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걷다
발행일 2013.03.06. 00:00
[서울톡톡]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관광 선진국으로 크게 부상했다. 동대문 패션타운, 명동, 남대문시장, 이태원, 남산 등 외국인들이 주로 많이 찾는 관광 명소는 한국어보다 일본어, 중국어가 더 많이 들려온다고 할 만큼 하루 종일 북적거린다. 그에 따라 서울 시내는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충분한 대한민국 문화, 관광 산업의 메카로도 불린다. 63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그야말로 별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역시 싱가포르나 마카오와 같은 도시형 관광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중이다. 고층 빌딩이 너나 할 것 없이 위용을 드러내고 수도권 일대 어디든 갈 수 있는 다양한 버스와 지하철 노선들까지 서울은 세계일류의 미래 지향적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이토록 복잡하고 분주한 거대도시 서울, 스산하고 냉한 기운이 풍겨 나올 법도 한데 어딘가에서 정 많고 따뜻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바로 서울이 가진 또 다른 여행의 테마인 역사 때문이 아닐까? 교통의 요충지로서 과거 고대 국가들이 서로 탐내던 접전 지역에서 봉건국가 조선왕조를 이어 근대를 거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600년 수도로 자리한 서울은 그 오랜 격동의 역사만큼이나 풍부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도심 한 가운데에 위치한 5대 궁궐과 종묘를 비롯해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들조차도 다 가보지 못했을 만큼 구석구석에 왕릉과 유적지가 널려 있다. 서울은 그 자체로 과거를 품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는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역사의 현장인 곳을 잇는 '역사 기행 코스'가 있다. 시장통과 좁은 골목길의 아기자기한 다세대주택, 아파트까지 우리 시대의 젊음과 늙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는 조선시대 한 여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흘러나온다.
중구 황학동과 종로구 창신동을 잇는 다리 영도교는 조선의 제6대왕 단종이 사육신 사건으로 인해 숙부 세조에 의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가면서 부인 정순왕후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곳이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약조를 뒤로한 채 유배지에서 처형당하고 마는 단종과 평생 그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던 정순왕후의 슬픈 사랑을 기려 영영 건너간 다리라는 뜻의 영도교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영도교에서 동묘 쪽으로 가다보면 복잡한 시장 길이 펼쳐지는데 이곳 역시 정순왕후와 관련이 깊다. 궁궐에서 보내는 지원을 일절 거부하고 끼니를 거르며 살아가던 정순왕후를 위해 동네 부녀자들이 여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그녀에게 먹을 것을 몰래 제공해주던 곳이다. 동묘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동망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이는 정순왕후가 단종이 있는 동쪽, 즉 영월을 매일 같이 바라보았다던 바위 동망봉 근처에 그녀의 아픔을 위로하며 지은 팔각정자이다.
현재는 그 일대에 주민들을 위한 공원과 체육시설이 조성되었다. 동망봉에서 다시 창신동 쪽으로 내려가면 청룡사 절이 보인다. 청룡사의 정업원 터는 정순왕후가 단종의 죽음 이후에 비구니로서 여생을 살아가던 곳이다. 끝으로 청룡사에서 종로구 마을버스 3번 노선을 따라 낙산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자주동 샘터가 보인다. 이태준의 생가 안에 있는 작은 우물인데 그곳에서 정순왕후가 비단 염색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주택가에 가려져 있고 직접 걸어서 찾아다니지 않으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지만 이 소박한 역사 유적지에는 열다섯에 왕비의 자리에 올라 3년 후 청상이 되고 여든이 넘도록 장수한 한 여자의 일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코스를 걸으며 잊혀져가는 역사의 발자국을 뒤쫓아볼 수 있다. 현재 이곳들은 종로구청에서 정순왕후 유적지로 묶어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4월 추모문화제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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