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생각합니다

시민기자 이승철

발행일 2014.02.27. 00:00

수정일 2014.02.27. 00:00

조회 2,682

[서울톡톡]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지금은 거의 불리지 않지만 광복 후 1960년대까지 3,1절 무렵이면 많이 불렀던 노래다. 당시에는 그저 막연하게 일제의 탄압과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3,1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고등학생 누나를 기리는 노래일 것이라 생각했다.

서대문형무소

그러나 해마다 3,1절이면 그 어떤 이름보다 눈물겹고 가슴 뻐근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선열이 유관순 열사다. 제95주년 3,1절을 앞두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서대문형무소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제가 1908년에 최초로 세운 감옥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지사들을 탄압하고 수감해 우리 국민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를 만들었다.

(좌)서대문형무소 측면, (우)옥사 복도

처음 만들 당시 형무소는 500명 정도를 수감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당시 전국의 모든 형무소를 통틀어도 300명을 수감할 수 있는 규모였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작지 않은, 매우 큰 규모였던 셈이다. 실제로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때는 서대문형무소에 3천여 명에 달하는 독립지사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명칭은 처음에 경성감옥으로 불리다가 서대문감옥(1912), 서대문형무소(1923), 서울형무소(1945), 서울교도소(1961), 서울구치소(1967)로 바뀌며 해방 후에도 형무소로 사용되다가 1987년 3월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편되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잔혹하고 모진 고문으로 400여 명이 순국했는데, 의병활동을 했던 허위선생이 1908년 10월 21일 최초로 순국했다.

1987년 독립공원으로 개편되면서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9, 10, 11, 12, 13옥사와 중앙사, 그리고 나병사가 남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감옥의 모습은 참으로 답답하고 끔찍한 풍경이었다. 옥사들을 한 바퀴 돌아 이른 곳이 '여옥사(女獄舍)' 유관순 열사가 옥고를 치르다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한 바로 그곳이었다.

(좌)여옥사, (우)유관순 열사가 수감되었던 8호 감방

안내문에 의하면 수많은 우리 여성애국지사들이 참혹한 옥고를 치른 이 '여옥사'는 1979년경에 철거되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후 여옥사 터와 지하공간을 발굴, 복원하고 1992년 보호각을 설치했다. 2009년 본래의 설계도면이 발견됨에 따라 2011년 원형대로 복원된 것이다. 유관순열사는 여옥사 8호 감방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8호 감방에는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김향화 여성애국지사들이 수감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어린 소녀의 몸으로 충남 목천의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는 만세운동현장에서 부모님이 일경의 총칼에 피살당하는 참혹한 일을 당했다. 그러나 열사는 일제의 재판정에서도 굽히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당당히 맞섰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조선총독부의 부당한 법에 의해 일제의 법관에게 재판받을 수 없다고 의자를 집어던지며 항의하다가 법정모욕죄가 추가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열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고문의 방법도 다양했다. 몽둥이나 주먹, 발길질로 폭행을 하거나 전기고문은 평범한 것이었다. 매운 고춧가루를 섞은 물을 코나 입에 들이붓는 물고문,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손톱 밑을 찌르거나 손톱 발톱을 잡아 뽑는 고문, 상자 안쪽에 뾰족뾰족한 못을 박아 놓고 쇠꼬챙이로 상자 안의 사람을 찔러 피하다가 스스로 못에 찔리도록 한 상자 고문, 가만히 서서 움직일 수 없게 하는 벽관고문도 있었다. 우리 독립지사들은 콘크리트 독방이나 취조실에 끌려가 사람으로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서대문역무소역사전시관

어린 소녀인 유관순 열사라고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악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열사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3,1만세운동 1주년인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뒤덮였다. 유관순 열사가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다시 한 번 주도한 것이다. 열사에 대한 고문은 더욱 혹독해졌다. 9월 28일 열사는 결국 고문을 견뎌내지 못하고 순국했다. 다시 3,1절을 맞으며 기억이 가물거리는 옛 노래와 함께 우리 민족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 열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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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3.1절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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