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3.14. 00:00

수정일 2014.10.05. 20:16

조회 1,855

포옹

세상은 이해할 수 없지만 포옹할 수는 있다.
그 존재들 중 한 사람의 포옹을 통해서.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서울톡톡] 자연은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물건은 사람에게 욕망의 갈등을 준다. 하지만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자연도 물건도 아닌, 사람뿐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이 있다.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거나 행동이 흉악하고 음탕한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오로지 삶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은 '이성'을 가졌다는 인간보다 덜 교활하며, '감성'을 가졌다는 인간보다 더 천진하다. 그들은 결코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되어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예측하지 못했던 상처를 입고 그렇게 부르짖는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도리질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애당초 '사람'에 대한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된 오해일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니까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짐승보다 집요하고 치밀하고 잔혹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비정한 현실을 깨닫는 일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신비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또한 사람에게서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포옹'이라고 부른다. '나와 그것'의 대립이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꾸었던 부버의 사상은 이른바 '대화 철학'이다. 부버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에 아랍-유대 공동 국가를 세우는 운동을 활발히 벌이는 등 아랍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

기실 사랑보다는 증오가 빠르다. 이해보다는 오해가 쉽다. 용서보다는 복수가 명징하다. 내가 받은 상처를 네게 돌려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오늘도 세상을 황폐한 전쟁터로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어리석어진다. 나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다. '말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와 밀접하게 관련 된다'는 부버의 또 다른 지적처럼, 소통이 아니라 설복을 강요하는 말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 어쩌면 나 자신마저도.

포옹은 따뜻하다. 누군가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두 팔을 크게 벌려야 한다. 그것은 방어의 자세를 허물고 나의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행동이다. 누군가 나를 노리는 자가 있었다면 그때가 공격의 적기가 되리라. 하지만 그런 위험까지도 감수한다면, 반드시 무언가를 껴안게 된다.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린 또 다른 사람이 있다. 팔과 팔이 엉기고 가슴과 가슴이 닿으면, 따뜻하다. 숨결과 피돌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포옹한 채로 나누는 말이 세차고 사나운 논쟁이거나 날카로운 비난일 리 없다.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때로는 침묵할지라도 어색할 리 없다. 한 사람을 깊이 포옹하면서 세상을 뜨겁게 껴안은 것이니까. 그제야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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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포옹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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