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잔치 열렸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4.02.25. 00:00

수정일 2014.02.25. 00:00

조회 1,500

[서울톡톡] 수레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폐지와 빈병 등을 모으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본다. 사람들은 그런 노인들을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 아무도 관심있게 봐 주질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런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곳이 있어 찾아가 봤다. 양천구 신정 4동에 있는 '금산자원'는 수레를 끄는 노인들을 4년째 지속적으로 돌봐주고 있어 노인들에겐 둥지 같은 곳이다.

올해로 4회째 여는 금산자원의 경로잔치

지난 2월 16일은 연중 한차례 열리는 정월대보름맞이 경로잔치가 열렸다. 항상 무게를 달았던 철제 계근대에 멍석이 깔리고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말쑥해진 차림으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잔치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리 없다. 떡, 과일, 편육에 따뜻한 국밥까지 정성을 다해 노인들을 모시는 이곳의 대표 장준석(55)씨를 고물상 입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노인들을 맞이하던 그는 좀처럼 자신의 선행에 대해 얘기해 주질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고물상을 운영하며 동네 어려운 노인을 돕는 `금산자원`의 장준석 씨

'금산자원'의 연례행사인 '경로잔치'는 수레를 끄는 할머니들과 동네 주부들의 도움으로 음식장만을 했다. 음식만들기를 몇 년째 돕고 있다는 홍수자(71)할머니는 장 씨를 가리켜 '노인들의 든든한 아들'이라고 했다. 어느 곳 보다도 고물 값을 후하게 쳐 줘 고맙기도 하고, 늘어진 옷의 팔소매를 걷어 주거나 물 새는 운동화를 새것으로 마련해 주는 등 친부모 돌보듯 정성이 지극하다고 전했다.

수 년째 수레를 끌고 있다는 김봉심(74)할머니는 "고물상이 비좁은데도 이렇게 한 쪽에 노인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따로 차려줬다"면서 "언덕 위를 수레를 끌고 오르내리면 숨이 차 목도 마르고 이것저것 줍다보면 옷이 먼지투성이가 되는데 이곳에 들러 선풍기도 쐬고 사이다로 시원하게 목도 축인다"고 말했다.

윷놀이를 즐기는 노인들

수레바퀴가 구멍나면 때워 주는 것은 기본, 수레 없이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마대자루를 지고 나르던 노인들에겐 수레를 제작해 주기도 했다. 그런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노인들 또한 수거해 온 것들을 풀어 분류작업을 돕다 가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또한 매일같이 동네 곳곳을 돌아다녀 누구보다도 정보통인 노인들은 이사 가는 집의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신속히 버려지는 물품을 '금산자원'이 수거해 올 수 있도록 말이다.

장 씨의 노인공경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봄·가을로 다녀오는 '어르신 나들이' 행사에도 성심을 다하고 있고 매주 토요일마다 짜장면을 시켜 50여 명의 노인과 점심 나눔도 하고 있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들은 평상시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에서 점심을 제공받는데 쉬는 토요일엔 점심공급이 끊기기 때문이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잔치가 오후 5시에야 막을 내렸다. 수레를 끄는 노인은 물론이고 끌지 않는 노인들도 전부 초대하는 이 경로잔치는 해마다 열고 있다.

(좌)고물상에 마련된 `노인휴게실` 벽면은 노인들의 사진으로 장식돼 있다. (우)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시는 어르신들

며칠 후 금산자원을 다시 찾았을 때는 아침부터 일거리로 넘쳐나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윷놀이판이 벌어졌던 계근장에는 폐지를 잔뜩 실은 수레, 온갖 고철더미들이 열을 지어 무게를 달고 있었고 그 틈새에서 장 씨는 장부에 무게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수레를 끄는 노인들의 표정에서도 지친 기색은 없었다. 엊그제 '경로잔치'에서 원기충전한 듯 수레를 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와중에 말을 아끼던 그가 한 마디 했다. "어르신들께 제가 더 고맙죠. 어르신들이 수집한 저 지붕 위 쌓인 자루가 제겐 금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휴일인 일요일이면 장 씨는 신월동에 마련한 농장에서 어르신들과 텃밭을 일굴 생각이다. 그의 따스한 선행이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금산자원'이 더욱 번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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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금산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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