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배우려면 남산에 가라?

시민기자 박칠성

발행일 2013.09.24. 00:00

수정일 2013.09.24. 00:00

조회 1,955

[서울톡톡] 현재 우리나라는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가 서로 멀리 느껴지는 마음이다. 주된 원인은 두 나라 사이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행한 과거사를 인식하고 풀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얽히고 맺힌 과거사의 응어리가 남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 남산 밑자락의 남산예술센터(구 드라마센터), 애니메이션센터 등이 위치한 예장동 일대는 우리나라 강점기 시대의 근거지이었다. 예장동은 조선시대에 군사들이 무예를 연습하던 훈련장으로 예장골이라 부르기도 한 곳이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때부터 왜군이 진주한 이후 1885년 도성 내에 일본인의 거류가 허용되자 일본인들이 남산 주변 지역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왜성대라 부르게 되었다.

왜성대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 집단 거주지로 경제활동 중심지인 명동과 인접하고 서울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통감부와 총독부 및 총독 관저 그리고 경성신사가 위치하여 있어 일본인들의 정치적·정신적·구심적 역할을 했다. 필동 현재 한옥마을이 있는 자리가 일제 강점기에 황국식민화의 주역을 한 헌병대가 주둔했던 곳이며, 필동 극동빌딩 자리는 일제 고위관리들의 자녀와 비극의 공주 덕혜옹주가 가마를 타고 다니던 일신초등학교자리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경성신사 터이었던 남산자락에 자리한 숭의여자대학교 교정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다. 1959년 이곳에 세운 것인데 1967년과 1973년에 각각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2010년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대학 본관 한쪽 석판에 새겨진 사진 속에 이곳이 옛날 경성신사(京城神社)의 터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서울애니메이센터가 일제 통감부이었고 1906년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취임하던 곳이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하얼빈에서 사살되었다. 우리들에게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여기에 세워진 것은 의미가 깊다. 이 통감부가 후에 광화문으로 이전 전에 총독부자리이기도 하다.

한일합방조약은 어디까지나 강제로 맺은 조약이고 불법이므로 강점 또는 병탄으로 우리는 알고 사용해야 한다. 합방이라는 말은 두 나라가 대등한 관계로 나라를 합친다는 뜻이지만 일본이 군사력으로 침략하여 경술년 8월 22일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고 29일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이를 공표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경술국치이고 이를 잊지 말고 기억을 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남산도서관 옆에 2007년부터 성금을 모아 2010년에 새로이 건립되었다. 분수광장 밑에 안중근 의사 동상과 주위에 애국심과 바른생활에 관한 친필들이 새겨진 입석들을 볼 수 있다. 새로 건립된 건물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고 출입구는 지하로 들어가듯이 밑으로 경사져 이어졌다. 메인 홀에 들어서니 붉은 글씨로 "大韓獨立"이라 쓰인 대형 태극기에 앞에 당당한 모습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보인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스스로 체포되어 순국하기까지 모든 재판과정에서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이토를 죽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재판과정에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여 한일 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동양평화에 일본이 기여해줄 것을 외쳤다고 한다.

옥중에서 집필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의 동양 평화유지를 위한 지침에 관한 내용으로 서문, 전감(前鑑 : 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경계한다), 현상, 복선(伏線: 향후에 나타날 법한 상황에 대해 그 실마리를 미리 살짝 밝혀주는 것), 문답 등 5단계로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문과 전감만 완성되고 뒷부분은 형이 집행됨으로써 완성되지 못했지만 전감에서 지난 역사를 되새겨 일본 군국주의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글까지는 마쳤다고 한다.

순국 후 안중근 의사의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 주지 않아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고 효창공원에 가묘가 있다. 최근에 뤼순감옥구지묘지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어 발굴을 중국정부에 의뢰중이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되었고 1970년 일본어 번역본과 한문 등사본의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을 저본으로 <안중근 자서전>이 출판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일생은 애국심의 응집이며 보여준 행동은 총칼을 앞세운 일제 침략에 대한 살신성인의 항거였다.

대한제국 몰락의 처절한 역사의 현장인 중구 필동과 예장동 남산 자락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들에 묻혀 잊혀 가고 있다. 지금 남산 1호 터널 입구까지 나있는 도로 주변은 개울물 흐르던 산속이었고 숭의여자대학교 뒤편에 약수터도 있었다고 한다. 남산을 찾을 때는 옛 정취를 마음속으로 새기고 느끼면서 안중근의사기념관도 둘려보면 나라사랑 정신을 재 다짐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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