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기사가 저를 보다가 사고난 적도 있죠

admin

발행일 2010.05.03. 00:00

수정일 2010.05.03. 00:00

조회 4,808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27년간 택시와 버스 운전으로 시민의 발 역할을 충실히 해온 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을 받게 된 이가 있다. 바로 여성 버스기사 최춘하(55) 씨다. 비록, 예정됐던 시상식은 천안함 사태로 미뤄졌지만, 수상자로 선정되기까지 한 가정의 주부로서 버스기사로서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겪게 된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료 운전기사들 중에는 저보다 더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미숙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황송하다는 생각입니다.” 최씨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하고, 27년 전에 어쩔 수 없이 운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려줬다.

“친정어머니가 9살 때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님께서는 연로하시고,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어린 동생들은 학교에 보내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최씨는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24살 되던 해에 운전면허증을 따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저에게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분들은 생활력이 약해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오빠가 결혼을 하고, 생활력 강한 올케가 집에 들어오면서 최씨는 가장으로서의 짐을 덜게 되었다.

“84년도에 큰맘 먹고 개인택시를 구입했어요.” 택시운전 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개인택시 한 대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시절이라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덜컥 둘째아이의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출산과 육아를 위해 개인택시의 꿈은 그만 접어야 했다. “듬직한 둘째아들을 얻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개인택시를 포기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최씨는 당장에는 손해가 되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자가용을 갖는 시대가 되면서 택시 승객이 줄기 시작했어요.” 택시로는 생활이 안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대형면허를 따러 갔다. 시험에 2번 떨어지고, 3번째 합격하여 버스 운전을 시작한 것이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여자 버스기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여자가 버스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던 그 시절. 가끔은 운행 중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있었다. “한번은 옆에 지나가던 승용차의 운전자가 저를 쳐다보다가 앞차를 꽝 받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리 죄송했는지 몰라요."

인터뷰하려고 마주 앉은 카페의 창문 너머로 봄꽃을 바라보는 최씨의 얼굴은 고생한 흔적을 찾을 수 없이 깔끔했다. 기자는 예쁜 버스기사라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혹시 귀찮게 하는 손님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미소부터 지었다. “대중교통이니까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몆 년 전의 일이다. 운행중에 중년의 남자분이 “언제 시간 되면 커피 한 잔 합시다”라고 해서 “저는 가정주부고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다. 그 승객은 계속 한 번만 만나자고 치근대는 통에 힘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손님들이 “운행 중인 우리 기사님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야단을 쳐줘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다.

버스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한다. “손님들이 일어버린 물건을 찾아드린 적도 많습니다.” 휴대전화, 서류봉투, 지갑 등을 찾아준 경우는 횟수를 기억 못할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 잊을 수 없었던 일화도 있다. “150만원의 현금이 든 가방을 찾아드린 적이 있어요.” 손님은 20대 젊은 여성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전세자금이었다고 한다. 전세자금을 잃어버린 여성은 연락을 받고 혼비백산하여 회사로 찾아와 돈가방을 찾아갔다. “사례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는 못했어요. 물론 사례를 한다고 해도 받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그 분은 급한 불을 껐으니까 고맙다는 전화하기가 쉽지 않겠죠(웃음)."

최춘하 씨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최씨가 근무하는 메트로버스는 5대의 굴절버스가 있는 회사다. 굴절버스를 운전할 욕심에 추레라 면허증도 땄다. “추레라 면허를 따기 위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김포매립지에 추레라학원이 있었는데, 집이 있는 송파에서 김포매립지까지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론 버스운행을 멈추지 않고서 말이다. 마침 면허증을 땄을 당시 동대문이 지하철공사로 노면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굴절버스 운행은 조금 후로 미뤄졌었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굴절버스도 꼭 할 생각입니다. 제가 참, 욕심이 많죠?”

“저는 이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해요. 버스운전을 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드려요. 교회는 안다니지만, 제 직업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체력이 주어지고, 건강만 허락된다면 정년을 지나서 촉탁까지도 하고 싶다. 최씨는 대통령상을 받게 된 데 대해 “손님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30여 년 운전하게 된 데는 손님들이 있어서라고. 그 다음으로 사장님과 지부장님 및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손님을 배려하는, 친절하고 안전한 버스기사가 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민기자/정연창
inkyo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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