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강의실로 변하다
시민리포터 고은빈
발행일 2013.04.18. 00:00
그가 말하는 서울, 그녀가 말하는 서울
[온라인뉴스 서울톡톡] 변덕스런 날씨 탓에 이제야 제 얼굴을 내미는 봄의 산자락을 오르고 오르니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창이다. 얼마나 올랐다고 숨이 차고 땀이 흐른다. 숲 속 강의실은 생각보다 깊이 있었다. 늦거나 길을 잃어 허탕을 치는 게 아닐까 하며 계속 걸으니 목소리가 들려오며 이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지각이구나.' 드르륵 문 여는 소리는 없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사박대는 낙엽소리에 수업에 늦은 대학생마냥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는다.
똑같은 서울인 것 같건만, 보는 사람에 따라 서울은 다른 빛깔을 낸다. 특히 하나에 정통한 사람들은 본인의 방식으로 서울을 꿰뚫어본다. 숲 속 강의 '서울이야기'는 특정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의 눈을 통해 본 서울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건축가, 화가, 라이프스타일리스트까지 강사들은 분야가 모두 다르지만 본인의 분야에서만큼은 정통하다.
화가는 서울의 공공미술에 대해, 사주명리학 저자는 서울의 풍수지리에 대해, 그렇게 강사들은 본인의 시각에서 본 서울에 대해 얘기한다. 강의실은 따로 없다. 서울연구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곧 강의실이다. 숲 속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뻗어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리포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뺨을 부드러이 스친다. 한 달에 한번 꼴로 강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상기하니 다음 강의가 열릴 때쯤의, 또 총 7개의 강의가 마무리될 때쯤의 강의실의 모습이 기대된다. 좀 더 푸르고 활기차리라.
서울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첫 번째 강사는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한 승효상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차치하고 서양의 건축 역사부터 간략히 훑었다.
그는 스크린에 옛날 서울의 지도와 현대 서울의 도시 계획도를 띄웠다. 옛 서울의 지도는 갈라져 있어도 하나의 땅처럼 보였지만 도시계획도는 색색으로 명백히 분할되어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현재 도시개발이나 건축 방법 모두가 우리에게 맞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무분별하게 과거 서양의 방식을 따라하고 있어요. 현대 도시계획도에는 옛 지도에 있었던 물길이나 산이 전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여전히 서양의 마스터플랜을 따라하고 따릅니다.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두바이를 자주 찾고 벤치마킹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만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처사죠.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도, 두바이와도 다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이들 나라는 평지입니다. 심지어 두바이는 사막이죠. 평면을 전제로 하는 마스터플랜과 어울리는 곳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입체적인 곳이죠. 그런데 그 무늬 많던 우리의 땅을 우리는 도시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똑같이 만들어버렸습니다. 덕분에 근래 건설된 신도시는 대부분 지역적 정체성을 잃었죠." 그는 랜드 마크 건립 남발도 따라하기의 결과라 말했다. "서양은 땅이 평평하고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지역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랜드 마크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울은 이미 산과 물길, 자연적인 랜드 마크가 이미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굳이 인공적인 랜드 마크를 지으려 하고 있죠. 역사가 깊지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구분도 없습니다. 다른 도시나 나라와 구별할만한 특징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는 곧 이어 잘못된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해 언급했다. 갈등 생성과 폭발의 주요한 원인이 된단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달동네는 나누며 사는 공간이었습니다. 길마저도 공간이었죠. 넓은 곳은 시장이 되고 긴 곳은 빨래터가 되고 후미진 곳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전 국토를 휩쓴 비둘기집은 정원까지 갖춰 공공의 공간이 없어졌고 미학만이 존재하는 곳이 되었죠. 그러다보니 소통이나 정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금호동 달동네는 그 구조가 아이러니하게도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산토리니와 유사했습니다. 비단 하얀색과 푸른색으로 건물을 칠해 놓아서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것이었을까요? 모여 사는 삶의 아름다움이 보여서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아닐는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그가 전했던 윈스턴 처칠의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들고 건물이 우리 삶의 행로를 지배한다.'
■ 서울이야기 향후 강의 일정 안내 2강 화가 임옥상의 '서울의 공공미술을 말하다' 3강 <사주 명리학 이야기> 저자 조용헌의 '풍수지리로 살펴본 서울' 4강 외국어대학교 그리스학과 교수 유재원의 '옛날 서울말, 오늘 서울말, 그리고 서울 사투리' 5강 쌈지농부 대표 천호균의 '서울의 도시농부 이야기' 6강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로버트 파우저의 '서울의 오래된 골목 이야기' 7강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이효재의 '서울을 보자기로 감싼다면' 서울이야기는 총 7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강의 일자는 매월 23일 서울연구원(http://www.si.re.kr/), 레몬트리 홈페이지(http://lemontree.joinsmsn.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날짜 공고와 동시에 사전신청을 받는다. 수강을 위해서는 신청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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