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의 위력적인 해결사, 바로 시간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3.11.29. 00:00

수정일 2015.11.17. 20:26

조회 2,668

갈대 사진(사진:뉴시스)

서울시 홍보대사이기도 한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보물처럼 간직한 책 속 구절이나 격언에 자신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녹여 쓴 에세이로 매주 월요일 시민과 만난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 느낌을 차곡 차곡 쌓으면 살면서 긁히거나 다쳤던 상처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같다.

삶이란 치과의사 앞에 앉아있을 때와 같다.
당신은 언제나 가장 심한 통증이 곧 이어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통증은 이미 끝나 있을 것이다.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서울톡톡] 《서경》에 실려 있는 인간의 다섯 가지 복(五福)은 장수, 부(富), 건강, 덕을 좋아하는 삶(攸好德),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考終命)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덕을 쌓는 일보다 신분이 높아짐을, 아름답게 죽기 전에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오복의 내용을 슬쩍 바꾸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속담에서처럼 건강한 치아가 오복에 끼지 못함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튼튼한 이는 때에 따라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먹은 것을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잘 씹어야 한다. 흔히 치아가 좋지 못하면 위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신장과 요로의 결석으로 인한 통증, 대상포진 통증과 더불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손꼽히는 치통은 또 어떤가!

타고나길 박복하여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치과 치료를 섭렵한 나로서는 건치가 축복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욱신욱신 쑤시고 찌릿찌릿 저려 꿍꿍 앓다가 마지못해 치과의 문을 두드릴 때의 심정은 조금 과장해 지옥문을 밀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병원에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치과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들은 언제나 상냥하지만, 그 고문기계 같은 의자에 눕는 순간부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덜덜 떨게 마련이다.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턱이 빠져라 크게 입을 벌리고 내 썩은 곳을 향해 육박해올 연장(?!)을 기다린다. 아, 얼마나 끔찍하게 아플 것인가?

독일 통일을 주도하며 '철혈 수상'으로 불렸던 비스마르크도 행적에 대한 찬반의 평가를 떠나 삶의 '통증'을 앓았던 인간이었나 보다. 맹견 불 마스티프를 닮은 근엄한 얼굴과 달리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상적인 성격이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냉혹한 정치판 한가운데서 그도 어쩔 수 없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을지 모른다. 기실 공포는 예고된 무언가가 벌어지기 직전에 극대화된다. 전쟁 중일 때보다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 파산하여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보다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일 때, 인간은 더욱 큰 공포를 느낀다. 언젠가 이보다 심한 통증이 물밀어 삶이 난파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녕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마 즐길 수는 없을지라도, 묵묵히 참으며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그것을 견뎌내는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이다.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삶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만사의 위력적인 해결사인 시간이 우리의 등을 은근슬쩍 떠민다. 곧이어 이어질 가장 심한 통증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견뎌내지 못할 지금의 통증은 없다. 썩은 부위를 긁어내고 때우지 않으면 환부는 점점 커져 뼈를 파고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치과는 언제나 빨리 가는 것이 돈 벌고, 덜 아프고, 그나마 간신히 남은 복의 끄트러기나마 지키는 길이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

#김별아 #시간 #격언 #고통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