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부순 에트르를 보며 `제돌이`를 떠올리다

박원순(서울시장)

발행일 2013.07.26. 00:00

수정일 2013.07.26. 00:00

조회 1,392

'서로(書路)함께'는 '책 속에서 함께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지난해 시작한 서울시 내부 독서프로그램 이름이다. 이제는 시민과 함께 읽고, 함께 찾아보기 위해 '책 읽어주는 시장' 원순씨가 2주에 한 번씩 여러분을 만난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우화 <꿈꾸는 황소>이다.

[서울톡톡] 사람이 가장 잔인한 동물이야. 해가 지는 곳에 있는 자작나무 건물에서 내가 직접 봤어. 사람들은 너희 가죽을 모두 벗겨내 버릴 거야. 뼈까지 고기를 잘라 낼 거고, 골수까지 비워낼 거야. 너희 아이들은 목이 잘리고 머리가 뜯겨 나갈 거야. 들어봐, 소들아!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어봐! 나와 같이 도망가자. 오늘 나랑 도망가지 않으면 언젠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거야!

울타리를 부수고 도망치자는 선동을 하는 이 소는 '에트르'(존재)라는 이름을 가진 생각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도살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소의 학살 장면을 모두 목격합니다. 그 이후 목초지의 풀들이 모두 살을 찌워 도살하려는 인간의 탐욕에 기인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소들의 탈출을 선동합니다. 그러나 모든 소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합니다. 간신히 자신의 아들인 송아지와 함께 철조망을 부수고 탈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자연의 자유 앞에서 '에트르'는 자연과 그것이 제공하는 위대한 자유를 만끽합니다.

저 해 말이야. 해를 자세히 봐. 이 해는 목장 위로 똑같이 떠오르는 해야. 똑같이 따뜻한 빛을 주지. 해가 뜰 때 우리도 일어나고 말이야. 사람이나 소나 똑같이 같은 해 아래서 깨어나. 해는 소나 사람이나 구별 없이 따뜻하게 덥혀주지. 해는 사람이든 소든 아무런 차별도 하지 않는다고.

얘야, 저 절벽까지 간다면 새로운 세상이 있을 거야. 저기에는 어떤 소도 손대지 않은 들판이 우리에게 와서 먹어치워 주길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목초지인 거지. (중략) 우리는 울타리와 농장주나 사료가 없이도 함께 살 수 있을 거야. 이 숲만 지나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을 보게 될 거야.

꿈꾸는 소 '에트르'의 꿈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지내오고 목격했던 농장, 즉 농장주에 의해 통제되고 사육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상향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 의해 통제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송아지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밀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어. 그건 바로 모든 소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싱싱한 풀이 우거진 목초지가 있다는 거야. 이 절벽 너머에 그 곳이 있어. 그곳은 인도라고 부르지. 농장주와 남자가 하는 말을 엿들었어. 그곳에는 신이 소들을 지켜준대. 왜냐하면 소가 아이들을 지켜주기 때문이지. 상상해봐! 소는 동물 중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거야.

'에트르'의 말처럼 인도는 소가 신으로 떠받쳐지는 나라입니다. 소로서는 가장 이상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는 바로 저 절벽 너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너무나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자신들을 자유롭게 만든 그 야생의 대지는 결코 그들을 반기지 않습니다. 무수한 어려움이 이들 앞에 닥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중의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익숙함과의 결별입니다.

송아지는 내가 어떻게 구슬려도 내 옆에 눕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고 귀를 쫑긋 세우며 우리가 걸어온 숲 속 길을 응시한다. 송아지는 콧김을 내뿜는다. 송아지는 케일이 먹고 싶을 것이다. 송아지는 목초지의 풀이 먹고 싶을 것이다. 송아지는 목장생활의 가장 큰 익숙함이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송아지는 이 사실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코요테의 공격을 받아 결국 송아지는 '운명'하고 맙니다. 자신도 결국 그 농장으로 되돌아갑니다. '에트르'(존재)에게 닥친 운명은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저는 이 우화를 보면서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야생의 바다로 보낸 '제돌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돌이'는 '에트로'와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에트르'와 달리 '제돌이'는 이미 자유로운 바다를 몇 년이나 헤엄쳐 다닌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대로 제돌이는 익숙했던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트로'는 하나의 우화속의 주인공에 불과하지만 '제돌이'는 지적 사고능력을 가진 돌고래이고 실존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인공의 쇼 장에서 바다로 무사히 돌아간 돌고래의 여러 사례도 함께 확인하였습니다.

'제돌이'의 제주도 앞바다로의 귀환은 우리가 엄숙하고 신성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상징하고 파괴와 정복의 역사로부터 자연과의 공생과 소통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문명의 발전이고 진화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그동안 생태적 사회에의 고민과 실천을 해 온 한국사회와 그 지식인들의 성취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비록 우화에 불과한 이 책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받는 성찰과 감동은 그 시도와 노력이 정당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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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돌이 #책 #북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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