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 꽃이 피었네?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3.11.27. 00:00

수정일 2013.11.27. 00:00

조회 1,766

신라시대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서울톡톡] 옛 사람들은 궁궐이나 한옥집 지붕에도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꾸밀 줄 아는 미적 감각을 지녔다. 지붕에 기와를 그냥 얹은 것이 아니라 무늬를 넣은 기와로 꾸몄던 것. 그런 기와를 한자로 '와당(瓦當)', 우리말로 '막새'라고 부른다. 지붕의 기와를 막음하는 한낱 건축자재지만 감탄이 나오는 장식품이자 예술작품이기도 하여, 그 시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와가 암수 두 종류가 있으므로 와당도 수막새(둥근 것)와 암막새(평편한 것)가 있다. 누구에게나 눈에 익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가 유명하다.

이 흥미로운 고대의 생활용품이자 예술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곳이 부암동의 '유금 와당 박물관'이다. (유금은 관장님과 부인의 성에서 각각 따온 이름) 요즘 걷고 싶은 동네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암동에는 카페도 많이 생겨났지만, 골목 구석구석에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알차게 들어서 있어 좋다. 유금 와당박물관은 부암동의 한적한 골목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소나무로 잘 꾸며진 작은 정원과 귀여운 앵무새들이 지저귀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런 주택가 골목에 와당이라고 하는 보기 드물고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니 보물 탐험하러 가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부암동 언덕자락 주택가 사이에 와당 박물관이 위치해있다(좌), 와당은 수막새와 암막새 등 종류와 모양이 다양하다(우)

2008년 5월 16일 개관한 '유금 와당박물관(http://www.yoogeum.org)'은 글자 그대로 와당 전문박물관이다. 고대 중국, 일본, 한국의 동아시아 와당 2700여 점, 도용(陶俑) 토기 1000여 점을 소장한 박물관이다. 유창종 관장이 젊은 시절부터 30여 년간 와당을 수집해온 긴 여정이 맺은 결실이다. 검사라는 독특한 이력의 관장은 '와당 검사', '기와 박사'로 불릴 만큼 단순한 수집 취미를 넘어 와당의 문양과 생김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교류의 흔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81년 <중원 탑평리 출토 육엽 연화문 수막새>라는 논문을 썼고 2009년에는 와당 연구를 집대성한 책 <동아시아 와당 문화>를 출간했다. 1987년, 수집한 1300여점의 기와를 나라에 기증하기도 해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유창종실'이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 유관장의 책이 비치되어 있어 잠시 펼쳐 보기도 했다. "와당을 공부하면서 한국인이 청출어람의 재주를 가졌음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선조들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문화에다 창의력을 발휘해서 수준을 더 높이는, 그런 능력을 가졌어요." 책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수천 년의 시간을 훌쩍 넘은 와당과 마주하면 아득히 먼 옛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글씨와 꽃, 동식물 등 다양한 문양으로 멋을 낸 와당은 시대의 얼굴이다. 가까이 들여다봐야 그 문양이 제대로 보일 정도로 섬세하게 빚어냈던 와당엔 그 시대의 문화 트렌드와 예술적 열정, 신앙이 담겨 있다. 불교가 들어온 뒤엔 연꽃무늬를 넣어 불심을 표현했고, 불교를 배척하던 조선시대엔 기와에 부적이나 글씨를 새겨 지붕을 장식하기도 했다. 다양한 무늬의 연꽃이 그려진 삼국시대의 막새, 악귀를 물리치고자 험악한 표정의 도깨비가 그려진 고구려의 막새,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기하학문 와당, 용 같은 상상속의 동물들이 세밀하게 그려진 중국의 와당 등 아주 오래된 옛날 옛적이었지만 예술적인 감각과 솜씨는 현대의 작가들 못지않아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고구려 문화의 웅장함, 백제 문화의 격조 높음, 신라 문화의 화려함을 기와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게시판의 안내글에 수긍이 간다.

기와는 특히 동아시아 건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로, 와당을 이야기할 때는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와당문화는 위진남북조시대가 되면서 불교와 함께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됐다.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개성 있는 변화와 발전을 시작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와당의 예술성이 만개하여, 중국의 와당 수준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제3차 와당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한국인의 기운 생동하는 감성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기질은 와당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였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창의적 발전을 이루어내는 한국인 특유의 청출어람 현상이 와당문화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와당의 정교함은 퇴락한다. 와당의 표면에는 각 지역과 시대에 따라 독특한 문양과 다양한 제작 기법을 나타내고 있어 시대에 따른 미술사 연구의 대상 뿐 아니라 문화 교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유금 와당박물관에서는 내년 9월 5일까지 <중국 청주 와당>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의 목적은 삼국~통일신라와 밀접한 교류관계에 있었던 중국 청주 지역의 와당들을 모아 소개함으로써 우리 와당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중국 수-당초의 황유도용을 소개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도용(陶俑)은 흙을 빚어 만든 인형으로 고대에는 주로 주술과 상징적인 의미로 만들어오다 후에는 부장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사람모양의 도용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형태와 채색으로 인물상, 복식 문화, 동서 문화교류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단다.

○ 박물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302-5
○ 대중교통편 : 경복궁역(3호선 3번 출구)
 ▶상명대 방향으로 150m도보, 버스정류장
 ▶1711, 1020, 7016, 7018, 0212, 7022 버스 승차
 ▶자하문터널입구 하차 - 도보 10분
○ 개관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일요일, 월요일 휴관) / 화·목·금요일은 예약제로 운영됨
○ 입장료 : 5000원
○ 문의 : 유금와당박물관 02-394-3451 (http://www.yoog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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