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과 김재웅에 대한 전혀 다른 반응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5.27. 00:00

수정일 2014.05.27. 00:00

조회 1,377

김재웅이 출연 중인 [셰어하우스]의 한 장면

[서울톡톡] 최근 케이블 채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셰어하우스>에 출연 중인 디자이너 김재웅이 프로그램 속에서 커밍아웃했다. 커밍아웃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별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저 연예면 화제 기사 정도로 잠깐 오르내렸을 뿐.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14년 전인 2000년에 방송인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는 우리 사회가 마치 불에라도 덴 듯 뜨겁게 반응했었다. 연예면 화제는 물론이고 사회이슈까지 됐다. 그 일이 있는 후 홍석천은 모든 방송에서 일제히 하차했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해 사실상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그는 거대한 사회의 벽에 가로막혀 당시 커밍아웃을 후회했었다고 한다. 반면에 김재웅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지도 않았고, 외면 받지도 않았다. 과거 홍석천은 지인들로부터도 냉대 당했지만, 김재웅의 동료들은 그를 응원했다. 불과 14년 만에 한국이 전혀 다른 사회가 된 것이다.

이번에 <셰어하우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보여준 태도도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과거 홍석천은 커밍아웃 전에도 촬영 중에 동성애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편집에서 완전히 잘려나가 전혀 방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작진들이 동성애를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절대 금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에 이번 <셰어하우스> 제작진은 김재웅의 커밍아웃을 그냥 내보냈다. 편집은커녕 오히려 그 소재의 자극성을 프로그램 홍보에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젠 금기가 아닌 그저 자극적인 방송 소재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또, 동료들이 촬영 중에 김재웅의 성적 취향을 추궁한 결과 커밍아웃이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실상의 '아웃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동성애를 절대 금기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커밍아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공개하는 것임에 반해 아웃팅은 다른 사람이 터뜨리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중대한 폭력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아웃팅은 인격살인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렇게 살벌한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타인의 취향에 대한 사생활 토크 정도로 성적 취향도 얘기할 수가 있게 된다. 바로 <셰어하우스>의 출연자들은 그런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김재웅의 성적 취향을 카메라 앞에서 거론했다. 그 일로 인해 김재웅이 매장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토크였고, 이런 출연자들의 태도도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의 동성애 수용 증가율이 세계 1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아직까지 동성애 수용율의 절대적 수치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변하는 속도만큼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인 것이다. 올해 초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한국이 동성애를 보는 시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바로 이런 변화가 홍석천과 김재웅의 커밍아웃에 왜 한국사회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는지를 설명해준다.

서구에서 동성애 문제가 지식사회의 중요 이슈가 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한국은 1990년대에 그런 흐름이 들어와 현대철학이나 문화이론을 공부한 지식인부터 과거와는 달라진 시각을 갖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엔 대중문화계 전반에 빠르게 변화의 흐름이 퍼져갔다. 사회변화를 기민하게 반영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동성애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더니, 최근엔 김조광수 감독이 본인의 동성애 커플 결혼을 사회운동화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바라보는 매체의 시각도 비교적 우호적이다.

이제 성적 취향의 자유, 소수자의 인권 보호 등은 선진 산업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그런 국제적 흐름에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런 변화에 편승해 자극적인 동성애 소재를 내세워 시청률을 올리려는 행태는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

#셰어하우스 #김재웅 #홍석천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