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축구, 방송은 좀 냉정하게~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6.17. 00:00
[서울톡톡] 브라질 월드컵 일본 대 코트디부아르 전에서 KBS 이영표 해설위원의 해설이 화제가 됐다. 코트디부아르의 슛이 골문을 벗어나자 "아, 아쉽다"라고 하는가 하면, 코트디부아르가 득점하자 "피로가 싹 풀린다"라고 좋아하며 편파방송을 했는데 여기에 네티즌의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그는 또 "머리로는 일본이 승리할 것 같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염원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방송 3사 월드컵 중계 경쟁에서 KBS는 가장 뒤쳐졌었다. 하지만 이 편파해설이 찬사를 받으며 뒤늦게 KBS 중계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다른 방송국도 시청자의 이목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편파방송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사태다.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아무리 안 좋더라도 국제 스포츠경기에서 노골적으로 비방해선 안 된다. 일본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그렇다. 자국과의 경기에서 방송사가 자국팀을 응원하는 건 인지상정으로 용인될 수 있지만, 제3국끼리 경기를 하는데 방송사가 대놓고 한쪽 편을 드는 것은 방송의 도의를 저버린 행위다.
축구는 종목 자체의 특성이 원래부터 국가간, 지역간 증오와 결합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축구가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가장 사랑받는 종목이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집단적으로 몸싸움을 해가며 경쟁하는 것이 원시시대 적대 부족 간의 전쟁과 흡사하기 때문에, 축구는 일종의 대리전쟁으로 사랑받아왔다.
바로 그래서 축구는 폭력과 관계가 깊다. 많은 운동경기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곤 하지만 축구는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다. 과거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축구경기로 인해 실제 전쟁이 터진 적도 있었을 정도다. 국제적으로 축구는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장이기도 하고, 지역감정이 표출되는 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축구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일제강점기 시절에 축구는 서북지역과 기호지역 사이의 지역대결이 펼쳐지는 장이었고, 스페인에선 바르셀로나와 중앙정부 사이의 대결이 축구열기로 터져 나온다. 그런 대결의식의 과열 때문에 유럽은 축구로 인한 폭력사태로 골머리를 앓았다.
축구가 이렇게 뜨거운 종목이기 때문에 방송은 특히 더 냉정한 중계를 해야 한다. 타국에 대한 공격성, 증오를 선동하는 내용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건 증오상업주의다. 인터넷 방송에서 그런 식의 중계를 해도 비판 받을 텐데, 하물며 지상파 방송사가 그러는 건 말이 안 된다.
놀라운 건 언론이 편파중계에 대해 이런 문제제기를 거의 안 한다는 점이다. 일본 대 코트디부아르 경기 이후 이영표 해설위원이 찬사를 받자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했는데, 대체로 '재미있는 화제' 정도로만 사건을 다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언론은 그 전부터 국민의 반일정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에 열을 올려왔기 때문에, 이번 이영표 해설에도 별다른 문제점을 못 느꼈을 것이다.
과거 WBC 야구대회 한일전에서 이승엽이 홈런을 치자, 아무 근거도 없이 일본에서 보복을 준비한다는 식의 기사가 나온 적도 있다. 그렇게 한국 네티즌의 반일정서를 자극해 기사클릭을 유도하는 것이다.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 네티즌의 혐한 발언을 자극적으로 짜깁기해 기사화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증오상업주의는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기 때문에 상업언론은 언제나 증오 선동의 유혹을 받는다. 최근 일본에서 혐한 선동 서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증오상업주의 때문이다. 이렇게 미디어가 증오상업주의에 빠지면 한일양국에서 극단적인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결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상파 방송은 그런 사태를 막을 책임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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