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인간`이 아닌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6.05. 00:00

수정일 2014.10.05. 19:49

조회 1,724

도서관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에릭 호퍼(Eric Hoffer)

[서울톡톡] '길 위의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철학자 에릭 호퍼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에서 수학한 엘리트가 아니다. 열여덟 살에 부모를 잃은 그는 무일푼으로 미국 전역을 떠돌며 접시닦이, 도붓장사, 사금 채취공 등등의 막일꾼으로 살았고, 40대에서 60대까지 23년 동안 부두노동자로 일했다. 그럼에도 그가 빛나는 통찰을 지니고 진정성 있는 삶을 탐구하는 철학자가 된 것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들 덕분이었다.

평생 떠돌아다녔고, 평생 공부했다. 그래서 '교육'을 말하는 에릭 호퍼의 목소리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남다른 울림이 있다. 그의 아포리즘이야말로 "머리를 아래로 하고 엉덩이를 위로 한 사유 자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극단적인 굶주림 속에서 뜻밖의 자유를 느낀다. 오렌지 행상을 하다가 스스럼없이 거짓말까지 하며 '너무 잘 파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장사가 타락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 자살을 계획하지만 곧 실행을 포기하고, '인간에게는 희망보다 용기가 필요하다'는 값진 교훈을 얻는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의 스승이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것을 배운다. 한 번도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에게 세상은 커다란 학교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 빠져 있다. 어느 때보다 '공부'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넘쳐나지만, 정작 '배움'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퇴화된 상태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뭇 참담한 지경이다.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중 한 반 학생 가운데 5분의 1은 자고, 5분의 1은 멍 때리고, 5분의 1은 딴 짓을 하고, 5분의 1은 정체가 불분명한 행동을 한단다.

그러니 수업 중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나머지 5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정말 공부가 '즐거워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 내일을 위해 이를 악물고 현재를 희생하며 공부를 '견디고'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더 깊고 넓은 삶의 공부를 하는데 길잡이가 될 학교에서 공부에 '학을 떼고' 나오지는 않는가?

그럼에도 '배운 인간'들은 끊임없이 배출된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무려 80퍼센트가 넘고 학력 인플레도 날로 심화된다. 하지만 학교는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심어주기는커녕 공부에 대한 일말의 즐거움까지 깡그리 앗아가기 십상이다.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은 필수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한다. 공부는 언제나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반면 '배운 인간'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더 이상 배우기를 거부할 만큼 오만하다. 그래서 '시험 잘 보는 바보'들이 사회를 이끌어가겠노라고 나부댄다.

정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다. 삶의 공부에는 나이도 지위도 없다. 모두가 공부해야 서로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원해서 하는 공부는 정말 재미있다. 재미있어야 진짜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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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김별아 #배움 #에릭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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