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중명전 다시 보기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장제모

발행일 2013.05.21. 00:00

수정일 2013.05.21. 00:00

조회 1,493

[서울톡톡] 서울 고궁에 대한 애착은 서울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지향이라 생각한다. 고궁은 곧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체성을 흠집 내기 위해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상처를 많이 받는 것 또한 고궁이다.

덕수궁의 중명전(重明殿)은 그런 대표적 유적 중의 하나이다. 중명전이 포함된 덕수궁(당시는 경운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역사가 일천하고 그 규모도 작은 곳이다. 그러나 덕수궁에 얽힌 역사는 어느 고궁보다 진하고도 무겁다.

현재의 덕수궁터는 조선 7대왕 세조의 큰 손자이자 제9대 임금인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 도원군의 큰 아들)의 개인 저택이었다. 도원군(세조의 큰 아들)은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요절하자 세자빈 한 씨가 궁궐을 나갈 때 이곳에 집을 지어 두 아들과 함께 살게 하였는데 둘째 아들이 왕(성종)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어머니인 한 씨도 입궐하게 되어 월산대군만이 거처하게 되었다.

1593년 10월, 임진왜란으로 피신했던 선조가 환도하여 이곳을 임시거처로 하여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 하였고 경내가 협소하여 궁궐 안에 있어야 할 관청들도 처음에는 궐문 밖에 두었다가 점차 면적을 넓혀 모두 궁궐 안에 들게 하였는데, 이때 민간인(심의겸, 심연원) 땅을 궁궐에 포함하였다. 선조는 1608년 2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광해군(光海君)도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은 행궁을 넓혀 지금의 정동 1번지 일대를 대부분 궁궐 경내로 하였으며, 1611년 창덕궁을 보수하여 거처를 옮긴 뒤, 이곳을 경운궁(慶運宮)으로 하였다.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2개월여 있다가 경운궁을 거쳐, 1615년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갔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하여 경운궁에 유폐하면서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불렸으며, 1620년 궁궐의 아문(衙門) 등을 허물어 궁은 더욱 퇴락하였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서 기능을 하게 된 것은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가 일 년 뒤 경운궁으로 돌아오면서 궁궐을 확장하고 전각 등을 건립하였고, 그 해 9월,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하면서 정궁(正宮)이 되었다.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07년 순종에게 양위를 한 뒤 이곳을 거처를 삼으면서이다.

중명전은 1900년 경운궁에 딸린 접견소 겸 연회장으로 건립된 것으로 본래 명칭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이 일대가 경운궁에 포함된 것은 궁을 확장하면서였는데, 이 때 이미 미국 공사관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 중간에 도로가 나게 되어 별궁처럼 되었다. 1904년, 경운궁이 큰 화재로 소실되자 이곳에 고종이 잠시 집무를 하게 되면서 이곳은 우리 근대사에 중요한 방점을 찍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중명전에서 조선왕조의 사실상 몰락이자 한민족 최대 치욕의 역사인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전의 역사도 바로 중명전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끝까지 조인을 거부하였는가 하면 일본제국주의 야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준 열사를 비롯한 3인의 밀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현장도 바로 이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으면 여전히 마음이 아린 이유는 이곳이 덕수궁의 바깥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때이다. 덕수궁을 참관하다가 이곳에 오려면 궁을 나와 정동 방향으로 돌담길을 끼고 한참을 걸어 정동극장 옆 골목길에 다다라서 비로소 그 입구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따스한 봄날, 고궁길 보다 걷기 좋은 길이 어디 있을까? 단순히 낭만을 느끼기 위해 덕수궁과 중명전을 걷지 말고 이곳이 '역사적 현장'임을 기억하고 찬찬히 둘러보고 따져보며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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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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