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여성이 빠진 이유

하재근(문화평론가)

Visit2,180 Date2013.08.06 00:00







별 생각 없이 TV를 보고, 노래를 듣는 것 같지만, 그럴싸한 해석을 달아 놓고 보면 대중문화 속에서는 사회의 현주소가 보이고 사람들의 인식이 보고, 심리가 보인다. 별 생각 없이 접하는 것 같은 대중문화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별 별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걸 콕콕 짚어내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의 ‘컬쳐 톡’이 매주 수요일, 여러분을 찾는다.


[서울톡톡] 최근에 남성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며 여성부를 공격했던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가 사고사해서 크게 화제가 됐다. 남성연대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아왔고, 지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고 성재기 대표는 일종의 ‘열사’같은 위상이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가 강했던 문화권이었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남성연대 같은 단체가 나타나서 대중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을까?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개그콘서트>에서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코너가 크게 인기를 끌었었다. 왜 데이트할 때 비용을 남자가 부담해야 하는가, 왜 남자만 비싼 선물을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었는데 남녀 시청자 모두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남성연대의 인기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그때 직장인들은 정리해고를 당했고,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가 되면 20대 태반이 백수, 일을 해도 비정규직, 결국 월수입 88만 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탄이 한국사회를 뒤덮는다.


2000년이 되기 직전에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판다는 외국계 유명 커피전문점이 여대 앞에 문을 열면서 된장녀 신드롬이 생겨난다. 2000년대가 되면 스파게티 전문점이 유행하고(나중엔 파스타로 이름이 바뀐다), ‘개나소나’ 명품백 하나씩은 가지고 다닌다는 명품 대환란이 일어난다. 또, 각종 이벤트 열풍이 불면서 데이트할 때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졌다.


남성들이 88만 원 세대라는 수렁에 빠져가는 시기와 된장녀 신드롬이 동시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남성들이 여성에게 한을 품기 시작했다. 파스타를 사줘야 되고, 명품백을 선물해줘야 되고, 이벤트를 열어줘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원망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 한국사회는 계속 발전했다. 발전이라 함은 여성인권의 향상을 뜻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부장주의가 강한 문화권중의 하나로서 오랫동안 여성이 억압당했었는데, 2000년대쯤 되면 한국이 근대 민주공화국으로 성숙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의 힘이 강해졌다. 경제활동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진출도 대단히 활발해진다. 바로 이것도 문제였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경제적 무력감에 절망한 남성들에게 여성 권익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정부기관, 사회단체, 정론언론에 대한 분노가 생겨났다. 남성들도 제대로 못 살 처지인데 왜 여성들만 챙기냐는 원망이다. 그런 분노를 등에 업고 생겨난 것이 바로 남성연대나 ‘일베’ 같은 ‘여성혐오’ 사이트다.


대중문화도 이런 흐름에 한몫했다.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여성캐릭터가 더 얄밉고, 이기적이고, ‘좁쌀만한 속알딱지’로 그려진다. 2000년대에 막장드라마가 대유행했는데, 막장드라마에서 독기를 내뿜는 건 언제나 악녀였다. 아들이 며느릿감을 데려오면 언제나 어머니가 물을 끼얹거나 뺨을 때린다. 국민드라마 수준으로 인기를 얻은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를 보면, 등장하는 주요 남성 캐릭터가 모두 인간적인데 반해 여성 캐릭터는 모두 악다구니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내 딸 서영이>에서도 아버지들이 어머니들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나왔다.


이런 대중문화의 여성표현이 영향을 미치고, 현실 속에서 여성에게 한을 품은 남성들의 정서가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바로 주말 예능의 남성 독점 현상이다.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1박2일>, <정글의 법칙>, <런닝맨>, <맨발의 청춘> 등 모든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거의 무의미한 존재다. 요즘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미, 정, 우애 같은 덕목인데 시청자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그런 것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남성들이 캐스팅되는 것이고, 남성들이 그런 덕목을 TV 속에서 자꾸 보여주니까 시청자가 점점 더 남성을 인간적으로 선호하게 되는 순환구조다. 한국에서 신 여성차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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