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분` 말고 `나`에 대한 질문을 던져라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6.13. 00:00
한국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 한때, 그와 비슷한 질문을 격렬하게 던지지만, 그것은 나가 아니라 '나의 신분'에 관한 질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면, 곧 나의 신분이 높아지거나 결정되면,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은 잊어버리고 만다. --전인권 《남자의 탄생》 중에서 |
[서울톡톡] 어쩌면 사람의 한 살이는 결국 '나'를 알기 위한 여정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순간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되고, 그런 '나'를 다스리는 방책을 고민하다가 삶이 끝난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남'과 다른 나만의 개성, 꿈, 가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아야만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세상의 폭풍우 속에서 난파당하지 않고 끝끝내 나만의 조각배를 저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하지만 정치학자 전인권이 말하는 한국인들의 '나'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숨은 그림과 같다.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은 오롯한 '나'를 찾기 이전에 집단과 신분 속의 내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딸, 아들, 어머니, 아버지, 여자, 남자, 학생, 회사원, 공무원, 교사......등과 같은 '사회적 역할'에 더 충실한 삶을 살면서 그것이 '실제의 자신'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나 입사 지원 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자기 소개서'를 쓸 때 많은 이들이 당황하거나 막막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기 소개서의 제1문항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문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이러한 환경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술하시오"이다. 그 글머리를 "무슨 직업을 가진 아버지와 어떤 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몇 남 몇 녀 중의 몇 째......."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단점으로 지적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개성이 싹틀 수 있고(싹틀 수밖에 없고), 주위를 둘러싼 배경을 떠나 색다른 꿈을 꿀 수 있다. 사람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기에 모두가 다르고, 다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알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신분'의 당위에 억매이게 된다. 딸은 싹싹해야 하고 아들은 든든해야 한다. 어머니는 희생적이어야 하고 아버지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마땅하다. 여자는 어때야 하고 남자는 어때야 하고, 학생의 본분은 무엇이고 회사원은, 공무원은, 교사는 이러저러해야만 한다는....... 그 단단하고 당당한 편견이 우리의 삶을 꽁꽁 옭아버린다. 그리하여 감옥에 갇힌 채 갇힌 줄도 모르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 원해야 하는 것만을 알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해야 하는 일에 사로잡혀.
'나는 누구인가?'는 자아가 싹트는 청소년기에 가장 격렬하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해답을 찾기는커녕 제대로 질문을 던진 적도 없다면 언제고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나의 진짜 모습을, 세상에 의해 규정된 이름이 아닌 내가 바라는 이름을. 그것이야말로 끝끝내 잊지 말아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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