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반지하 단칸방 서식지에 사는 모든 이여!
박원순(서울시장)
발행일 2013.08.23. 00:00
'서로(書路)함께'는 '책 속에서 함께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지난해 시작한 서울시 내부 독서프로그램 이름이다. 이제는 시민과 함께 읽고, 함께 찾아보기 위해 '책 읽어주는 시장' 원순씨가 2주에 한 번씩 여러분을 만난다. 그 네 번째 이야기는 반지하 단칸방에 살아가는 청춘들의 웃기고 눈물 나는 생활을 그린 <습지생태보고서>이다. |
[서울톡톡] 이것은 아마도 작가 최규석 자신의 자전적 체험만화이리라. 그는 대학시절, 또는 청년만화가로서 실제 궁상을 떨지 않을 수 없는, 거친 경험으로 가득한 청춘을 보냈으리라.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경험인 듯한 이야기를 네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묘사를 통해 젊은 청춘들이 겪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 삶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습지'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이 만화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다. 바로 반지하 단칸방인 것이다. 반지하이니까 당연히 눅눅하고 습할 수밖에 없다. 짜증나고 우울한 나날이 연속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4명이 단칸방 하나에 살고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 일상이 모두 사건이 되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이 연속되는 삶의 '생태'가 되는 것이다.
밤새 꺼지지 않는 형광등. 방 안 가득 자욱한 담배연기. 때에 절은 이불. 빈틈없이 들어찬 짐들…. 누군가는 비참이라 말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다. 세상의 번잡함과 호화로움에 눈 돌리지 않는 친구들과 나를 이 땅에 서게 해주는 소중한 꿈이 있으니 혹 내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슬퍼할 일은… 없을… 잘 데가 없다.
-안분지족(安分知足), p.79-
이 한 단락의 만화에서 이 '습지생태보고서'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습지의 생태가 눈에 그대로 보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견디지 못할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토로하는 주인공.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는 주인공. 그런데 잘 데가 없다. 비참한 현실이 아무리 노력해도 도망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느 지역의 커피 가격이 5만 원을 상회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 있어 5만 원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병원비까지 아껴가며 보내주신 용돈의 일부이며, 꼬박 하루를 노가다 판에서 굴러야만 만질 수 있는 액수이다. 그럼에도 쪼잔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전국의 가난한 자취생들에 대한 모독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망을 짓밟는 범죄 행위나 다름없으며,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건실한 삶의 자세를 호도하는 비양심적이고 비열한 화법이라 볼 수 있고(중략)
-천하무적, p.51-
의인화된 주인공 중의 한 명(한 마리의 사슴)인 녹용이가 '쪼잔하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주인공 최군이 항변하는 내용이다. '쪼잔'할 수밖에 없는 생활인데 '쪼잔'하다는 것에 대해 이토록 열변을 토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청춘들이니 참고 견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그것은 청춘의 한 시기이니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 역시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재수생으로서 1년 여를 독서실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견뎠으니 여러분도 견뎌라'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다. 물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간 청년 명예 부시장으로부터, 또 많은 젊은이들에게서 꿈꾸기 불가능한, 견디기 어려운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줄지 않는 부채와 학자금 등을 이유로 청춘 대부분을 저당 잡힌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인생의 한 고비라고 치부해 버리고 눈을 돌릴 수 있는가.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이른바 준 주거-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온전한 주거의 수준에 미달하는 주거형태-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만 40여 만 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환경은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살지 못하고 수도권이나 지방 도시로 떠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떠나는 도시에는 미래가 없다. 서울의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의 '습지' 탈출을 돕는 '양지'바른 주거전략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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