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까지 초래한 리얼리티의 구조적 문제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3.11. 00:00

수정일 2014.03.11. 00:00

조회 2,674

짝(사진 뉴시스)

[서울톡톡] SBS 연애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짝>의 출연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접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프로그램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고, 결국 방송사는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다.

<짝>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일으켜왔다. 출연자들이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 불리면서 인격이 사라지고 외적인 조건으로만 판정되는 냉혹한 구조라는 비판이 있었고, '여자는 외모 남자는 스펙'이라는 식의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 출연자는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강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편집으로 출연자들의 성격을 왜곡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 제작과정을 거쳐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이번엔 시청자들이 사생활 추적과 악플로 고통을 줬다. 일반인들이 많이 출연하다보니 출연자를 정확히 검증하지 못해 경력을 속인다든지, 사업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등 진정성에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출연자 자살 사건까지 터지자 비난 여론이 폭발한 것이다.

'이것이 방영되면 한국에선 살기 힘들고...'

이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인은 프로그램 제작 당시 친구에게 메시지로 '신경 많이 썼더니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다'며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제작진이 자신을 불쌍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 같다며, 이것이 방영되면 한국에선 살기 힘들고 외국 유학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는 호소도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과 자살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고인이 촬영 중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짝>은 출연자들을 6박7일 간 한 곳에 모아놓고 하루 종일 촬영하는 제작방식이어서,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 입장에선 극한의 스트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카메라에 익숙한 연예인조차도 6박7일간 카메라의 감시를 받으면 엄청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스트레스가 개인의 내부적 취약성이라든가 어떤 특정한 계기와 맞물렸을 때, 정신적 트라우마 혹은 극단적 선택이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고인은 신상털기에 대한 걱정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이 방영되면 네티즌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추적해 공격할 것이란 걱정이었다. 사생활 추적과 악플 공격은 연예인들에게도 상당한 공포여서, 이로 인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이 발생할 정도이니 일반인 입장에선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사안이어서 거센 비난이 일어났고 결국 프로그램 폐지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짝>이 폐지된 지금, 문제는 사라진 것일까?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짝>은 최근 불고 있는 리얼리티 열풍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짝>이 폐지됐어도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계속 방영되고 있고, 카메라에 취약한 일반인들의 방송 출연도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위험도 계속 이어진다.

해외에서도 리얼리티 출연자 자살 잇따라

해외에서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일반인 출연자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과 공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대중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를 인간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인식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제작진은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란 기법으로 출연자들을 캐릭터화한다. '나쁜 사람', '불쌍한 사람', 이런 식으로 출연자를 표현해 시청자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른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악플 파문이 나타났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실제성과 자극성으로 인기를 얻는다. 실제성을 위해서 일반인이 나오고, 자극성을 위해서 극단적인 서바이벌 경쟁구조나 악마의 편집이 동원된다. 그 결과는 시청율과 대중의 관심, 그리고 소모품으로 동원된 일반인 출연자의 스트레스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엔 이런 위험이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짝> 파문을 계기로 리얼리티 열풍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일반인 출연자가 캐릭터 소모품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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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리얼리티 #출연자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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