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월드컵에 열광할까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6.24. 00:00
[서울톡톡] 축구는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렇게 큰 인기가 없다. 이 땅에선 야구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런 한국이지만 월드컵 때만 되면 국민적인 열광이 발생한다. 야구국제대회인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보다 훨씬 뜨거운 열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축구와 야구는 19세기 중반 경에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성립했다. 그런데 이때는 미국이 아닌 영국이 세계 패권국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야구보다는 영국의 축구가 전파되기 쉬웠다. 당시 영국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무역에 종사했다. 마치 중세 시기 베네치아 배들이 지중해 전역을 누빈 것처럼, 영국도 무역으로 먹고 사는 작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대전 이전까지 고립주의를 채택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기업중심으로 발전한 미국 특유의 문화도 야구 전파가 늦어지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야구 관계자들은 철저한 기업논리에 입각해, 리그를 일종의 독점기업처럼 발전시키는 데에 골몰했다. 20세기 초까지 메이저리그를 배타적이고 안정적인 기득권 구조로 만드느라, 외부에 야구를 전파할 여유가 없었다. 야구 전파는 당장 이윤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선 매력적인 일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는 미국 시장이 완전히 포화상태에 달한 20세기 말 경에 이르러서나 해외진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노모 히데오나 박찬호 같은 선수들이 미국으로 차출된다. 외국 선수를 끌어들여 그 선수의 나라를 메이저리그 시장으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뒤이어 메이저리그는 WBC까지 만들어 세계에 야구붐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축구가 지구촌을 평정한 후였다.
축구는 미국과 같은 기업논리가 아닌 클럽중심으로 발전했다. 메이저리그는 몇몇 팀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팀이 가세할 여지가 없는 반면, 축구리그는 어느 지역 어느 클럽이라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워낙 많은 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성적에 의해 자동적으로 리그 참여가 결정되는 승강제도가 발달했다. 야구를 통해 당장의 이윤을 뽑아내려 한 미국과는 달리 영국은 축구를 통해 타국과 교류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영국의 축구클럽들도 해외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축구가 야구보다 더 빨리 세계화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영국처럼 야구 보급에 적극적이었더라도 결국 축구가 승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도구가 많이 필요한 야구에 비해 축구는 지극히 간단하고 준비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축구의 경우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그 공조차 없어도 경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1차 대전 당시 최전선의 병사들이 공 대용품을 만들어 축구를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간단하기 때문에 축구는 아주 손쉽게 전파된다. 우리에게도 19세기 후반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배의 선원들이 축구를 가르쳐줬다.
당시 상투 튼 조선백성들이 쉽게 축구를 익혔다고 한다. 또, 몸으로 부딪히며 집단으로 대결하는 축구는 원시시대 부족 전쟁의 대리물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축구는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후진국도 얼마든지 선진국을 이길 수 있다. 이래서 전 세계가 축구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일본, 대만, 쿠바 등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몇몇 나라에선 야구가 뿌리를 내렸다. 일단 야구의 아기자기한 재미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축구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보통 다른 나라에선 지역감정이 축구와 결합하지만 한국에선 야구가 그 역할을 대신 맡았다.
그래서 한국에선 축구보다 야구가 더 뜨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이것이 세계인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겐 변방콤플렉스와 국위선양열망이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주목받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끓어오른다. 바로 그런 이유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제전인 월드컵이 다가올 때마다 한국인은 붉은악마로 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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