에 헤벌쭉한 걸 보면 거짓인 걸 몰라서가 아니라 거짓인 걸 알면서도 속는 게다.

아무리 병을 고친대도 당장에 입에 쓴 약은 물리치고만 싶은 어리석음 탓이다. 그렇게 진실은 문전박대 당하고 쫓겨난다. 세상에 진실이 없는 건 결국 우리가 진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도 쉴 곳이 없기에 진실은 점차로 소멸해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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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진실 #로버트퍼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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